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9:1-3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 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해설: 예수께서 길을 걸어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때 제자들이 예수께 묻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자기 죄 때문입니까? 아니면 그 부모 때문입니까? 하고 묻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 “인과응보”로 심는 대로 거두는 원인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며 원인이 없이 발생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나면서부터 소경된 자는 누구의 죄 때문인지 궁금하여 예수님께 묻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은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 때문이 아니라, 그 소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나타내려고 소경이 된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은 어느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해서 도구로 혹은 희생 제물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 세상의 인간들은 물론 자연만물도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계획하시고 운행하시고 창조하시는 피조물들이며 하나님은 창조주이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9:4-7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아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해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때가 아직 낮이기 때문에 나를 보내신 하나님의 일을 우리가 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밤이 속히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낮”은 “빛”이신 예수님 자신을 말씀하며 “밤”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떠나 예수님이 없을 때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내가 세상에 있을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르시고 말씀하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소경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실로암 못”으로 가서 눈을 씻으니 눈이 뜨여 밝은 눈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침으로 진흙을 이겨 눈에 바른 진흙은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비유”로 말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소경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 이외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태어날 때 소경으로 난 이 사람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리고 예수님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믿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실로암 못”은 하나님께서 보내심을 받았다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구원자로 보내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예수님을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빛이며 생명의 말씀으로 소경된 자들의 눈을 열어주는 구원자이시며 치료하시는 의사이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9:8-12 이웃 사람들과 및 전에 저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가로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혹은 그 사람이라 하며 혹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제 말은 내가 그로라 하니 저희가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저희가 가로되 그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
해설: 이 소경을 보고 알고 있던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길에서 구걸하던 걸인이라는 것을 보고 알았던 사람들이 말하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그 사람이라 하며 혹은 아니라 그 소경과 비슷하다 하며 서로 말하거늘 소경이 나서서 “내가 바로 그 소경이다” 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소경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그 소경에게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하여 뜨게 되었느냐? 고 묻는 것입니다. 소경은 사람들에게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다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소경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그러면 너의 눈을 뜨게 한 그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예수의 행방에 대해서 묻는데 예수님은 이미 그곳을 떠나 없기 때문에 소경은 나는 알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을 못 보고 살아가는 소경들은 꿈에도 소원이 곧 눈을 한번 만이라도 떠서 이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경에는 육신적인 소경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세계 곧 영의 세계를 보지 못하는 “영적소경”들이 있습니다. “영적소경”은 아직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지 못한 자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물론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자신이 소경인지 아닌지를 모르고 있으며 알려고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있고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예수를 믿음으로 이미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 “영”의 세계를 본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영”의 세계를 본다는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는 예수님이 아무런 소용이나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자들의 구원자는 예수를 믿음으로 자신들의 눈을 뜨게 하여 아들을 만들어 준 자가 오늘날 기독교목회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9:13-21 저희가 전에 소경 되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 어떻게 보게 된 것을 물으니, 가로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 바리새인 중에 혹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서 온 자가 아니라 하며 혹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피차 쟁론이 되었더니, 이에 소경 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한대 유대인들이 저가 소경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묻되 이는 너희 말에 소경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되어 보느냐, 그 부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가 우리 아들인 것과 소경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그러나 지금 어떻게 되어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 하나이다. 저에게 물어보시오 저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해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기 위해 전에 소경 되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습니다.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발라서 눈을 뜨게 한 날은 “안식일”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기 때문에 “안식일”은 절대로 일을 하거나 환자가 생겨도 치료를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안식일”에 침으로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발라서 눈을 뜨게 하셨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을 범했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예수님이 곧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안식일”의 실체를 모르기 때문에 “안식일”을 지키는 안식 교인들과 주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기독교인들 간에 논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안식 교인들은 하나님께서 지키라고 명하신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기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지만 “안식일”을 임의로 변경하여 일요일로 지키는 기독교인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바리새인들은 그 소경이 어떻게 하여 눈을 뜨고 보게 된 것인지 물으니 소경이 말하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실로암”에 가서 씻고 보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어떤 자는 세상의 죄인으로 온 자가 아니라 하며 또 어떤 자는 죄인이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피차 쟁론이 일어난 것입니다.
