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16:15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하나님의 날이요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는 주님이 “도적”과 같이 임하시겠다고 하시면서 그러나 그때 자기 “옷”을 찾아 입고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한 자들에게는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24:42~43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살전 5:2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본문에서 주님께서 “도적”같이 오신다는 이 경고는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세상이 천지개벽으로 마지막 종말 때에 재림예수님이 아무도 모르게 “도적”같이 오시므로 기독교인들은 정신을 차리고 재림예수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고 종말론을 강조하는 기독교목사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상기의 말씀은 마지막 때 종말에 재림예수님이 “도적”같이 아무도 모르게 재림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 “비유”중에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름 준비한 “슬기로운 5처녀”가 혼인을 하기 위하여 하늘의 신랑을 기다리는데 주님은 언제 오실지 아무도 모르는 가운데 “도적”같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름 준비한 “슬기로운 5처녀”라는 뜻은 인간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깨달은 자를 “슬기로운 5처녀”또는 “정결한 처녀”또는 “동정녀마리아”라 말하는데(고전14:19) 이들에게 주님이 “도적”같이 임해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는 태산 같은 말씀이 바다의 물이 노아 홍수 때와 같이 차고 넘쳐 홍수를 이루고 있지만 그 말씀의 물을 마시면 그 영혼이 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찾아다니는 “고아, 과부, 나그네”와 같은 자들이 “진리의 말씀”을 만나 말씀의 “예복”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의 옷(예복)을 입으면 즉 “정결한 처녀”와 같이 준비된 자에게만 이때 주님이 “도적”같이 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름(말씀) 준비된 자에게 촉구하고 계시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재료가 바로 “진리의 말씀”이기 때문에 “진리의 말씀”을 깨닫는 자가 성전을 건축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전건축이 완성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모르게 “도적”같이 임하셔서 그 성전 된 몸 안에서 “안식”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제 7일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자이며 창세기 “6일 천지창조”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의 목적은 “말씀”(하나님)의 실체이신 하나님을 깨달아 아는 것이 자기 “옷”(말씀)을 찾아 입고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다 하였습니다. 깨어있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은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기를 깨우는 것을 말하니 하나님의 말씀을 살려서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자를 깨어있는 자들이라 하였습니다. 자기 “옷”(말씀)이란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말하며 의의 “옷”이요 진리의 “옷”이요 빛의 “옷”이요 세마포 “옷”이요 “굵은 베옷”을 입는 것이요, 이렇게 진리의 예복을 입은 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실체인 말씀의 “예복”을 입지 못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는 진로 하시며 내 치십니다.
마태복음 22:12~13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 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 하거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말씀의 “옷”(예복)을 대단히 중요시하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말씀”(하나님)은 잘 몰라도 하나님과 예수님은 잘 믿는다는 말을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한 자는 그리스도로 “옷”을 입은 자요, 그리스도로 “옷”을 입은 자는 예수와 똑같은 하나님의 아들들이요, 예수와 같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자들이라고 하셨으니 이것은 반드시 우리가 그 “옷”을 찾아 입어야 하는 자기의 “옷”이요 이것이 우리의 참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옷”을 입은 자가 부끄러움을 보이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의인들 곧 사도들과 선지자들 앞에 부끄러운 자들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말씀입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영을 소유한 자들은 사도들과 선지자들 앞에서 부끄러운 자들이 아니요, 우리는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자들이니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부끄러운 자들이 아니며 말씀이 육신이 된 자들은 말씀이신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자들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예수와 사도들과 선지자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자들이 되기 위해서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진리의 말씀”으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진 의의 “옷”을 입고 그들과 하나가 되어야 하며 그들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의 목사의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 같으나 실상은 “신학”을 한 목사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씨”로 낳고 낳는 것이지 “신학”이 아닙니다. 누가복음 8:11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말씀의 실체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하나님을 낳는 것이 “씨”의 본질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씨”로 낳은 자는 “예수”의 말씀을 알아듣고 알아듣지 못하는 자는 “씨”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8: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내 말을 듣지 못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유대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를 배척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속한 자가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씨”로 낳은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다면 하나님 “씨”로 낳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유대인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예수님과 그들의 “씨”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그 사람 안에 있는 “신(神)”이 다르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필자의 글을 이해를 못 하는 것은 바로 “씨”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교종교 지도자들과 같은 아브라함의 혈통이셨으나 "내 아버지와 너희 아비가 다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아버지는 “하나님”이시고 유대인들의 아비는 “마귀”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본 것을 말씀하시며 유대인들은 그 아비 마귀를 따라 행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유대종교 지도자들에게 "너희 아비는 마귀라"라고, 직설적으로 독사의 자식들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씨”를 소유한 자는 생명이 없는 “죽은 자”들을 살리는 것이지,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자가 “죽은 자”를 살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구원자”는 오직 예수님이나 그의 “씨”로 낳음을 받은 자들 이외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종교 지도자들이나 오늘날 목사들은 하나님의 “씨”로 낳은 자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기독교인들의 “죽은 자”들을 구원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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