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13장 본문생략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본문의 말씀은 기독교목사들은 물론 교인들도 너무나 잘 알고 누구나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무엇을 그리고 어떤 뜻으로 말씀하고 계신지 그 영적 의미를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 속에는 놀랍게도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통해서 천국으로 가는 길이 모두 숨겨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고전 13장”본문 말씀 속에 감추어져 있는 천국으로 가는 길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은 오직 “믿음”이요 “소망”은 죽어서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이며, 그 실천적 삶은 이웃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믿음”으로 천국을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은 “믿음”으로 시작해서 “믿음”으로 마친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미 구원을 받은 것으로 믿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있으며 천국도 들어갈 것처럼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는 말씀과 같이 자신이 바라고 원하는 것들이 실제 이루어져서 실체로 나타나지 않으면 그 “믿음”은 허상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모든 것을 믿을 수밖에 없고 오직 “믿음”으로 살 수밖에 없을까? 그 이유는 오늘날 세상 기독교회는 유치원과정의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으로 오직 “애급”(믿음)밖에 모르고 “광야”(소망)나 “가나안”(사랑)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세상에서 종교생활 하는 기독교 “애급교인”들은 오직 “믿음”하나 붙잡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믿음”으로 구하고 구한 것을 받기 위해 기복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이라는 기독교는 “애급교회”의 “신학”교리를 중심으로 하는 기복신앙인들은 그리스도의 초보에 머물러 있는 어린아이의 신앙이기 때문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바라는 신앙입니다. 이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교회에 드리는 헌금도 하나님으로부터 30배 60배 100배의 복을 넘치도록 받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전 13장의 말씀은 “내가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 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으며 또한 “내가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웃의 영혼을 구제한다 해도 자신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 주며 구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만일 이웃을 구제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준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웃을 구제하기 위해 자신의 몸까지 내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닌가? 그러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은 과연 어떤 “사랑”을 말씀하시는 것일까? 하나님의 “사랑”은 영혼을 구원하는 “아가페사랑”으로 그 실체는 하나님의 “생명”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그 안에 하나님의 “생명”(사랑)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명”이 없다면 사람에게 육신적인 도움을 주거나 인간적인 “사랑”은 할 수 있어도 죽은 영혼을 구제하거나 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애급”이라는 세상기독교회 안에는 오직 “믿음”과 그에 따른 목사들이 있을 뿐 “광야의 소망”이나 “가나안의 사랑”은 물론 하나님의 아들(실존예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애급”을 벗어나 “광야”로 나온 자들에게만 “사랑”이 있고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아들은 “광야”의 모든 훈련을 마치고 “가나안”에 들어간 자에게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아가페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사실을 직시하고 하루속히 “애급”의 “신학”교리와 기복신앙에서 “출애굽”(탈출)해서 “소망”의 땅인 “광야”로 하루속히 나아가야 합니다. 이 때문에 “출 애급”한 기독교인들이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할 기도는 천국이나 하나님의 생명이 아니라, 하루속히 “애급신앙”에서 벗어나 “광야”로 나아가는 것이 먼저입니다.