때문에 바리새인이 소경된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소경은 그는 선지자라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자기 병을 고쳐 주는 자가 의사이듯이 눈먼 소경은 자신의 눈을 열어주면 선지자이며 구원자인 것입니다. 때문에 눈을 뜨게 하여 주신 예수님이 자신에게는 선지자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가 소경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확인하기 위해 이 자가 소경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고 물으면서 지금은 어떻게 되어 보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말을 들은 소경의 부모는 이자가 우리 아들인 것과 소경으로 난 것이 분명하다고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소경 되었던 내 아들이 지금 어떻게 되어 보는지 또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자세히 알지 못하니 저가 장성하였으니 직접 물어보라고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자세히 말해 줄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한데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책망이라도 잡아서 예수를 고소하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자신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행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에게 걸림이 되는 말씀을 전하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9:22-25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 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저희를 무서워함이러라, 이러므로 그 부모가 말하기를 저가 장성하였으니 저에게 물어보시오 하였더라, 이에 저희가 소경 되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우리는 저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 이니이다.
해설: 소경이 되었던 그의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라 시인하는 자는 출교(교회에서 내쫓음)하기로 결의하였기 때문에 두려워서 예수를 그리스도라 말하지 못한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회에서도 누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오늘날의 구원자, 즉 하나님의 아들을 그리스도라 말하면 무조건 이단으로 몰려 그 교회에서 쫓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요한일서 4장을 통해서 오늘날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를 부인하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요일 4:2-4 예수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상기의 말씀은 하나님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아들들이 전하는 말씀을 말하며, 적그리스도의 “영”은 거짓목자들이 전하는 말씀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을 분별하는 방법은 오늘날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고 오신 것을 인정하는 자는 하나님의 “영”을 받은 자들이며 오늘날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를 부인하는 자들은 적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즉 오늘날 육체를 입고 와서 계신 오늘날의 “실존예수님”을 시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오늘날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님을 부인하는 자들은 “적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오늘날 기독교목사들도 오늘날 육신을 입고 오신 “실존예수님”을 이단으로 배척을 하며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을 하지 않으며 지금도 구름 타고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오신다는 재림 예수님만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이 이천 년이 지나도록 기다리는 예수님은 앞으로 이만 년을 기다려도 오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름이라는 것은 부활된 말씀을 말하며 예수님은 이미 부활된 말씀으로 오셔서 지금 “실존예수님”으로 계시기 때문입니다. 상기의 말씀은 너희가 예수님께서 다시 “오리라 한 말을 들었거니와 예수님은 지금 벌써 오셔서 계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미 오셔서 지금 계신 “예수그리스도”는 곧 말씀이 육신 되신 분으로 예수님의 영(생명의 말씀)이 육체 안에 오신 분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육체 안에 성령(말씀)이 임(잉태)하여 말씀이 육신 되어 오셨던 것처럼 오늘날 “실존예수님”도 자신의 육체 안에 하나님의 영(말씀)이 오셔서 계시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다리고 있는 재림 예수는 이미 사람 안에 성령(생명의 말씀)으로 임(잉태)하여 말씀이 육신 되어 오셔서 지금 계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육체 안에 있던 영(생명)이 사도들의 육체 안에 임하고 사도들 안에 있는 “영”이 “디모데와 디도”에게 임하고 “디모데와 디도”에게 있던 “영”이 다시 다른 사람에게 계속 임하고 임하면서 낳고, 낳고 하면서 오늘날까지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의 생명(영)은 낳고 낳고의 역사를 통해서 오늘날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들 안에 오셔서 계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예전에 입고 계셨던 육체만 다를 뿐 지금도 동일한 생명으로 성령(생명의 말씀)이 육신 안에 임하여 지금도 구원자로 와서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목회자들이나 기독교인들은 지금 육체로 오셔서 계신 “실존예수님”을 부인하며 이단으로 배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상기의 말씀을 통해서 오늘날 육체로 오신 “실존예수님”을 부인하는 자는 적그리스도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지금도 오늘날 말씀이 육신 되어 오신 “실존예수님”를 시인하지 않고 배척을 하면서 미래에 나타날 구름 타고 오실 재림 예수님만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오늘날 기독교목사들의 거짓 증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때문에 지금까지 수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을 받지 못하고 멸망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기독교목회자들이 성경적인 현재의 구원자를 올바로 알려주었다면 지금까지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오늘날의 구원자를 믿고 영접하여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났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오늘날 목회자인 적그리스도의 말씀을 듣지 말고 상기의 말씀대로 오늘날 하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보내주시는 “실존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고 영접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바라고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하루속히 기독교목사들이 인도하는 멸망의 넓은 길에서 벗어나 참 목자 곧 하나님의 아들이 인도하는 좁고 협착한 생명의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면 오늘날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오늘날의 구원자(참 목자)가 여러분을 구원하고 살려서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유대교 예수님 당시도 예수를 그리스도라 하면 출교를 당하기 때문에 지금 그 소경의 부모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 말하지 못하고 저가 장성하였으니 저에게 물어보라고 한 것입니다. 