계시록 3:1∼6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해설: 지금까지 앞에서 언급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교회들까지는 기존의 제단인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편지였다. 그러나 이제부터 다루게 될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교회는 그 수준을 한 단계 높여서 편지를 주시고 있다. 즉 전자의 교회들에게는 그동안 수고와 열심과 희생 등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또 그중에 “실존예수님”의 새 말씀을 들을 가능성이 있는 자들(리골라당의 교훈을 멀리한 자들과 적그리스도를 경계하는 자들)을 독려해 주셨고 그렇지 못한 자들에겐 경고와 책망을 하셨다.
그러나 후자의 교회들에게는 그 수준을 조금 넘어 있다. 즉 후자의 교회들에게는 새 말씀을 이미 받은 자들을 말씀해 주시고 있고, 아직도 “실존예수님”의 새 말씀을 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경고와 책망을 하시기 때문에 그 수준을 높인 것이 된다 하겠다. 우선 후자교회에 속한 사데 교회에는 두 그룹이 있다. 깨끗이 옷을 빨아 흰옷 입고 “실존예수님”과 함께 다니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예수님이 도둑같이 오실 때까지도 예비 불감증에 걸려 빨지 않은 더러운 옷 그대로 입고 있는 자들이 있다. 옷은 말씀을 뜻한다. 따라서 흰옷 입은 자들은 “실존예수님”이 해석해 주신 진리의 새 말씀으로 하나님을 모르는 죄를 깨끗이 씻었다는 뜻이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고 있는 자들이라고 했다. 사데 교회에서 흰옷 입은 자들은 이미 예수님의 새 말씀을 듣고 있는 자들이 된다. 그러나 사데 교회 중에도 회개를 촉구받는 자들은 어떤가? 예수님의 새 말씀을 전혀 받지 아니했으므로 더러운 옷 그대로 입고, 예수님이 언제 어떻게 오시는지 몰라 도둑같이 오시는 돌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마치 이천 년 전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무시하고 유대 당에 고착해 있을 때 정죄받았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실존예수님”의 새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여전히 옛 신앙의 옛 우물 안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고 있다면 구제불능이다. 이런 자들을 향해 살았다고 주장하나 실상은 죽은 자라고 하셨다. 그러나 일깨워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잡으라고 하셨으니, 이는 사고일신해서 회개하고 살 수 있는 기회가 아직 남아 있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새 말씀이 전파되고 있는 지금이 곧 그 기회이다.
계시록 3:7∼9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볼 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사단의 회, 곧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해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이름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곧 보이는 인간하나님이다. 그리고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위대하고 사랑받는 왕으로써 이러한 하나님 및 예수그리스도로 표상된다. 따라서 다윗의 열쇠는 하나님 및 예수님의 천국 열쇠를 뜻한다. 천국열쇠를 가지신 예수님이 의인 앞에서 천국 문을 열어주실 때 누구도 방해하여 닫을 수 없고, 악인 앞에서 천국 문을 닫아버리실 때 누구도 감히 열 수 없다고 하셨다. 그리고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충성한 빌라델비아 교회 앞에,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이 나와서 네 앞에 절하게 한다고 했다. 무슨 말씀인가? 본래 하나님의 택한 자들은 야곱의 아들 12지파이다. 그런데 단 지파는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라고 했기 때문에(창49:17) 인 맞은 자에서 제외되고, 대신에 요셉의 아들 므낫세가 뽑혔음을 알 수 있다(계7:6) 한 지파에 12.000씩이므로 여기서 말한 몇은 적어도 12.000 이 될 것이다. 본래는 택함 받지 못했으므로 거짓말하는 사단의 회, 즉 세상에 속한 자였으나 그들이 탈락한 단 지파 대신 택한 자로 하나님 앞에 부름 받아 나오게 되기 때문에, 몇이 네게 나와 절한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몇을 주어 "네 발 앞에 절하게 한다" 라고 하신 "네" 라는 존재는 육체를 입고 새 이름으로 오신 “실존예수님”을 뜻한다. 그리고 요한에게 환상 중에 나타나셔서 말씀하시는 인자 같은 이는 요한 당시에는 예수님의 영이 될 것이고, 오늘날엔 “실존예수님”의 영이 될 것이다.
