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말씀 해설

계 시 록 2장 해설

제라늄A 2024. 4. 13. 04:43

계시록 2:1에베소 교회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해설: 에베소에서 라오디게아까지 일곱 교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요한을 통해 편지를 받게 됩니다. 일곱 교회는 바로 우리 자신이 받는 편지임을 알아야 합니다. 즉 에베소 교회이든지 라오디게아 교회이든지 모든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하신 말씀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칭사도라는 자 곧 유대교종교 지도자들이나 오늘날 목회자들에게 주시는 편지는 종교지도자 안에 모든 성도가 있으므로 역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예수님의 편지가 됩니다. 예수님은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신다고 했으므로 그분은 능력으로 계시고 사랑으로 모든 성도들을 인도하시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와 게으르지 아니한 것과 거짓된 것을 드러내신 것을 잘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계시록 2:4-5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해설: 복음을 온 세상(존재)에 전파한 수고를 칭찬하신 후, 이제 책망할 것이 있는데 그게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이라고 했습니다. 처음 사랑은 무엇이기에 잃어버렸다고 책망하시는가? 오늘의 하나님의 백성들은 복음을 처음 받아 전할 때의 그 순수했던 사랑과 열정은 사라지고, 끊임없는 기복신앙과 물질주의와 물량주의로 안주해 있습니다. 회개치 않으면 촛대를 옮기리라 하셨습니다. 촛대는 교회라고 했으므로 교회에서 우리를 쫓아내시겠다는 말씀이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악인으로 간주하시겠다는 경고입니다.

계시록 2:6-7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도다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귀 있는 자들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실과를 주어 먹게 하리라,

해설: 니골라 당의 행위는 무엇인가? 니골라당의 행위는 간단히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 여자들과 행음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도록 해서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케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파멸로 몰아넣는 동족상쟁 행위가 니골라당의 행위입니다. 그러면 오늘의 니골라당의 행위는 무엇인가? 오늘의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사명은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의 길을 가는 일인데, 십자가의 길을 가지 아니한다면 그것이 니골라당의 행위며 우상숭배가 됩니다. 십자가란 부활을 전제한 죽음이기 때문에 본래의 자아를 죽이고 거듭나야만(부활)하는데 거듭나는 일에 힘쓰지 아니하고, 처음 받은 복음으로 구원받았다고 안일한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것이 니골라당의 행위요 우상숭배가 됩니다.

즉 복음이라는 자기 생명을 죽이지 아니하고 그 비유의 복음에서 안주하여 발전적 진보적이지 못하다는 뜻이 니골라당의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의 새 말씀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 니골라 당의 행위요, 행음이요, 우상숭배입니다. 다시 말해 2000년 전의 예수를 믿는 행위가 니골라당의 행위입니다. 또 적극적으로는 오늘날의 실존예수님의 새 말씀으로 거듭나려고 노력하지 않고 앞으로 전진하지 않으며 주저앉아 있으려는 이가 있다면 그 게 곧 니골라 당의 행위요 우상숭배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더욱 결정적인 것은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서로 자기 믿음이 최고이고 오늘날 실존예수님을 배척하고 이단이라고 악평하며 악한 행위가 곧 리골라당의 행위요 우상숭배가 됩니다.

계시록 2:8-9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나중이요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해설: 하나님의 백성을 훼방하는 자칭 유대인은 누구인가? 유대인은 예표이므로 이들의 실상은 오늘날 하나님을 섬기는 기독교인들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을 훼방하는 자칭 유대인이라 함은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치부하며 하나님의 백성을 짓밟는 적그리스도 666이 됩니다. 따라서 그들이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고 사단의 회(會)라고 했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이 같은 자칭 유대인의 훼방을 받기도 하고 또 환난과 궁핍이 있음을 예수님은 잘 아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의 여러 가지 어려움을 너무나 잘 아시고 지켜 보상해 주실 것이기 때문에 서머나 교회가 실상은 부요한 자라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계시록 2:10-11 볼 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10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상기의 말씀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

