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사랑은 어떻게 다른가? ※
"너희는 서로 사랑하라" 참 좋은 말입니다. 어떤 종교단체이든 사랑은 교리중의 으뜸이며, 인간세상의 기본이 되는 모든 도덕과 윤리적인 가르침이 또한 사랑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기록된 사랑이 윤리도덕적인 사랑을 말하는가? 절대로 그렇지 않음이 성경의 기록입니다. 지금까지 수없이 밝혔듯이, 성경은 율법과 구원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율법의 말씀은 문자 그대로 보는 성경관이요, 구원의 말씀은 그 성경문자(율법)를 오늘날 낱낱이 해석되어진 진리의 새 말씀으로 거듭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은 인간의 윤리도덕적인 사랑과 전혀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마 22:37-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예수님께서 하나님에 대한“사랑“과 이웃에 대한“사랑“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즉 성경의 가르침이“사랑“이 으뜸이며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일이야말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에 대한 실천을 가장 먼저 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구원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즉 사랑이 곧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동방의 의인인 욥과 천주교 성녀의 칭호를 받은“테레사 수녀”그리고 아프리카에서 세상을 울린 “이태석신부”그리고 자기 아들을 죽인 자를 수양아들로 삼은“주기철목사”등 인간의 사랑과선(善)을 행하는 이들의 선(善)함은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희생의 베풂인 것이나 그러나 이들의“사랑과선”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사랑과선”이 아니며 오직 땅의 소산으로만 베푸는 육신의“사랑과선”인 것입니다. 육신의 사랑이요 육신의 희생이 너무나 크기에 따라 할 수 없는 이들의“사랑과선”을 하나님께서는 너희의 그 의로움과 선(善)을 나의 생명과“씨“로 바꾸어 너희의 영혼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인간의육신의“사랑과선”은 육신의 생명으로 죽어갈 뿐이며”영”의 거듭남만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영원히 남게 되는 것입니다.
고전 13장은 내가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을 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다고 말씀하고 있으며 또한 내가 모든 것으로 어려운 사람에게 구제하고 사랑을 한다 해도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 이 사랑은 무슨 사랑인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웃을 사랑하고 어려운 사람에게 구제한다 해도 자신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 주며 구제와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만일 이웃을 구제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준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웃을 구제하기 위해 자신의 몸까지 내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 아닌가?
그러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사랑”은 과연 어떤“사랑”을 말씀하시는 것일까? 하나님의“사랑”은 무조건적인“아가페사랑“으로 그 실체는 하나님의 생명을 말하고 죽어있는 영혼을 살리는“아가페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그 안에 하나님의 생명(사랑)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 소망, 사랑 중에“사랑”이 제일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명(사랑)이 없다면 사람에게 육신적인 도움을 주거나 인간적인 사랑은 할 수 있어도 죽은 영혼을 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육신을 입고 있을 때 행하여야 하는 신앙의 여정인 것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영“의 부활인 것이니 육신의 사랑과 선(善)의 행함이 아무리 크다 한들 아주 작은 진리의 베풂만 못하는 것이요 태산을 옮길만한 사랑과 선(善)행을 할지라도 겨자씨의 믿음만도 못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저희가 아닌 네 자신의 영적 성장을 원하시는 것이며 죽어가는 네 영혼을 살리라 하는 것입니다. 네 영혼의 부활은 산 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변화 받아 그 변화 받은 만큼을 드리는 참 신앙생활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인 것이요 우리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나온 목적인 것이니 해 아래 세상은 이렇듯 영적 부활을 이루어나가는 연단의 훈련장인 것이며 그 말씀의 씨앗으로 죽은 영혼을 살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사역 장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명철과 지혜가 없어 사랑도 인간의 사랑이요 선(善)도 인간의 선(善)밖에 베풀지 못하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육신의 어리석음은 죽을 때 까지도 하나님의 뜻을 몰라 허무한 인간의 한 생을 안타까워하는 것입니다. 인간의육신은 언제나 육신적인 것이며 우리의 행함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 내는 것에 우리의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이 넘치는 하늘의 지혜를 소유하는 자들인 것이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랄 자들인 것이니 예수로부터 오는 하늘의 말씀을 감사히 받아 지혜를 심고 온전히 키워 열매를 맺을 때 하나님은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는 것입니다. 이들은 그 생명의 지혜를 되돌려 갚는“치사랑”을 하는 것이 아닌 다시금 죽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 살리는“내리사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진실과 거짓이 "사랑"이라는 글자가 한글성경에는 한단어로 "사랑"이라고 번역되어“아가페“도 사랑이요,”필로스“도 사랑인 것이니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육신의 사랑을 가지고 의롭다 함을 입는 것이요 그 사랑을 나누어 주어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고 믿는 오늘날의 기독교인들과 하나님의 백성들이란 “죽은자”들의 행실만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을 통하여 절대 인간의 "사랑"으로는 살아 날수 없음이며 하나님의 "사랑" 즉“아가페사랑” 만이 죽은 영혼을 살리는 거듭남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아가페사랑“은 예수님과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자들의 안에 만 있는 것이며 이”아가페사랑“을 소유한 지들은 반드시 죽은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여 같은 ”아가페사랑”으로 살려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도“인 것이며 두 계명인 위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거듭나고 아래로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여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이 생명의 낳고 낳음이 이어져 오늘날까지 아들들의 “아가페사랑“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이며“영“이 죽은 자들은 이 아들들의 ”아가페사랑”을 찾아서 그 씨(혈통)로 반드시 살아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랑의 소유는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사랑 하느냐 하시며 3 번씩 "아가페사랑"을 물으시니 베드로조차 이 “아가페사랑“을 소유하지 못하고 알지 못하여 ”필로스사랑”으로 대답할 만큼 어렵고 어려운 생명의 소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명령으로 너희가“아가페사랑“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네가 어린 자들을 먹일 때 네가 영적으로 성장한다 하셨으니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자는 어떠한 자인 것이며 이웃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자들이란 나그네, 고아, 과부처럼 오늘날기독교 삯군과 음녀에게서 벗어난 심령이 가난한 말씀의 갈급한 자들을 말씀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 하라 예수께서 이를 행하라 그러면 네가 살리라 하시니라, 이 두 가지 명령이 성경 전체의 핵심이며 내가 살기위해서는 반드시 이웃을 내 몸같이 살려야 하는 막중한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시기 위해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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