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사람의 신앙 고백

새사람의 글을 영접하신 후에 떠나신 분들에게

제라늄A 2020. 9. 7. 20:46

마 26:33-35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오늘 밤에 네가 나를 버리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호언장담 합니다. 성경은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일상용어로 기록되어 있는 것 같이 보이나  모든 말씀은 “안팎”(계 5:1)으로 오묘하게 “비유”로 깊이 숨겨진 비밀의 말씀임으로  오늘날 기독교인들 같이 “문자 성경”으로 읽고 이해하는 것은 비 진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안팎”으로 기록했기 때문에 “영안”이 열리지 못하면 이해를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석 제자인 “베드로는 주를 위해서 목숨까지 버릴 각오가 되어 있으니 나는 주가 가시는 곳은 어디든지 따라가겠다는 호언장담 하는 것입니다.“베드로의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네가 나를 위하여 진정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라고 말씀하시면서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수”를 위해 목숨까지 버리겠다고 호언장담하던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3번이나 부인한다”라는 뜻은 “닭이 울기 전”이란 뜻은 날이 밝기 전이므로 “아침의 빛의 존재”가 되기 전 “밤의 어둠의 존재”는 누구든지 예수를 부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3번”이나 부인한다는 말은 “애급, 광야, 가나안”이렇게 “3일”을 통과한 자가 되기 전에는  누구든지 예수를 부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깊은 뜻이 숨겨져 있습니다.

 

창세기 6일 창조에서 하루씩 지날 때마다 매번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어둠”의 존재가 “빛”의 존재로 거듭나는 과정을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예수를 3번”부인하는 것은 아직 “빛”이 되지 못한 “어둠”의 존재는 누구를 막론하고 예수를 부인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세상에서 신앙생활하는 애급”의 존재는 홍해바다라는 말씀의 바다에 빠져서 한 번”죽고 부활해야 되고, 광야로 나와서는 요단강이라는 말씀의 강에서 침례로 두 번죽고 부활해야 되고, 가나안으로 들어와서 자신의 십자가”가로 “세 번죽고 부활해야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3일”만에 부활하신 것은 “애급, 광야, 가나안”을 “3일”만에 부활하신 것과 똑같은 맥락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유대 종교지도자들인 “제사장 바리새인 서기관”들에게  너희들이 거짓된 신앙으로 잘못 지은 너희들의 성전을 헐어버리면  예수께서 “3일”만에 다시 짓는다고 말씀하시며 46년 된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며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요 2:19-20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46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3일 동안에 다시 짓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비유”로 46년 된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며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3일”의 의미가 차원적 중요한 영적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실존 예수를 부인하는 것은 이 아직 되지 못한 어둠의 존재이기 때문에 누구나 부인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진리를 탐구하면서 필자의 글을 보고 처음 대하면서 이 말씀이 진리라고 확신하고 매일 들어와서 구독하지만 1년도 못 가서 다 떠나는 것은 “베드로와 같이 아직 빛”이 되지 못한 “어둠의존재이기 때문에 누구나 다 떠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베드로의 이런 모습을 보고 실망을 하며 수석 제자 “베드로가 어떻게 예수를 부인할 수 있을까 하고 의아해 하지만 “베드로의 모습이 바로 오늘날 진리를 찾아다니는 자신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일상용어로 기록되었으나  모두가 안팎으로 봉한 비유의 말씀임으로 일곱 때만에 부활한 오늘날 실존 예수가 아니면 아무도 열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비 진리 기독교 신학교리로 신앙생활하시는 기독교인들은 하루속히 “애급의 기독교 목사”에서 탈출해서 “광야에서 징계와 연단의 훈련을 거쳐 “가나안으로 들어가  오늘날 실존 예수음성을 직접 들어야 죽었던 자신의 혼의 존재영의 존재로 살아나는 것입니다.  요 5:25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이같이 기독교인들은 가나안에만 계신 오늘날의 실존 예수”를 만나야 혼의 존재영의 존재로 부활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자기 유익이나 이권을 위해서는 오늘날의 “실존 예수님”을 세 번 아니라 삼십 번도 부인하는 존재라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어둠”의 존재는 “빛”의 존재인 실존 예수를 부인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자신이 예수와 같이 거듭나기 전에는 “베드로와 똑같이 부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동안 독자 분들이 필자의 글을 영접하시면서 이글이 참 진리라고 하면서 결국은 다 떠나가시는 것은 아직 의 존재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베드로와 똑같이 부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