그 부모가 하는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소경 되었던 그의 아들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우리는 저 사람이 죄인인 줄을 아노라 하니 그 아들이 대답하되 나는 그가 죄인인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었는데 그가 내 눈을 뜨게 하여 지금 보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오늘날 기독교 안에도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9:26-34 저희가 가로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저희가 욕하여 가로되 너는 그의 제자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라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그 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상하다 이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으되 당신들이 그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는 도다.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이에 쫓아내어 보내니라,
해설: 유대종교 지도자들은 소경 되었던 자에게 다시 말하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으며 어떻게 하여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고 재차 또 묻고 있습니다. 그는 대답하기를 내가 당신들에게 이미 말했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또 듣고자 하십니까? 그러면 당신들도 그 제자가 되려고 하십니까? 하니 저희가 그에게 욕을 하면서 너는 그의 제자이나 우리는 모세의 제자니라, 하나님이 모세에게는 말씀하신 줄을 우리가 알거니와 이 “예수”라는 사람은 어디서 왔는지 유대종교 지도자들이 알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종교 지도자들의 말을 듣고 소경 되었던 자가 대답하여 말하되 이상하다 “예수”라는 사람이 내 눈을 뜨게 하였는데도 당신들은 그가 어디서 왔는지 모르고 있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은 죄인의 말이나 기도는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이나 기도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들은 “예수”라는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소경 되었던 자는 이어서 창세 이후로 지금까지 소경으로 난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는데 “예수”라는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어떻게 내 눈을 뜨게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만일 “예수”라는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시지 않았으면 내 눈을 뜨게 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소경의 말을 들은 유대종교 지도자들은 네가 온전히 죄 가운데서 나서 우리를 가르치느냐 하고 소경되었던 자를 밖으로 쫓아버린 것입니다. 이와 같이 소경되었던 자는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구원자, 즉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거 하다가 유대종교 지도자에서 출교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나면서부터 소경 된 자를 들어서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신앙을 지적하며 깨우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의 말씀과 같이 나면서 소경된 자는 자기의 죄나 부모의 죄 때문에 소경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시고 또한 소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세상만물을 주관하시며 새롭게 창조하시는 창조주이시며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받아야 할 피조물들이며 또한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9:35-41 예수께서 저희가 그 사람을 쫓아냈다 하는 말을 들으셨더니, 그를 만나서 가라사대 네가 인자를 믿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가로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해설: 예수께서 유대인들이 소경 되었던 사람을 쫓아냈다는 말을 들으시고 그를 찾아가 네가 “예수”를 믿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소경이 말하되 “주여 내 눈을 뜨게 하신 분이 누구입니까? 내가 그분을 믿고자 합니다”라고, 예수님께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소경 되었던 자의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예수라”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소경은 “주여 내가 당신을 믿습니다” 하며 예수님께 절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모인 무리들 가운데서 말씀하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 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말하되 “그러면 우리도 소경이란 말인가?” 하며 의아해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는 말을 들으신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소경이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하신 말씀은 너희가 소경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내가 눈을 열어줄 터인데 너희가 본다고 말하니 너희는 영원히 보지 못한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음으로 이미 구원을 받고 모두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있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이미 본다고 하는 바리새인들과 같이 오늘날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있는 기독교인들은 구원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은 아직 죄인이요 보지 못하는 소경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오늘날의 “실존예수님”을 찾을 것이며 또한 기독교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실존예수님”은 구원하실 것인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2000년 전의 유대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를 믿음으로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날의 “실존예수님”은 기독교인들을 구원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유대교 바리새인들의 말과 같이 소경이 아니라 본다는 의인이기 때문에 오늘날의 “실존예수님”은 구원하실 수가 없으며 기독교인들은 지금도 여전히 죄 가운데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의인의 자리에서 내려와 자신은 아직 죄인이요, “보지 못하는 소경이요 듣지도 못하는 귀머거리라”는 것을 고백하며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오늘날의 “실존예수님”을 믿고 그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듣고 영접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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