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삶은 과연?

사람은 죽은 후(死後)에는 심판을 받는다.

제라늄A 2020. 8. 14. 21:09

요일 5: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 성경을 기록하신 이유는 인간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기 위해서 성경을 기록을 했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경만이 영생을 책임지고 보장해주는 생명 책이 됩니다.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라,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사람은 육체가 살아 있는 것은 수명이 다하면 모두 죽습니다. 죽은 후에는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심판”하신다고 하십니다.“하나님의 심판”이란?  사람이 살아생전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거듭난 자는 천국으로 데려가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거듭나지 못했으면 버림을 당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죽은 후에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지만 “혼의 생명”은 죽지 않는 생명이므로 그 혼의 생명”이 천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형상과 같이 사람을 만드셨기 때문에 사람은 “영생”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혼의 생명”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의 실체이신 “말씀이 육체를 입고(요1:14) 오신 오늘날 “실존 예수님”을 영접해야 하는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날마다 보고 쓰며 성경공부를 하면서도 하나님의 아들 실존 예수님을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직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지 못해 “영안”이 열리지 않은 사람은 성경을 백번을 읽어본다 해도 육신적으로 성경을 보고 말씀을 모두 육신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두 영적인 말씀으로 “안팎”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계 5:1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封)하였더라,  마 13:34-35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성경은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모두 “비유”로 기록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근본을 다루는 뜻깊은 비밀이 “비유”로 감추신 것을 알지 못하면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유가 아니면 어떠한 천국 비밀도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하나님께서 옛 비밀한 것을 “비유를 베풀어 후대(시78:2)에 전하라고 하셨기 때문이요, 둘째는 실존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깨닫지 못하게 하여 죄 사함을 받지 못하도록 감추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실존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는 누구였던가?  바로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인 제사장(목사)들인 바리새인들이며 오늘날 기독교 목회자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마 13:10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어찌하여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제자)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유대인)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깨닫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저들에게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하여 구원을 못 받게 하는 이유입니다.  막 4:12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하려 함이니라,  이사야 29:11 모든 묵시가 너희에게는 마치 봉한 책의 말이라,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정리해 보면 “실존 예수님”을 영접하고 고침 받기를 원하는 자들에게는 천국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유대교 바리새인 제사장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에게는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도 유대교 때와 똑같습니다. 그 이유는 오늘날 기독교에도 오늘날 “실존 예수님”말씀에게 사사건건 대적하고 핍박을 자행했기 때문에 저들에게는 항상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는 이러한 목사들을 주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영적인 “비유와 비사”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절대로 성경 한 줄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일곱 인”으로 봉해진 성경을 열어 볼 사람이 없어 성경을 “계시를 받아 기록하면서 크게 울었다고 합니다(계5:1-5) 구약에서는 신약에 출현할 예수님에 관한 것을 대부분 사실 그대로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은 다릅니다. 오늘날은 모든 예언이 “비유와 비사”로 기록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비유와 비사”의 참뜻을 풀지 못하면 예언이 실상으로 나타난다 해도 그 사실을 알 수 없고 천국 비밀도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에게는 사도 바울은 증거 하기를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고전2:10)한다고 하였습니다.

​그의 말에 비추어볼 때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은 천국 비밀인 “비유의 말씀까지도 모두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천국 비밀인 하나님께서 감추신 “비유의 말씀을 알지 못하는 것은 아직 성령을 받지 못한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아직 임하지 않았다면 아직 구원에 이르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성령이 임한 자는 성령이 가르치기 때문에 안팎으로 기록된 성경의 모든 “비유 비사“를 통달하기 때문에 확실한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보인다면 그 사람은 거듭난 사람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확증이 되는 것입니다.  요 16:13 “성령이 임하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요일 2: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이같이 성령으로 거듭난 자는 성령이 가르치기 때문에 성경을 통달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신, 구약 모두 “비유와 비사”로 감추어 있지만  오늘날 기독교 목회자들은 천국 비밀과 예언을 “신학에서 배운 것과 주석 혹 자기 생각으로 해석하여 거짓되게 풀거나 역사와 교훈에만 치중하여 설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인들의 생명은 과연 살아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신(神)의 말씀은 “신학을 배워서 아는 지식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의 경우를 보면 가말리엘의 최고학부를 나온 유대 종교 최고의 지도자로 계시를 받은 후에  자신이 알고 있던 모든 "신학의 지식"을 배설물같이 버렸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갈 1:11-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 가전 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이렇게 사도바울도 하나님의 말씀은 계시로 받은 후에는 자신이 소유했던 신학은 배설물로 버렸다는 것입니다. 이같이 신(神)의 말씀은 “신학을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각 있는 기독교인들은 소경 된 무지한 기독교 목회자에게 구원이 없음을 깨닫고  성령의 가르침이 있는 곳을 하루속히 찾아가야 자신의 생명을 구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비유”의 뜻을 모르면 영적인 이방인이 될 뿐 아니라 기독교 목회자들의 “비 진리”의 “독으로 죽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비유한 천국 비밀을 모르는 사람은 기독교인이라 할지라도 사실상 예수님을 믿는 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내용이 “비유와 비사”로 기록된 성경을  일점일획이라도 더하거나 제하면 천국에 못 들어간다(계22:18~19)고 하신 말씀의 일점일획이라도 가감되면 그 영혼은 이미 죽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기독교인이라면 자신이 살기 위해서 또한 내 가족의 구원을 위하여 성경의 말씀처럼 때를 따라 양식(마24:45)을 나눠 줄  오늘날의 “실존 예수님”은 어디 있는지 찾아 나서야 할 때입니다.“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는 반드시 만날 수 있습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