해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으로 오늘날 기독교를 탈출하여 진리의 길에 들어선 신앙인들에게 경각심을 울려주는 말씀입입니다. 이 말씀은 기독교회에서 열심히 일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주겠다는 말씀이 아니라, 기독교에서 벗어난 진리의 길에 들어선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여 죽을힘을 다하여 죽도록 충성하는데 어떻게 충성하느냐 하면 죽도록 사력을 다하는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겠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아무리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다 해도 면류관을 받지 못한다면 모든 것이 허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죽도록 충성하라고 하는 말씀인가?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아무나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은 기독교를 벗어나 진리의 길에 들어선 신앙인들이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계2:8~9) 오늘날 전통과 정통이라고 자부하는 기독교인들이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라 껍데기만 유대인이라는 것이요 실상은 사탄의 회라는 것입니다. 마귀의 집단이라는 것입니다. 핍박이나 환란이 전혀 없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안일한 젖먹이 신앙생활 하는 기독교인들이 사탄의 회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진리의 길을 가는 자에게 훼방하며 이단이라 핍박을 하는 것도 예수께서는 다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이 말씀은 진리의 신앙의 길을 가는 자는 고통과 환란을 받고 있으나 실상은 부요한 자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진리의 신앙의 길을 가는 자가 핍박이 없다면 모두 동일한 사단의 회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오늘날 좁고 협잡한 길을 가는 자 특히 고통과 환란의 연단을 받는 자에게는 힘이 되고 용기가 되는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은 “현제의 고난은 장차 하늘의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고통과 환란이 없이 아무런 반응이 없이 평안하고 안일한 신앙생활을 한다면 지금 당장에 애통하고 통곡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두려워말라는 말씀은 진리의 길을 가는 자는 장차 고난을 받을 것인데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탄마귀가 너희를 시험하려고 “10동안 고난과 환란을 주게 될 텐데 너희는 담대하게 이 시험을 이겨내라는 것입니다. 이 고통은 “10동안이라 하는데 “10이란 뜻은 날의 개념이 아니라 시험을 이기고 면류관을 받는 기간까지가 “10이라는 것입니다. 이 시험은 하나님께서 면류관을 받는 자에게 누구나 다 주는 시험인데 예수가 광야에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은 것과 같이 진리의 길을 가는 자에게는 반드시 사단마귀를 도구로 사용하여 시험을 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아들이 되기 전에는 고통과 환란을 받으므로 그 어려운 시험을 이겼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인정하셨으며 욥기 서를 보면 욥도 하나님께서는 사단을 들어 사용하므로 욥에게 인간으로서는 참기 어려운 강한 훈련을 시켜 그 어려운 고통과 환란을 이기므로 승리한 과정을 성경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에게는 사탄을 들어 뒤에서 조종하는 것입니다. 진리의 길을 가는 자에게는 반드시 이 험난한 시험이 찾아오는 것입니다. 이런 시험이 없다면 진리의 길을 가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독교인이라면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 글을 보시는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신앙을 다시 점검해 보아야 하며 지혜 있는 자는 빨리 깨닫고 기독교를 벋어나 진리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6-8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오,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아들로 승리하여 면류관을 받기까지는 항상 시험과 환란은 각오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통과 환란의 기간이 “10이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6일 천지창조는 빛(선)과 어둠(악)의 싸움이며 빛이 어둠을 점진적으로 이겨나가 이 땅의 어둠의 존재를 하늘의 형상으로 만드는 것이 6일 천지창조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하는 지혜가 있는 사람은 이러한 시험의 기간을 빨리 알아차리고 회개하고 진리를 찾아 죽도록 하나님의 사역에 충성해야 시험의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이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평생을 기독교 안에서 젖먹이 신앙에서 고통과 환란 속에서 지내다 생을 마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민족을 출 애급(탈출) 시켜 광야에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징계와 연단)으로 훈련을 시켰지만 그 시험을 통과하자 못하고 모두 광야에서 죽은 것은 그 고통과 환란을 이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려면 반드시 고통과 환란을 겪어야 하나님의 아들로 탄생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불가마니 속에서 불로 연단한 정금같이 되어야 면류관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면류관은 오늘날 기독교인들같이 안일한 신앙에서 적당히 해서 얻어지는 면류관이 아니라 본문말씀같이 최선을 다해 죽을힘을 다해 죽도록 충성하는 자에게 주시는 생명의 면류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진리의 길을 가는 자에게는 배후에서 사탄을 들어 조종한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고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의 결론적으로는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이것을 죽도록 죽기까지 견디라는 것입니다. 마귀가 나를 불속으로 던져야 그 불속에서 연단을 받아 정금같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도록 충성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를 당해서 고통을 당해본 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신앙의 길을 가는 자가 가 없다면 결코 영생의 을 받을 수 없다는 결론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런 말씀을 깊이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계시록 2:12-13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좌우에 날 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해설: 예수님의 심판의 검은 왜 양날 선 검인가? 한쪽 날은 마지막 때에 주시기로 약속한 예수님의 새 말씀을 듣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치시는 검이고, 또 한쪽은 적그리스도를 치시는 검이기 때문에 양날 선 검이 됩니다. 그런데 버가모 교회는 사단의 위(位)가 있는 곳에서 즉 거짓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믿음을 지키고 있음을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안디바나 버가모 교회 역시 이 시대 우리들의 모습을 비취어주는 믿음의 예표들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 예표들을 들어서 바로 오늘날 우리의 변치 않는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적그리스도의 비진리가 창일한 현 세상에서 그 비 진리를 먹지 않는 일은 금식이며 금식하면 굶주려 죽는 아사자가 된다. 그 같은 비 진리에 대한 금식 하는 자는 혈혈단신 외톨이 신앙이며 외로운 고아과부나그네이며 멸시받는 거지 나사로 반열이 됩니다. 영적 거지인 나사로 반열은 구원의 대상입니다. 즉 버가모 교회인 우리가 예수님의 양날 선 검에서 심판의 대상이 아니고, 그 양날 선 검으로 악인들을 치시므로 그 악인들로부터 불러내심을 받는 구원의 대상이 된다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 악한 사단마귀와 한 판 승부를 겨루지 않으면 안 되는 격전지임을 경고해 주심과 동시에, 또 잘 싸우고 있다고 먼저 격려해 주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양날선 검에 대해 부연설명을 하기로 합니다. 복음은 비유비사입니다. 비유이므로 복음의 내 생명을 죽여야 다시 살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새 말씀은 복음의 내 생명을 쳐서 다시 살려주시는 생명의 검이 됩니다. 그리고 또 한쪽 칼날은 그분이 복음에서 살아 있는 나를 쳐도 내가 그분의 새 말씀의 칼날에 도무지 죽지 않고 여전히 시퍼렇게 복음에서 살아 있을 때 그야말로 나에게 생명을 앗아가는 심판의 칼날로 작용합니다.