계시록 3:10-11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해설: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하는 때는 하나님의 백성이 적그리스도에게 짓밟히는 때이다. 이때에 면류관을 받을 십사만 사천은 적그리스도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하나님이 특별히 지켜주시고, 그중에서도 왕중 왕이 되실 새 이름의 예수님을 지켜 주실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때문에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라고 했다.
계시록 3:12-13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해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신 분이다. 그 예수님은 다시 오신다고 했다. 그런데 “실존예수님”은 과거의 예수라는 이름이 아니고 "새 이름"을 갖고 오신다고 했다. 그러므로 이기는 자는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하고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하면서, 그에게 돌아갈 이름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이라고 한 것이다. 나의 새 이름이라고 한 것은 곧 예전의 예수님이 오늘의 “실존예수님”으로 다시 오신다는 뜻이다. 이는 오늘날 누가 과연 육체로 오시는 하나님 및 “실존예수님”(오늘의 어린양)이 될 것인지, 궁금증을 더해주기도 하지만,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의 이름과 "나(하나님 및 예수님)의 새 이름" 이 돌아간다고 했음을 볼 때, 다시 오시는 하나님 및 예수님은 하늘에서 둥둥 구름 타고 오시는 분이 결코 아님도 알 수 있게 해 준다. 하늘에서 구름 타고 오시는 예수님이라면 새 이름으로 오실 필요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천 년 전 예수님이 태어나셨듯이, 오늘날 다시 오시는 새 이름의 예수님도 이 땅의 육체로 다시 태어나 오신다(환생) 이기는 자에게는 예수님의 새 이름으로 기록된다고 했는데, 새 이름으로 기록되는 그가 곧 예수님이 되시며 그분은 성전의 기둥이 되신다. 그러나 “실존예수님”때는 영원한 그리스도의 나라를 이루실 명실상부한 분이시므로 그 기둥이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고 했다.
계시록 3:14∼17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오,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덥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덥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해설: 라오디게아 교회는 일곱 교회 중에서 마지막 교회로서 오늘날 기독교를 상징하며 오늘날 교회성도들은 미지근한 신앙으로 말씀에 대한 열정과 욕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무능한 교회요, 쓸모가 없는 무가치한 신앙이라고 주님이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성도들의 신앙이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를 향한 열정도 없이 자기 신앙에 도취되어 자만하고 있는 것을 보시고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고 하십니다. 양자 중 반드시 하나를 선택하라는 말씀입니다. 신앙을 버리고 하나님을 떠나든지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하고 충성된 증인들이 되어서 창조의 근본이 되신 주님과 함께 새로운 천지를 창조하는 자들이 되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는 말씀입니다. 오늘날처럼 미지근한 신앙으로 말미암아 회칠한 무덤이 되어버린 기독교계를 보시면서 탄식하고 계시는 말씀입니다.
차든지 뜨겁든지 하라는 말씀은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은 중간 상태에 머물러 있는 자들을 향하여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하신 것입니다. 미지근하다는 말은 차지도 뜨겁지도 않다는 말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영적 상태가 심히 무력한 상태에 빠져있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무력한 교회라는 것을 말합니다. 라오디게아 사람들은 "히에라볼리"로부터 끌어온 온천수와 "골로새"로부터 수로를 통해 가져온 찬물을 공급받는 과정에서 물이 미지근하여 식수로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하여 마시는 자마다 토하여 버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라오디게아 사람들이 미지근한 물을 토하여 버렸듯이 주님께서도 미지근한 영적 상태에 머물러 있는 라오디게아 성도들을 보시면서 너희들을 토하여 내치시겠다고 책망하십니다. 미지근한 상태에 빠져있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들은 아무 쓸모가 없는 무가치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의 영적상태가 자칭 부자요 부요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부요하다는 것은 현재 완료형으로 이들의 신앙의 상태가 완전히 부요한 상태에 도달하였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날 기독교계처럼 라오디게아 교회는 스스로 부요하여 더 이상 바랄 것이나 부족한 것이 없다고 자만하고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매우 빈곤하고 곤고한 자들이라고 하십니다. 서머나 교회는 외적으로 가난하였으나 영적으로는 부요하였는데 라오디게아 교회는 외적으로는 부요하나 영적으로는 가난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곤고하고 가련한 자들이란 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이 약탈되고 파괴를 당하여 어떤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전혀 없는 쓰레기 하치 장과 같은 상태를 말하니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의 신앙은 마치 세상과의 전쟁에서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라고는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는 장사꾼들의 소굴이요 회칠한 무덤이 버린 상태라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사람들이 세상과 싸우다 보니 자기들이 깨달았던 진리들을 모조리 다 빼앗겨버리고 영적으로 아무 쓸모가 없는 무가치한 자들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지금까지 기사와 이적의 신앙들을 통하여 화려한 성전들을 건축하고 물질적인 축복들은 받았으나 영적인 진리들은 강도들과 짐승들에게 모두 빼앗겨 버리고 쓸 만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빈 상태라는 것입니다. 