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6:25~3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 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 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니라,
상기의 말씀은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너희가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너희는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방적)도 하지 않는 백합보다 귀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진정한 뜻은 사람의 몸과 목숨이 먹는 음식이나 마시는 물 그리고 입는 옷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몸과 목숨이 없으면 먹고 마시고 입는 것도 아무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기의 본문의 말씀의 진정한 영적인 뜻인 음식, 물, 옷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두 비유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라라는 말씀입니다. 그 나라는 실존예수님을 말하며 그 의(義)는 실존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할 것은 오늘날 실존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할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이라 해서 예수님의 말씀이나 기독교목사의 말씀이 다 같은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하늘의 영(靈)의 말씀으로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이고, 기독교목사의 말씀은 거듭나지 못한 혼의 생명인 죽은 자의 생명으로 죽은 자를 살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실존예수님의 입에서 직접 나오는 영의 말씀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먹어야 할 일용할 음식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입어야 할 옷 도 생명의 말씀의 옷을 입어야 하는 것이고 마셔야 할 물도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아주 중요한 것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먹고 마셔야 할 오늘날의 일용할 양식은 2.000년 전에 유대인들에게 오셨던 유대인의 예수님이 주시는 양식이 아니라, 오늘날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오늘날 한국인의 실존예수님 입에서 직접 나오는 생명의 말씀이 기독교인들이 먹어야 할 양식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육을 가진 인간을 구원하려면 어느 때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께서 직접 육신을(요1:14) 입고 오셔야 인간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오늘날도 육을 입고 실존 예수님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2.000년 전에도 육을 입고 계셨고, 오늘날도 육을 입고 계시고, 앞으로도 육을 입고계시고, 항상 실존으로 계셔야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계시록 1:8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이같이 하나님이신 실존예수님은 전에도 계셨다는 말씀은 우리의 전 세대를 말하며, 이제도 계시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 세대를 말하며, 장차에도 오신 다는 것은 우리 후세대에도 항상 실존으로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신 실존예수님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항상 실존으로 계실 때만이 구원이 성립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이나 오늘날 기독교목사들은 구원을 못 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실존예수님의 생명의 말씀은 살아있는 말씀이라 그 말씀을 먹으면 반드시 혼적인 죽은 자들이 영적인 존재로 살아나지만, 기독교목사들은 혼적존재로 이미 죽어있는 혼적존재들이라 죽어있는 기독교인들을 살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말씀은 똑같다 해도 죽은 자의 말씀은 죽은 자를 살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죽은 자는 육체는 살아있으나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혼의 존재를 성경에서는 죽은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8:22 예수께서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성경이 말하는 죽은 자는 육체는 살아있으나 하나님의 생명인 영이 없는 자를 성경에서는 모두 죽은 자라 하십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먹지 말아야 할 양식은 유대종교 지도자들의 말씀을 먹지 말아야 하고 2.000년 전에 유대인들에게 오셨던 그 실존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양식은 유대인들이 먹어야 하는 양식이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오늘날 목사들의 양식을 먹지 말아야 하고, 오늘날 실존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직접 먹어야 죽었던 자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2.000년 전에 유대인들에게 오셨던 실존예수님이 주시는 양식을 유대인들이 먹지 않고 이단으로 배척한 것 같이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오늘날의 실존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양식을 먹지 않고 또 이단으로 배척한다는 것입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그럴까요?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시는 하나님(예수)은 보통사람과 똑같이 사람의 육체의 몸을 입고 있는 평범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인간 실존예수님은 유대인들은 물론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하나님이신 예수로 믿거나 인정하지 않고 이단자로 배척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날마다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할 것은 육신의 양식이나 옷이 아니라, 오늘날 하나님께서 보내주시는 구원자 곧 하나님께서 인간의 육체를 입고(요1:14) 오신 인간 실존예수님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인간 실존예수님은 찾지도 않고, 지금도 육신을 위한 의, 식, 주와 세상에서 채워지지 않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세상의 복을 구하고, 찾고, 두드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육신적인 문제들을 위하여 찾고 두드리는 자들은 믿음이 적은 자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이방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너희 천부께서 너희가 있어야 할 것 의, 식, 주는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육신의 필요한 것(의식주)도 더 채워주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본문말씀에 너에게 네 의복이 없을 때 너는 무엇을 입겠느냐, 누가 너의 키를 더 자라게 할 수 있느냐, 네게 너희 의복을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하나님)이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 6:25 이하에 의, 식, 주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먹고 마시고 입는 것은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공중에 나는 새도 먹이시며 들의 백합화도 입히시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너희를 굶기거나 벗게 하시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 식, 주는 육신의 의, 식, 주에 한한 것이 아니라, 영적인 의, 식, 주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너희가 먹고 마실 영적인 양식이나 입을 옷은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해 주신 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너희가 염려한다 하여 키를 한자라도 크게 하거나 작게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 말씀 역시 사람의 육신의 키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적으로 성장하는 키도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성장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생사화복은 물론 영적인 생사화복도 모두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것을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말씀을 깨달아야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모르고 예수를 믿기만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절대로 아님을 기독교인들은 알아야 합니다.
(원문출처: 새사람 블로그)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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