계시록 2:14-15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노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해설: 에베소 교회는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했다고 칭찬하신 반면, 버가모 교회는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고 책망하신다. 니골라당이란 전술했듯이 발람이 발락을 시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앞에 우상의 제물을 놓게 하여 그들로 넘어지게 한 사악한 행위이다(민22:1∼) 그리고 오늘의 니골라당의 행위 역시 에베소 교회에서 전술했듯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오늘날 실존예수님의 새 말씀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므로 날마다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새 창조를 거역하고 어제에 머물러 있는 행위요, 그것이 오늘의 음행과 우상숭배가 되기 때문에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을 책망하시고 있다. 그러므로 에베소교회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했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실존예수님의 새 말씀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의식을 갖고 노력했다는 뜻이다. 반면 버가모 교회가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켰다는 것은 실존예수님의 새 말씀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의식도 없고 그 노력도 전혀 없었음을 뜻한다. 오늘날 실존예수님의 새 말씀이 아닌 것은 모두 우상숭배가 되기 때문이다.

계시록 2:16-17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해설: 니골라당의 교훈을 회개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편협함을 버리고 마음 문을 활짝 열어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같은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기독교 계열의 모든 교단이 내 이웃인데 그들을 내 몸처럼 사랑하며 즉 구원하여 우리 모두 실존예수님이 오셔서 말씀을 풀어 주신다고 했으므로 귀를 열고 새 말씀 알기를 사모해야 한다. 그것이 니골라당의 교훈을 회개하는 일이다. 그런 자에게는 감추었던 만나와 흰 돌을 주신다고 했다. 만나는 실존예수님이 풀어주시는 진리의 새 말씀이고 흰 돌은 진리의 실체이신 예수님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니골라당의 교훈을 회개하는 자에게는 생명의 떡인 새 말씀을 주시고 또 새 말씀의 실체이신 실존예수님을 만나게 해 주신다는 말씀이다. 즉 니골라당의 교훈을 버리는 것이 곧 자동적으로 진리의 새 말씀으로 거듭남이 되기 때문이다.

계시록 2:1823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 보다 많도다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행음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리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 한대로 갚아 주리라,

해설: 이세벨은 이스라엘왕 아합의 왕후다. 그녀는 본디 바알신에 정통한 자로서 아합왕을 바알신으로 유혹해 여호와를 떠난 가장 악한 왕이 되게 했으며, 여호와의 많은 선지자들을 죽였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이세벨이 이스라엘을 짓밟은 자칭 선지자라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을 버리고 사단과 행음하는 이세벨과 같은 적그리스도는 오늘날 우리 주변에 빼곡히 포진해 있고 사람들은 나방이 불을 찾아들듯 원근사방에서 모여들어 문전성시를 이룬다. 회개할 기회를 주셨으나 회개치 아니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혹할 때에, 그와 그의 추종자들을 결코 용서하지 않으시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신다고 했다. 이세벨은 오늘날 육체로 오신 실존예수을 부인하는 자들을 적그리스도를 뜻하고 있다.  요일 4:1-3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이같이 예수그리스도께서 육체로 벌써 오셨다고 성경은 증거 하는 데도 “적그리스도 영을받은 자들은 오늘날의 실존예수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적그리스도(이세벨)를 추종하는 자들은 짐승의 표를 받는 자로서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

계시록 2:24-25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해설: 사단의 깊은 것이란 무엇인가? 예수께서 모든 것을 밝히시기 위하여 말씀으로 오신 이때에, 그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사단의 깊은 것이 과연 무엇인지 알아보기로 한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7:13-14)라고 했다.

