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풀, 씨 맺는 채소, 열매 맺는 나무의 영적의미 ”
창세기 1:11~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께서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를 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이러한 “땅의 풀과 씨 맺는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는 영적으로 과연 어떤 것들일까? “땅의 풀”은 “애급”의 존재를 “비유”하며 “씨 맺는 채소”는 “광야”의 존재를 “비유”하며 “씨 가진 열매”맺는 나무는 “가나안”을 “비유”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풀, 채소, 나무”도 모두 어둠의 존재인 인간들의 존재를 차원에 따라 “비유”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사야 37:26~27 네가 어찌 듣지 못하겠느냐 이 일들은 내가 태초부터 행한 바요 상고부터 정한 바로서 이제 내가 이루어 너로 견고한 성을 헐어 돌무더기가 되었노라, 그러므로 그 거민들이 힘이 약하여 놀라며 수치를 당하여 들의 풀같이, 푸른나물 같이 지붕의 풀 같이 자라지 못한 지푸라기 같았었느니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어둠의 존재들을 태초부터 정하고 행한 일을 네가 어찌 듣지 못하냐고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어둠의 패역한 백성들을 “풀이나 나물” 그리고 “밀집”이나 “돌무더기”로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풀”은 세상에서 종교 생활하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애급”의 존재를 “비유”하며, “씨 맺는 채소”는 “애급”의 존재들이 “출애굽”(탈출)하여 “광야”의 존재를 “비유”하며,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는 “가나안”의 존재를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에서 종교 생활하는 “애급”에 있는 “풀”과 같은 영적상태 있는 기독교인들은 하루속히 거짓된 신앙에서 “출애굽”(탈출)하여 “광야”의 “씨 맺는 채소”로 거듭나야하며, “광야”에서 “씨 맺는 채소”는 “광야”에서 시험과 연단을 모두 마치고, “가나안”으로 들어가 “씨가진 열매” 맺는 나무로 거듭나야 합니다.
이러한 말씀들이 모두 “비유비사”로 기록된 말씀이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백번을 통독을 한다 해도 무슨 말씀인지 전혀 이해를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기의 말씀들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장해서 “땅의 풀”과 같은 자들이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가 되어서 이웃에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려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열매”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소출을 원하시는 “농부”와 같이 땅에 심은 “채소나 과목”이 “열매”를 맺지 아니하면 절단하거나 뽑아버리기 때문입니다. “농부”가 봄에 씨를 뿌리고 비료를 주고 열심히 가꾸는 목적은 가을에 “열매”들을 추수하려는 목적이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런데 나무가 잎만 무성하고 “열매”를 맺지 않는다면 “농부”는 그 나무를 잘라버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1~2 내가 참 포도나무요 네 아버지는 그 농부라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니라,
이와 같이 하나님은 “농부”로 예수님은 “포도나무”로 그의 제자들은 “가지”로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포도나무의 “가지”가 그 포도나무의 진액으로 자기 몸만 배 불리고 “열매”를 맺지 않으면 “농부”는 그 “가지”를 잘라버린 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들이 모두 “비유비사”로 기록되어 있지만 이런 글을 읽으시는 기독교인들은 실상은 소름이 끼치는 무서운 말씀들이며 이런 말씀을 그냥 읽고 무심 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게을리 신앙생활을 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인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들 포도나무” 즉 “거짓목자”밑에서 신앙생활 하면서 “참 포도나무” 즉 “참 목자”로 접붙임을 받기도 어렵지만 “참 포도나무”에 붙어있다 해도 자신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서 “열매”를 맺지 않으면 “농부”가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잘라 버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런 “비유”의 말씀의 뜻을 깊이 생각을 하고 반드시 이해를 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에 기록된 중요한 말씀들은 모두 “비유비사”로 깊이 감추어 놓은 비밀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아무나 볼 수 없는 것이 성경의 특징입니다. 그러므로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씨 가진 열매”맺는 나무를 내었다는 뜻은 오늘날 기독교세상 “애급의 존재”와 “광야의 존재”와 “가나안의 존재”를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 속에 “어린아이 시절”이 있고 “청년시절”이 있고 “어른의 시절”이 있는 거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초보신앙에 안주하고 있는 자들을 향해 너희가 지금은 마땅히 선생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아직도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먹지도 못하는 어린애라고 책망하시는 것을 성경의 기록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사도바울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에베소서 4:13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하라”고 강력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 5:12~14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사도바울이 왜 이런 말씀으로 책망하시는 이유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런 말씀을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목사들은 일방적인 설교를 하면서 어린아이들에게 평생 동안 젖을 먹이는 자들이고 교인들은 평생을 목사들에게 젖을 먹는 자들이기 때문에 “포도나무 비유”가 왜 성경에 기록된 이유를 모르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상기의 말씀을 깨달으신 분들은 현제 기독교에서 종교 생활하는 형태를 바꾸지 않으면 아무리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도 “우상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하루속히 세상기독교에서 진리를 찾아 “출애굽”(탈출)해서 “광야”로 나와 좁고 협잡한 생명의 길인 진리를 찾아서 “가나안”으로 들어가야 “참 진리”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보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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