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9:2-7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 되사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매일생활을 하며 동고동락하며 날마다 그의 가르침을 받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에게 당신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예수님의 정체를 보여 달라고 간청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것은 평상 생활 속에서 예수님을 아무리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보통사람과 같고 예수님이나 제자들이나 뭐 별다른 것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신성이나 큰 능력을 나타내지 않아 하나님의 아들로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유대인들이나 예수님의 제자들도 유대교 당시에 실존예수님과 동고동락하면서 실상을 전혀 모르고 하나님은 전능하시기 때문에 예수님도 특별한 외모나 표적과 이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위대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확인하려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 분명해야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를 수 있고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뜻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무지”(無知)의 소치입니다. 때문에 상기의 본 문장의 말씀을 예수님은 여러 표적(영적)을 행하여 보여주신 것이며 결국은 본문장의 말씀같이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변화 산상”에 올라가 예수님의 “영적인 실체”를 확실하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런 말씀들이 모두 영적으로 “비유”로 기록된 말씀이라 기독교인들은 무슨 말씀인지 전혀 이해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변화산상”에 올라가 예수님의 변형된 모습으로 광채가 나는 “빛난 옷”을 입고 구약성경에 나오는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계신 것을 바라보고 모두 놀란 것입니다.
이렇게 “빛난 옷”을 입고 계신 예수님을 바라본 제자들은 우리는 세상으로 다시 내려가지 말고 여기서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해 집을 짓고 함께 여기서 살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평소에도 항상 “빛난 옷”을 입고 계셨지만 그의 제자들은 아직 거듭나지 못해 “영안”이 없어 예수의 실체를 보지 못한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 지금 제자들을 “변화산상”으로 데리고 올라가셔서 예수님의 “실체”(영체)를 환상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뜻도 모르고 예수님에게 자신들의 욕심대로 이곳에서 우리 여기서 함께 살자고 간청하는 것입니다. 이때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린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매일 같이 있으면서도 아직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에 “빛난 옷”을 입고 계신 예수님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오늘날의 “실존 예수님”이 지금 기독교인들 앞에 와 계셔도 “보통사람”으로만 바라 볼뿐 하나님의 아들 “예수”로 인정 하지 않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철저히 섬기면서 예수를 모르고 십자가에 죽인 것은 예수님의 실체를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실존 예수님”은 기독교인들 주위에 항상 실존으로 함께 계시지만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지 못하면 그 예수는 “이단”으로 밖에 보이 지를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실존 예수님”도 유대교 때와 마찬가지로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8:20)고 한탄하시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영접하지 않고 “이단”으로 배척하고 죽인 것과 똑같이 오늘날 기독교에도 오늘날 “실존 예수님”은 항상 계시지만 “이단”으로 배척하기 때문에 오늘날에도 기독교 안에는 발붙일 곳이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것입니다. 상기의 본문의 말씀에도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의 실체를 모르고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했는데 어떻게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실존 예수님”의 실체를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를 아는 자는 “예수”와 똑같이 거듭난 자만이 “예수”를 알지 그전에는 “예수”를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는 부모형제들도 모르는 것입니다. (도마복음 24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누구든지 두 귀가 있는 자는 잘 들어라 “빛”은 “빛”의 사람 안에 있고 그 “빛”이 온 세상을 비추니라, 만약에 그 “빛”이 비추지 못한다면 그것은 “어둠”이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의 질문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두 귀가 있는 자는 잘 들으라,”고 말씀하시면서 “빛”은 “빛”의 사람 안에 있고 그 “빛”은 세상을 비춘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빛”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빛”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모든 말씀은 “비유”로 하시기 때문에 “비유”를 알면 “빛”이지만 “비유”를 알지 못하면 “어둠”이라 말씀하시고 “비유”의 말씀을 아는 자는 “영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왜 “비유”로만 말씀하시는가? 예수님의 실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요 1:1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의 실체가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말씀(요1:14)이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 오늘날 “실존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비유”가 아니면 아무 말씀도 안 하신 것입니다. 마 13:34-35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춰진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이렇게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근본을 다루는 뜻깊은 비밀이 창세부터 예수님 안에 감춰 있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창세부터 “비유”로 감 추인 것을 드러내신다고 했던 대로, 창세기의 깊은 뜻을 먼저 이해를 해야 합니다. 창 1:7-8 하나님이 궁창을 만들어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빛과 어둠”을 창조하시고 “궁창”을 “아랫물”과 “윗물”로 나누셨는데 이 “물”(말씀)을 모두 “하늘”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궁창 위에 물과 궁창 아랫물”이란 무엇인가? “궁창 아랫물”은 “어둠”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비유”로 말씀하시고 이 “어둠”인 “비유”의 말씀을 깨달으면 “궁창 위에 물”이 되며 “빛”이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로 창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이 땅에 오셔서 “어둠”의 말씀인 “비유”로만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말씀도 안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빛과 어둠”으로 오신 분인데 사람들이 과연 예수님의 “비유”의 참 뜻을 깨달아서 그 깨달음의 “빛”의 존재로 거듭났는가? 전혀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수님이 주신 “비유”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믿었던 것이니 지금까지 “어둠”이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이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인 유대인들은 물론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비유”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죄 사함”(막4:11-12)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생은 유일하신 하나님과 예수를 아는 자가 영생이라 했습니다”(요17:3) 말씀의 실체가 하나님이시니 “비유”의 말씀을 아는 자가 “영생”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의 “빛”으로 오셨고 그 “빛”으로 “어둠”의 세상을 비추니 “어둠”의 존재들은 영접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요1:11) 이렇게 “빛”은 온 세상을 밝게 비추는데 만일 “빛”이 “빛”을 비추지 못한다면 그 “빛”은 “빛”이 아니라 “어둠”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어둠”은 소경 된 오늘날 기독교 목회자들이 “비유”의 말씀을 모르니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져 멸망하게 되는 것”입니다(마15:14)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