왜냐하면 “가나안”땅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아들(예수)로 거듭나려면 반드시 “애급”의 초보적인 어린아이 신앙에서 벗어나 “소망”의 땅인 “광야”로 들어가서 율법을 통한 훈련과 그에 따른 시험과 연단을 참고 견뎌내야 “가나안”땅에 들어갈 수 있고, “가나안”에 들어간 자가 “실존예수님”의 “아가페사랑”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예수)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본문 말씀에 “믿음, 소망,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사랑”이 제일이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애급”의 기복신앙인들은 “믿음”으로 구하는 것이며 “광야”의 율법 신앙인들은 “소망”을 가지고 “가나안”을 찾아가는 신앙이며 “가나안”에 이른 자들은 “사랑”의 문을 두드려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즉 “애급”의 기독교인들은 “믿음”으로 육신의 복을 “구하는” 신앙이요, “광야”로 나온 신앙인들은 “소망”을 가지고, “가나안”을 “찾아가는” 신앙이요, “가나안”에 이른 자들은 “사랑”을 소유한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기 위하여 예수님께 “두드리는”신앙입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 너희는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고, 말씀하신 것인데 이 말씀은 기독교목사들같이 세상의 썩어 없어질 세상의 복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라”는 뜻이 아니라, 자기 신앙의 차원에 따라 “애급에 있는 자들은 구하는 것이며, 광야에 있는 자들은 찾으라는 것이며, 가나안에 들어간 자들은 두드리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가나안”에 이른 자들이 이때 “실존예수”를 얼굴과 얼굴을 맞대며 볼 수 있는 것이지 “광야”에 있는 자나 “애급”에 있는 자에게는 “예수”자체가 없기 때문에 “실존예수”가 내 앞에 있다 해도 그가 누구신지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실존예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배척해서 죽인 것은 “애급세상”에 있는 존재들이라 “실존예수”를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아가페사랑”은 반드시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 즉 하나님의 “생명”이 성취된 자를 바로 하나님의 아들(예수)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천국을 향해 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믿음, 소망, 사랑과 애급~ 광야~ 가나안”은 항상 제시되어 있는 것인데 그중에 제일이 “사랑”(가나안)이라 말씀하신 것은 “사랑”이 구원의 완성이며 “사랑”이 곧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직도 기독교 “애급”의 “신학”교리와 기복신앙에 머물러 있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하루속히 “출애굽”(탈출)을 하여 “소망”의 땅인 “광야”를 거쳐 “가나안”땅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사랑”을 성취해야 합니다. “광야”는 “소망”의 땅입니다. 즉 “광야”에는 “애급”의 “믿음”이나 “가나안”의 “사랑”은 없고, 오직 “소망”만 있다는 말입니다.
이 때문에 기독교를 “출 애급”(탈출)하여 “광야”로 나온 자들은 “사랑”이 있는 “가나안” 땅을 “소망”중에 바라보며 “광야”의 “불기둥구름기둥”과 모진 훈련과 시련들을 참고 견뎌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유분방한 세상기독교 “애급”의 존재가 “광야”에서 죽지 않으면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없고 “광야”의 존재가 죽지 않으면 “가나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날(부활)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광야”에는 하나님의 “율법”(모세)이 있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나안”땅으로 인도하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징계와 연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모지 사막과 같은 “광야”에는 “만나”(무교병)와 불 뱀과 전갈이 있을 뿐 “애급”에서 먹던 진수성찬의 양식 “유교 병”이나 부귀영화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광야”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사랑”(예수)이 있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 모진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시험과 연단”을 통해서 영적 준비를 시키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율법”(모세)은 “광야”로 나온 자들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역할을 감당할 뿐 “생명”을 줄 수 없는데, 그 이유는 “율법”(모세)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광야”에 “율법”(모세)도 죽은 영혼을 살리지 못했는데 아직 세상교회에서 “출애굽”도 못한 “애급”의 기독교 거짓목사들이 예수의 이름을 빙자하여 영혼을 구원한다고 큰소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실제 “애급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신은 이미 “출 애급”(탈출)을 해서 현제 “광야”나 “가나안”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기독교에서 벗어나 “출애굽”한 자만이 “광야”나 “가나안”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가나안 사랑”(아가페)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있어도 “사랑”(생명)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천사의 말을 하고 방언과 예언을 하며 모든 비밀과 지식을 알고 있어도 “가나안“에만 있는 “사랑” 즉 하나님의 “생명”이 없으면 울리는 꽹과리와 같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애급교회”에는 “사랑”자체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자는 쭉정이와 같이 죽은 영혼을 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이 있는 자는 “광야”의 “율법”(모세)에 자유 한 자가 되어 “사랑”을 소유하기 때문에 예수님이나 사도들과 같이 죄인들의 죄를 사할 수 있고 “죽은 자”를 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사랑)이 계신 “가나안”땅은 기독교에서 “출애굽”(탈출)한 자들이 “광야”의 훈련을 모두 마치고 “광야”의 시험에 합격된 자들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만일 “광야”의 훈련이 힘들다고 원망불평을 하거나 도중에 실족하는 자들은 모두 “광야”에서 죽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출 애급”(탈출)하여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출애굽”한 “60만”대군이 모두멸망당한 것은 “광야”의 모진훈련을 참고 견디지 못하고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며 불평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을 “소망”중에 바라고 잘 참고 견딘 “여호수아와 갈렙과 새로 난 자”들은 “가나안”에 들어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 말씀을 하나님께서 오늘날 천국으로 가는 길을 그림자와 같이 보여주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만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마음을 강퍅케 하여 이 말씀을 외면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멸하신 것과 같이 오늘날 기독교인도 멸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을 불모지 사막의 “불기둥과 구름기둥”그리고 “전갈과 불 뱀”이 있는 “광야”로 이끌어내어 연단을 시키는 것은 세상이라는 기독교인들의 “애급”의 존재가 죽지 않으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바다의 “물고기”와 같은 “애급세상”의 기독교인들의 존재들을 풀무불 속과 같은 “광야”로 이끌어내어 “광야”의 율법으로 시험과 연단을 통해서 “애급”의 육신적인 존재를 죽이고, 다시 하나님의 아들로 재 창조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모세를 원망하고 하나님을 원망했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이 진노하시어 “광야”에서 모두 멸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런 말씀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순종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대로 기독교에서 “출애굽”(탈출)을 하여 “광야”로 나아가 시험과 연단의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가나안 땅에 사랑(아가페)이 있다는 것은” 곧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실존예수님”이 현재 오늘날에도 계시다는 말입니다. 이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가나안”에 계신 예수를 만나려면 반드시 먼저 기독교에서 “출애굽”(탈출)을 하여 “광야”의 훈련을 통해 시험과 연단의 과정을 모두 마친 후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야 이때 “실존예수”를 얼굴과 얼굴로 대면하면서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애급 교회에는 애급의 기독교목사만 있고, 광야교회에는 광야의 목사만 있고, 참 목자인 하나님의 아들 실존예수님은 가나안 땅에만 계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먹는 양식도 각기 다른데 “애급교인”들은 누룩이 잔뜩 들어있는 “유교 병”을 먹는 것이며, “광야”로 나온 “광야교인”들은 맛이 없는 “만나” “무교병”을 먹는 것이며 “가나안”에 들어간 자들은 “진설병” 꿀과 같은 말씀을 먹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유교병”은 기독교 거짓목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여 만들어낸 각종 “신학”교리들을 말하며 “무교병”은 조금도 가감되지 않은 하나님의 “율법”을 말하며 “진설병”은 산 자 즉 하나님의 아들인 “실존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말합니다. 이렇게 “애급과 광야”에는 지금까지 예수님이 없었지만, “가나안”땅에는 오늘날 “실존예수님”이 항상 예전에도 계셨고, 오늘날에도 실존으로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기독교 세상이라는 “애급교회”에는 예수가 없어 2000년 전에 오셨던 예수를 믿고 있는 것이며, “광야교회”에서는 예수를 거울, 즉 율법과 모세를 통해서 희미하게 바라보는 것이며, “가나안교회”에 들어간 자들은 현제 “실존예수님”의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여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가나안”에 이른 자들은 예수님을 대면하여 보고 예수님의 음성을 직접 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가나안”에 이른 자들은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날마다 일용할 양식으로 먹음으로써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게 되어 하나님의 “사랑”(생명)을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구약성경 “출애굽기”말씀을 통해서 “천국으로 가는 길”과 구원의 과정을 성경을 통해서 “애급~ 광야~ 가나안”으로 분명히 제시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민족의 역사가 아닙니다. 이스라엘민족을 “비유”해서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거울과 같이 그림자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그대로 적용이 되기 때문에 거울과 같이 실제적으로 보여주시는 것을 이 글을 쓰는 필자 새사람 역시 이런 경로를 통과했기 때문에 필자가 자신 있게 이런 글을 올리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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