이면적인 생명의 말씀들을 모두 빼앗겨버린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하여 곤고하고 가련한 자들이라고 하시면서 곤고하고 가련한 자들이라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있는 것이 더욱 한심한 자들이라고 책망하십니다. 그리고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가난이란 살림살이가 없고 수입이 적어 쪼들린 빈곤한 상태를 말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은 기사와 이적의 신앙으로 물질적인 부를 축적하였으니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길이 막히면서 심히 가난한 자들이 되어버린 것입니다(계2:9) 생명의 말씀들을 저축하여 부요한 자들이 되라 하시건만 생명의 말씀에 대하여는 전혀 관심이 없는 자들이요 있는 것마저 소진하고 있는 심히 가난한 자들이라는 것이요, 그들은 또한 영적으로 가난하다는 것조차도 알지 못하는 가련한 자들이었던 것입니다.
눈이 멀었다는 것은 영적인 진리에 대하여 소경들이라는 것입니다. 눈이란 영이라 하였고 영은 진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영이 없는 사람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예수의 분량까지 장성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지도 못하며, 하나님이 사람들과 함께 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볼 수 있는 눈이 없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벌거벗었다는 것은 교리와 교권과 직분과 직책의 옷은 입었으나 그리스도로 옷을 입지 않았다는 것이요(갈3:27) 세마포 옷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지라 자기가 입어야 하는 옷을 알지도 못하며(계19:8) 예복이 무엇인지도 모르는(마22:12) 벌거벗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성도들의 영적인 실상은 이렇게 참으로 비참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식하지도 못한 채 스스로 부요하다고 착각하고 있었으니 하나님은 그들을 토하여 내치시겠다는 것입니다.
계시록 3:18-22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해설: 성경에서 금은 믿음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벧전1:7)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다고 하였으며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하였습니다(히11:1) 믿음의 실상이란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들에게 모두 성취되어 말씀과 사람이 하나가 되고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가 되면서(요10:30) 신인이 될 수 있는 진리를 금과 같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금을 사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라는 것이요, 말씀을 매수하는 자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처럼 예수 안에 있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들을 소유하고 부요한 자들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골2:2-3) 벧전 1: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라,
다음은 흰옷을 사서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고 하십니다. 흰옷(진리)을 사라는 것은 의의 옷을 사라는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라는 것이며, 거룩하고 깨끗한 진리의 옷을 입으라는 것이요, 하나님으로 거룩한 말씀을 입으라는 것입니다. 계시록 16:15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말씀)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계시록 19:7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 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로마서 13:12-14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에베소서 6:13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에베소서 6:14-17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다음은 안약을 사서 보게 하라 하십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은 모두 영적인 소경들이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향하여 안약을 사서 눈에 바르고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는 자들이 되라고 하십니다. 안약을 사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눈을 가지라는 말씀이요, 예수의 눈은 일곱 눈이요 일곱 날의 빛이요 일곱 날의 영이니, 예수가 가지고 있는 안약을 사서 바르고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영과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보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볼 수 있는 자들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계시록 5:6 내가 보니 어린양이 섰는데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스가랴 3:9 내가 여호수아 앞에 세운 돌을 보라 한 돌에 일곱 눈이 있느니라, 내가 새길 것을 새기며 이 땅의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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