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2:11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 때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 이어 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임금은 수많은 하객 중에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발견하고, 마치 알곡 중에서 뉘를 골라내듯이 그 한 사람을 밖에 내쳐서 불타는 지옥 불에 던져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네가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아니하였는가?라고 임금이 질문을 했음에도 할 말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임금의 질문에 어찌해서 대답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 지금까지 사람이 사는 땅이라면, 어느 곳이던 하나님의 나라가 전파되지 아니한 곳이 없을 것입니다. 지금 이 한 사람이 임금의 질문 앞에 입을 열지 못했던 것은, 그 역시 복음을 들었지만, 믿음으로 화합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예복을 준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본문 임금의 아들 혼인잔치는 바로 사람들이 어떻게 천국에 들어가는 것인지, 그 사실을 그림자로 보여주는 것이며, 장차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예복을 반드시 입어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다는 내용을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시해서 보아야 할 문장은 바로 예복입니다. 누구든지 이 예복을 입지 않으면 천국에 절대로 못 들어갑니다. 임금님은 예복을 대단히 관심을 가지시고 계신분입니다. 그렇다면 예복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스가랴 3:4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지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우리가 지금까지 성경을 많이 보았고 복음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그리스도의 예복을 입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성경을 자세하게 살펴보면, 그 안에 그리스도의 옷을 입는 길이 분명히 열려져 있습니다. 그 몸에 더러운 누더기 옷을 벗기시고, 그 몸에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옷(말씀)을 입혀주셨던 것입니다. 무조건 식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말은 아주 잘못된 말입니다. 사도행전 17:11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런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성경에서 나타난 베뢰아 사람처럼 정말 말씀이 그런가 하고 찾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피의 공로로 구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흘려주시는 피는 어떤 피 인가? 피는 무엇이게 예수님의 피의 공로로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가? 이러한 것을 알아야 하는데 이러한 것을 모르고 피 자체를 믿고 피의 공로로 구원을 받았다고 믿는 것은 곧 우상을 믿는 것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현실입니다. 예수님께서 흘리신 피가 사람의 피를 말 하는가? 절대 아닙니다. 성경을 문자로 보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비유로 감춰진 비밀이기 때문에 육체의 피가 아니고, 예수님이 희생의 피를 흘리신 것은 곧 진리의 하나님의 말씀을 비유로 피 라고 하는 것입니다. 계시록 19: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 하더라, 이같이 피 뿌린 말씀의 옷을 입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의 피라야만 우리가 하나님을 모르는 우리의 본질적인 죄를 사하시고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능력의 피 이기 때문입니다. 피는 생명이고 생명은 곧 피 에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 때 얻어지는 상급입니다. 요한복음 1:1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의 실체가 말씀이기 때문에 말씀을 모르면 어떻게 하나님을 믿으며 예수를 믿겠는가? 요한복음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모르고 예수를 모르는데 어떻게 하나님 예수님만 잘 믿으면 구원받았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따라서 말씀이 생명이며, 말씀이 피의 본질입니다. 누가복음 10장에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서 옷을 빼앗기고 실컷 두들겨 맞아서 죽어가는 내용이 있습니다. 지금 강도 만나서 죽어가는 그 앞에 바로 제사장(목사)과, 성막에서 종사하는 레위 인(전도사)이 옷을 뺏고 그를 보고 피하여 그냥 지나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지금 강도 만난 자가 필요한 것은, 죽어가는 상처를 치료받고 그 벌거벗은 몸에 옷(말씀)을 입는 것이 전부일 것입니다.
이들은 빼앗는 옷도 세상의 의복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옷 즉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강도(삯꾼목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자들을 이단자들이라고 공격하여 말씀을 빼앗고 있는 자들이 오늘날 기독교 목회자들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세상교회 모든 사람의 모습은 온몸이 멍든 것과 상처뿐인 강도 만난 사람 같은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하나님의 종이며 목회하는 자가 지금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가는 한 영혼을 돌아보지 못하고 피하여 지나간다면, 과연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하는 일이 무엇이란 말인가? 이것이 당시 성직자들의 타락한 모습이며, 오늘날에 기독교목사들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원문출처: 새사람 블로그)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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