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8:6~7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금식이란 문자 그대로 음식을 먹지 않는 일임을 아래에서 4,5가지 예를 들어봅니다. 시편 109:24 금식함을 인하여 내 무릎은 약하고 내 육체는 수척하오며, 스가랴 8:19 금식이 변하여 유다 족속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희락의 절기가 되리니, 마태복음 6:16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마태복음 4: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요엘 2:12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금식이란 이렇게 음식을 먹지 않는 일이므로 육체가 수척해졌다고 했고,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라고 했으며 금식은 또 힘든 일이므로 슬픈 기색을 내지 말고 사람들 앞에 얼굴을 흉하게 하지 말라고도 하셨으며 예수님도 사십일을 금식하여 굶주리신 가운데 시험을 받으신 일도 있습니다. 이처럼 여기에 열거된 음식에 대한 금식들은 사람들에게 고통과 멍에만 안겨주는 율법적 금식이며 형이하학의 금식이므로 모두 비유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알아야 하는 참 진리요 참 말씀을 인간들의 어떤 행동양식으로 말씀해 놓은 형이하학의 비유이므로 우리가 아무리 문자적 금식을 한다 해도 하나님의 참 뜻을 깨닫는 일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형이하학의 율법적 금식을 하면 할수록 하나님을 깨닫는 일에서는 오히려 더욱 멀어지고 굶주려 허한 상태에서 복 달라는 탐욕의 기도를 하다간 오히려 귀신의 영을 받기 십상입니다.
지금은 형이하학 속에 형이상학의 참 진리요 참 말씀을 찾아내어 깨달아야 하는 알곡의 추수 때입니다. 때가 때인 만큼, 즉 예수님(신랑)이 오셔서 진리의 참 말씀을 주시는 때인 만큼, 쓸데없이 그 같은 과거 율법적 금식기도를 하면 안 됩니다. 예수께서도 신랑이 있는 동안에는 금식하지 않는다고 이미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그 역시 비유였지만)
그런데 이사야 58:6~7의 금식이란 무엇이기에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금식이라고 했는가? 사람들은 금식에 대해 풀이를 할 때 누구나 예외 없이 예의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라는 기록을 올려놓고 의기양양해 합니다.
의기양양을 넘어 자아도취에 빠져서 한다는 말인즉 “성경은 이렇게 성경에서 풀어야 한다” 라고, 기쁨 충만한 만용까지 부리지만 사실 이 말씀조차 형이하학이요, 율법적 금식의 표현입니다. 즉 금식에 대한 성경 풀이가 절대로 아닌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이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고,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빈민을 네 집에 들이는 일 등이라고 하셨는데, 사람이 그 같은 도덕적으로 선한 일을 할진대, 그것이 하나님을 향한 참 진리를 아는 일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 뺨치게 세상 사람들도 그런 일은 모두 잘하고 있지 않는가 말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금식이란 내가 굶는 일을 말하는데, 왜 그런 금식이 압제 당하는 자를 풀어주고 주린 자에게 나의 식물을 나눠주는 일이 된단 말인지 도무지 정서적으로도 맞지도 않고 어폐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성경에서 말하는 첫째 기본적 금식이란 무엇이며, 하나님이 기뻐하는 업그레이드된 최고의 금식이란 무엇인가?
성경에서 말한 문자적 금식은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때마다 먹는 음식물의 금식입니다. 그리고 이런 금식은 성경의 모든 말씀이 그러하듯이 문자적/ 형이하학적/ 율법적 금식이므로 이런 금식은 아무리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고 사람을 골병만 들게 합니다. 이제 골병만 드는 금식은 폐하고, 그 문자적 금식이 가르치고 있는 속 내용을 알아야 합니다. 즉 육적 금식을 하지 말고, 영적 금식을 하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육적으로 기록을 했으나 그 육적 기록 속에서 영적 뜻을 알아내라는 하나님의 엄명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 금식이란 말씀에 대한 금식입니다. 늘상 말하는 바이지만 하나님(말씀)은 혼재의 하나님이므로 말씀에는 빛의 말씀이 있고, 흑암의 말씀이 있습니다. 흑암의 말씀은 마귀의 비 진리입니다. 이 같은 마귀의 비 진리를 멀리하라는 뜻에서 금식을 하라고 촉구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마귀의 비 진리는 산 넘고 물 건너 저 멀리 있는 게 아니고 우리가 늘 읽고 상고하고 있는 성경 속에 비 진리도 있고, 참 진리도 있는 것입니다. 에덴동산 중앙이란 한마디로 압축해서 말하면 성경을 말하는데, 에덴동산 중앙에 하나님이 멀리하라는 금기(금식)의 선악과도 있고, 우리에게 정한 때가 되면 먹고 영생할 수 있는 생명나무열매도 나란히 있었던 것처럼 성경속에 비 진리도 있고 참 진리도 있는 것입니다.
