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기준은 예수

※ 구원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음으로 얻는다 ※

제라늄A 2020. 2. 13. 03:06

 

                      구원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음으로 얻는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 받는다”는 말처럼 사기성이 농후한 말도 없습니다. 과정이 무시되고 구원 주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식물은 수정되지 않고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너무 쉽게 예수를 믿기 때문에 오늘날의 기독교는 문제가 많은 것입니다. 지금 기독교는 목사의 설교를 듣고 ‘아멘’ 하면 그것을 믿음으로 인정해 주는 세상입니다. 예수를 안 믿던 사람도 죽기 5분의 여유만 있어도 예수를  믿는다고  입으로 시인만 하면 구원을 받는 것이 오늘날의 기독교 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잘 믿기 때문에 구원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기독교 교리 중에 예수의 피가 나를 구원했다고 하는 구원의 조건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하나님 말씀을 듣든지 읽든지 간에 “깨달음”이 있을 때에 능력이 나타나고 새 역사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볼 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을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눅24:49)고 하신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말하기를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교만한 자의 말을 알아 볼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고전 4:20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했습니다. 결국 믿음은 능력인데 그 능력이 무엇이냐?  성경에서 능력이란 그리스도의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는 말로만 하지 않고 실제로 하나님께서 일러주신 그대로 살다가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것이 능력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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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말씀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을 때 내 삶이 바뀌고 그 삶으로 사랑이 나타났을 때 구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론이나 말이나 글이 아니라 실제 상황인 것입니다. 말씀자체가 곧 하나님(요 1:1)이시기 때문에 그 말씀이 내 안에 이루어져서“깨달음”이 있을 때 나는 하나님이 거쳐하실 수 있는 성전이 되기 때문에 구원에 실체는 하나님의 말씀을 내 안에 즉 성전 안에 저장해 넣는 것입니다.  말 3:10“너희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라 이처럼  영화로움의 단계에서 구원은 이루어지는데, 영화로움은 내 육체의 소욕이 살아 있고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실존인간으로 오신 예수 죽었을 때에 그리스도부활한 것같이 육체(소욕)가 죽을 때에 영적인 사람으로 태어나는 입니다. 이 말은 진리를“깨달음”이 올 때 마다 육체의 소욕은 죽고 부활하는것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보여 주신 행위와 사역은 그들과 우리에게 본받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요13:15)  예수가 우리에게 행한 것 같이 우리도 행하여야 합니다. 성경을 조금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예수께서 자기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알 것입니다. 예수께서 고난을 당하시기 전에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신 후에 자신을 위해 기도하신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요17:1,4) 이 말을 하시고 몇 시간 뒤에 십자가에서 못 박히셨습니다.

 

이처럼 내가 예수처럼 죄의 소욕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을 때 영화롭게 되고 그것이 믿음으로 인정받는 것이요, 예수를 믿으면 ”구원“이라는 말은 내 죽음이 전제되었을 때 적용되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열 문둥이를 고쳐주시고 이르기를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의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께 돌아와 감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는 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칭찬하셨습니다(눅17:11-19) 예수는 자기 말을 거역하고 돌아온 그 한 사람을 꾸짖지 않고 오히려"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셨을까?  성경에는 직접적인 언급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맥을 통해서 보면, 죄를 깨끗이 하고 생명을 대속한 예수라는 사실이 번쩍 떠오른 입니다. 이것이 '깨달음'의 극치인 입니다.깨달음”이 올 때마다 육적인“자아“(自我) 깨달은 만큼씩 죽어지는 것입니다.  예수의“피“(말씀) 우리를 죄로부터 깨끗케 하는데 필요했습니다. 정결케 하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더러운 그릇(마음)이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그 그릇 안이 깨끗이 청소된 후에 좋은 보배를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깨끗해지는 사역은 시작에 불과한 것입니다. ‘깨끗해진 그릇에 무엇을 담고 사느냐!’중요한 구원의 열쇠입니다. 빈 그릇에 생명의 말씀을 담고 되새김질하여 “깨달음 있을 때에 성령의 역사와 악령의 역사를 분별하게 됩니다. 왜 분별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하겠습니까?  우리는 이 땅에서 기독교 목회자의 피해를 수없이 목도하는 바입니다.

 

“영“을 분별하지 못하면 일평생 목회자의 미혹에 빠져 몸과 마음과 재물과 시간을 허비하고 허탄한 삶을 살다가 음부로 가고 맙니다. 스스로 찾아 먹고 보혜사 성령의 가르침을 받지 않고, 인간의 가르침을 받을 때에는 일곱 귀신의 사상(교리)이 그릇에 채워져 믿기 전의 형편보다 더욱 심하게 됩니다.  마 12:43-45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기독교)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불같은 귀신의 능력을 구하지 말고 이슬 같은 하늘의 은 혜를 구하라.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는 자는 반드시 멸망하리라, 힘이 없는 종류로되 먹을 것을 여름에 예비하는 지혜로운 개미에게서 배워(잠30:25) 지혜는 슬기로운 한 사람을, 교회를 다스리는 통치자 열 명보다 더 강하게 만듭니다. 예수의“피”(말씀) 깨끗함을 얻었습니까?  그러면 마음의 그릇에 무엇을 담았습니까?  누룩석인 떡과 물석인 포도주를 담았습니까. 바위틈에서 솟아난 샘물을 담았습니까?  수고하지 않고 남이 떠 주는 물을 마셨습니까?  무릎 꿇고 마셨습니까?  아니면 서서 손으로 물을 움켜쥐어 마셨습니까?  어떤 사람이 능력 있는 사람입니까? 기드온 용사 삼백 명의 선발 과정은 기독교인들에게 깨닫는 바가 큽니다.

 

사사기 7:5-7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무릇 개의 핥는 것 같이 그 혀로 물을 핥는 자는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무릇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도 그같이 하라 하시더니 손으로 움켜 입에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손으로 움켜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그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이 말씀에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먹고 마십니까?  개처럼 일하지 않고 엎드려 핥는 자입니까? 누구 앞에 무릎 꿇고 경배하며 빌어 마시는 자입니까?  아니면 기드온의 삼백 명의 용사처럼 자기 손으로 움켜 마시는 자입니까? 

 

애통함이나 회개함 없이 얻은 구원, 불을 통과하지 않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타나기를 원하십니까? 하물며 영혼의 양식을 제 손으로 움켜 먹지 못하는 사람의 나중 형편이 어떠하겠습니까?  물을 손으로 움켜 마신 기드온 용사 삼백 명의 왼손에 들려 있는 항아리(육체)속에는 횃불(성령)이 감추어져 있었고, 그의 오른손에는 나팔이 들려 있었습니다. 항아리(육체)를 깨뜨렸을 때(죽음) 그들 속에서 횃불(성령)이 나타났으며, 그들이 부는 나팔(입)소리는 적군을 두려움에 떨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능력 있는 믿음의 실체이며 역사입니다. "하나님의 기묘하신 일을 궁구하라, 하나님이 어떻게 이런 것들에게 명령하셔서 그 구름의 번개 빛으로 번쩍 번쩍하게 하시는지 네가 아느냐?"(욥37:14-15) 바로 그 번쩍임이“깨달음”의 시작이며,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나에게 적용되기 시작하는 능력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