그리고 예수님 자신이 그 좁은 문의 십자가를 지시고 본을 보여 주시며 모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하였는가? 복음을 받자마자 고난의 좁은 문이 아니라 사단이 준 선악과를 먹고 희희낙락 만족해 버린 넓은 길을 갔다. 만족하였으므로 예수님이 주신 한 달란트의 복음을 애써 불릴 필요 없이 그냥 땅에 묻어두었다. 예수님의 고난의 십자가가 아니라, 예수님이 베푸신 이적기사에만 마음을 쏟는 기복신앙에 빠졌다. 물론 복음시대 이천 년을 보내면서 예수님이 주신 복음을 온 세계에 보급시킨 것은 한 달란트를 열 달란트로 남긴 유일무이한 칭찬거리임에 틀림없다. 그 힘겨운 수고를 예수님은 잘 아신다고 했고, 일곱 교회에게 보내시는 편지마다 칭찬하셨다. 그러나 그 외는 완전히 불합격 판정이다. 신앙의 양과 부피는 팽창시켰으나 신앙의 질은 그 지식 면에서 일보의 발전도 없이 부패해 있고 순결성에서 추락하였다. 예수님의 복음은 모두 비유라고 했음에도 우선 죄가 무엇인지 모르고 여전히 비유로 된 물로 세례를 받고, 금식이 무엇인지 모르고 여전히 비유로 된 음식을 폐하여 금식하고, 예수님의 피와 살이 무엇인지 모르고, 여전히 그것을 상징한 물질적 포도주와 떡을 떼고, 그리고 창조가 무엇인지 모르고, 여전히 창세기의 창조기사를 문자 그대로 자연계 창조기사로만 보는 등의 어린아이 믿음을 벗어나지 못했고, 이천 년 복음역사도 유구하게 겨울잠을 자고 있었다. 사람들의 의식은 변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깊이 알고자 하는 지적욕구는 높아졌으나 때에 따른 말씀은 없이, 밑도 끝도 없이 여전히 예수 믿으면 구원이라는 때를 따라 주인(예수님)의 집안 식구들에게 새로운 양식을 나누어 주어야 할 종의 일은 접어둔 채, 목자는 토색하고 교인들은 초대형 교회를 찾아 몰려다니며 끝없이 물량주의 세속화로 치닫고 있으므로 말씀에는 우물 안 개구리이다(마24:44∼51) 다시 말해 우리도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고 초등학문에서 죽고 도의 완성을 이루어야 했는데, 사단이 선악과로 인하여 우리를 초등학문에서 죽지 못하도록 막은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알지 못한 사단의 깊은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우리가 위와 같은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실 것을 이미 아셨다. 즉 비유의 성경을 풀어내지 못할 것을 아셨다. 오직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성서를 해석해 주시고 사단의 깊은 것을 알려주시기로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라고 하신 것이다.

계시록 2:2629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내가 또 그에게 새벽별을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해설: 이기는 자에게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다고 했다. 이기는 자는 첫째로 육체로 다시 오실 오늘의 실존예수님이고 철장은 악인을 쳐서 멸하는 오늘의 실존예수님의 심판의 말씀이다. 또 새벽별을 주신다고 했다. 새벽별은 오늘의 실존예수님이 택한 자들을 생명 샘으로 인도하시는 진리의 말씀을 뜻한다. 창조 이래 미완성일 동안, 우리는 모두 만장을 날리며 북망산천을 오르고 있는 사망의 몸이었는데(어두운 밤이었는데) 새벽별인 진리의 새 말씀에 의해 영생을 받는다. 오늘의 실존예수님은 이렇게 지난날의 긴긴 사망의 어둠을 이기신 빛이기 때문에 명랑한 새벽 별이 되신다. 우리는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고 성경을 알지 못한다. 예수님만이 다시 오셔서 사단의 깊은 것을 알려주시고 성경을 풀어주시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님만이 우리의 어둠을 밝혀주시는 새벽별이 되시며, 생명의 새 말씀이 되시며, 교회들에게 말씀하시는 성령이 되신다. 그런데 새벽별이요, 생명의 새 말씀이요, 성령이신 예수님의 말씀은 귀를 열고 있는 자들만이 들을 수 있다. 즉 니골라당의 교훈을 회개하고, 선악구별심의 선악과를 토해버리고, 마음 문을 열고 있는 자들만이 들을 수 있다. 그러므로 편지 말미에는 언제나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맺고 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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