성경 속에 있는 참 진리란 비유로 주신 구약과 비유로 주신 신약속의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육화 된 인간 하나님이시므로 우리를 시험하기 위해 말씀을 감춰서 비유로 주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재림 때는 창세부터 밝히 드러내신다고 했으므로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 속의 비 진리란 초기 그리스도인 사회에서 유통되었던 복음서신들이 위험한 비진리가 되고 있습니다.
복음서신이란 초기 그리스도인 교회에서 교회끼리 서로 주고받은 편지 글인데, 초기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해서 비유로 주신 성경말씀을 깨달을 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다 깨달은 것처럼 포장했으며 우리 또한 성경에 있는 기록은 무조건 참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서 그것이 앞뒤 문맥이 맞지 않음에도, 그리하여 믿을 가치가 없음에도 여기서는 이렇게 믿고, 저기서는 저렇게 믿는 혼돈에 빠진 비양심의 상태가 되기 때문에 비 진리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면 다시 오셔서 창세부터 밝히 드러내시리라고 하신 창세기부터 잘못 풀어서 우리 모두 그에 집단 세뇌된 탓에 성경을 한 논리로 깨닫지 못하는 불운을 겪고 있음에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하나님은 그 점을 미리 내다보시고 옛적부터 금식을 명하신 것입니다. 즉 비 진리를 금하라는 금식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형이하학의 금식이 아니라, 형이상학의 금식이었습니다.
이것이 내가 살기 위한 기본적 금식입니다. 내가 살기 위한 기본적 금식을 할 수 있다면, 이제 다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최고의 금식도 해야 하는데,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금식이란 비 진리를 먹지 않는 “영적 금식” 이라고 이미 밝혔습니다. 그런데 비 진리를 먹지 않는 영적 금식이(사58:6~7)에서 처럼 어떻게 압제 당한 자를 자유케 하고 주린 자에게 나의 것을 나눠줄 수 있단 말인가? 그게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최고의 금식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비 진리를 내가 멀리 하므로 써 내 발등의 불을 먼저 끄는 게 기본적 금식이라면, 이제 다른 사람들에게도 비 진리를 먹지 못하도록 깨우쳐 주고 인도해 주는 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최고의 금식이 됩니다. 이는 곧 내가 비 진리를 먹지 않으므로 그 속박에서 벗어난 자유함을 얻었다면, 남에게도 내 몸처럼 그와 같이 도와주므로 인하여 그를 자유케 하고, 내가 받은 자유함으로 내 몸처럼 남에게도 자유하게 함으로써 주린 자에게 나의 것을 나눠준 것이 된다는 말씀이 됩니다.
한 마디로 말해 비 진리를 먹지 않음으로 인하여 내가 누리는 자유함을 소극적으로 홀로만 누린다면 그는 가장 부끄러운 구원을 얻을지언정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는 못합니다. 적극적으로 남을 도와서 그를 비 진리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고, 적극적으로 내가 누리는 자유함을 남에게 나눠줄 때 그것은 정말 힘든 일임에는 틀림없으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게으름을 피우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빛 되신 하나님의 확장된 세계를 사모하고 인간동료를 사랑하면 게으름을 피울 수 없습니다. 정말 인생일생에서 최선을 다해 흑암의 비 진리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빛 밝은 하나님의 세계로 충만시키고자 하는 그 가상한 노력이 곧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최고의 금식인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