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살면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 중에 하나는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것이라고 봅니다. 특히 나를 아는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이 우선일 것입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인정받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정은커녕 무시를 당한다면 그 사람이 느끼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클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실존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인 유대종교 지도자들인 제사장들로부터 온갖 핍박과 배척을 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를 어느 나라보다 민족보다 더 철저히 믿는 유대인들이 또 원어성경 히브리어 헬라어를 능통하게 하는 그들이 가짜 하나님 가짜 예수를 믿으면서 진짜 “실존예수님”이 오셨는데도 그를 믿지 못하고 이단으로 몰아 그를 죽인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오늘날 한국기독교는 어떤가? 정말 참 하나님과 진짜 예수를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유대인들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선지자는 그의 고향에서는 환영받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보면 얼마나 예수님을 찬양하고 우러러보고 있는가? 그래서 이 말씀이 맞는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근본적인 이유를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한번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 당시에 동정녀마리아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하여 태어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나이 30세 전에는 성경에 사역하신 기록이 없으며, 30세 후에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의 침례를 통하여 하늘이 열리고 이때 성령이 임했고(잉태) 하나님으로부터 내 사랑하는 아들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침례는 인간인 죄인들이 받는 것이지 성령으로 잉태해서 태어나신 분이라면 그분이 성령 하나님이신데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는다는 것은 말이 되는가? 그리고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을 때 성령으로 태어나신 분이 또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어불성설입니다.
예수가 성령으로 태어 낳으신 분이라면 성령 하나님이신데 왜 광야에서 사탄에게 이끌려 시험을 세 번씩이나 받겠는가?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도 거듭나기 전까지는 평범한 인간이며, 유대인일 뿐이었던 것입니다. 그런 예수님에 대해 어떻게 고향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원자로 영접을 했겠는가?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야는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구름 타고 오시는 예수를 기다리는 것이지 이렇게 초라한 모습으로 한마을에서 30년 동안 같이 살던 사람을 메시야로 모실 수가 있겠는가? 또 그 외모는 자신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자를 어떻게 구원자 예수로 믿겠는가?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에 대해 올바로 아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에 대해 올바로 알지 못한다면 오늘날 기독교인들 역시 하나님이 보내신 오늘날 “실존예수”를 배척하고 핍박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추상적이거나 환상적인 세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구체적인 사실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과 현실이 일치해야만 진리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가려면 반드시 오늘날 “하나님”의 “씨”를 소유한 “실존예수”를 만나야 그 말씀으로 구원이고 천국이고 있는 것이지 “씨”가 없는 오늘날 신학교에서 만들어낸 목사를 만나 신앙생활을 한다면 절대로 구원받지 못하며 죽은 자로 일생을 마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은 신학공부나 성경을 연구해서 깨닫는 것이라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닙니다. 유대종교 지도자들인 제사장, 서기관들 특히 예수를 만나기 전의 사도바울이나 니고데모 같은 성경학자들이 성경을 몰라서 “실존예수”를 몰라 본 것인가? 아닙니다. 그들은 성경지식이 아주 박식한 자들이며 율법은 물론 히브리 헬라어를 능통하는 성경학자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실존예수”의 말씀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동문서답 하는 것은 성경을 통해서 기독교인들이 볼 수 있듯이 그들은 예수가 누구인지 전혀 몰라 본 것입니다. 특히 사도바울의 경우 진짜를 가짜로 알고 예수 믿는 자들을 죽이고 핍박하더니 진짜 예수를 만난 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배설물 같이 버렸다고 고백하지 않던가?(빌3:8)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절대로 자기의 신학이 “비 진리”라는 것을 모르고 진리로 착각하기 때문에 버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갈라디아서 1:11~12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오늘날 기독교목사들도 자신의 신학이 진짜 진리라고 고집하는 것이 유대종교 지도자와 똑같은 상황인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기독교 신학박사도 절대로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만나 그 말씀을 받고 깨달은 자만이 그 말씀을 알자가 없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계시록 2:17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예수)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말씀)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말씀)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이와 같이 말씀을 받고 깨달은 자만이 그가 누구인지 알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실존예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으로 오늘날에도 우리 한국 사람에게도 실존으로 계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이 현제 계신 “실존예수”가 옆에 계셔도 그의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유대인들과 똑같이 모르는 것입니다. 계시록 1:8 나는 알파(처음)와 오메가(끝)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이같이 예수님은 어느 때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항상 실존으로 계신데, 내 눈에 안 보인다고 아직 안 오셨다고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구원을 받으려면 현제 계신 한국인 “실존예수”를 만나야 그 말씀의 “씨”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8:11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이같이 “실존예수”의 “씨”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씨”의 본질은 예수는 예수를 낳고, 짐승은 짐승을 낳는 것이 “씨”의 본질입니다. 사도바울이 “디모데, 디도, 오네시모”를 자신의 “말씀의 씨”로 낳았다는 것입니다. 고전 4:15 일만 스승은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벧전 1: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이같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구원을 받는 것은 신학교를 나온 목사의 말씀을 받는 것은 “씨”가 없는 선생의 말씀을 받을 뿐 “씨”가 있는 아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이 반드시 “씨”가 있는 목자를 만나야 구원을 받는데 “구하고, 두드리고, 찾는 자”는 반드시 만날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