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9:15-27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준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하였는지를 알고자 하여 그들을 부르니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그 둘째가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그러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으리라 하고 곁에 섰는 자들에게 이르되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그들이 이르되 주여 그에게 이미 열 므나가 있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리고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하였느니라, 상기의 본문장의 말씀은 완전 “비유”로 깊이 감춰진 말씀이므로 거듭난 자가 아니면 절대로 해석할 수 없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단란 트”로 “비유”하는 것과 같이 “한 므나”도 하나님의 말씀을 “비유”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돈이나 재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비유”합니다. 그런데 “세 사람”이 주인에게 “한 므나”씩 똑 같이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열 므나“를 남겼고 또 한 사람은 “다섯 므나“를 남겼고 한 사람은 “한 므나”를 그대로 수건으로 싸 두었다가 주인이 돌아왔을 때 “한 므나”를 그대로 내 놓으니 주인에게 책망을 들으며 죽임을 당하는 내용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거듭난 자에게는 게으를 수 없는 무서운 말씀입니다.
상기의 말씀은 오늘날 거짓된 기독교를 “출애굽(탈출)한 “고아, 과부, 나그네”들이 진리의 말씀으로 거듭난 자에게 해당되는 말씀을 “비유”로 한 사람이 “열 므나”를 만들었다는 것은 이 사람이 진리의 말씀으로 장성한 자로 거듭났다는 말이며 또 한 사람이 “다섯 므나”를 만들었다는 것도 “다섯” 이란 기름(말씀) 준비한 “슬기로운 5 처녀”와 같이 말씀을 깨달은 자를 “비유”한 것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다는 것은 장성한 자로 성장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이 “열 므나”를 만든 것이나 한 사람이 “다섯 므나”를 만들은 것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장성한 자로 거듭난 자를 “비유”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 사람”이 주인에게 “한 므나”씩을 똑같이 받았는데 두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장성한 자로 거듭났는데 한 사람은 “한 므나”를 그대로 수건으로 싸 두었다가 주인이 돌아왔을 때 책망을 들으며 주인에게 죽임을 당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상기의 본문의 말씀의 내용은 “세 사람”이 똑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으나 “두 사람”은 거듭나 하나님 칭찬의 대상이 되었고 “한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중추 적인 말씀은 바로 “한 므나”를 수건에 쌓아 놓았다는 것입니다.“수건”이라는 것은 율법을 말하며 어린아이들이 자랄 때는 율법에 갇혀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성장하면서 장성한 자가 율법에서 자유한 자가 되어야 하는데 이 “한 므나”받은 자는 성장할 줄 모르고 항상 어린아이 영적 상태에서 자라지 못하고 있으니 주인이 돌아올 때 책망을 받고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열 므나” 남긴 자나 “다섯 므나”남긴 자는 주인에게 칭찬의 대상이 된 것은 “열 므나”나 “다섯 므나”는 어떤 숫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상적으로 성장해서 장성한 자로 거듭난 자를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기의 “므나”의 “비유”말씀은 “애급”의 신앙에서 벗어나 “광야”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징계와 연단을 받아 모세의 율법 신앙에서 벗어나 자유 한자가 되어 “가나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모두 멸망당한 것같이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어린아이 신앙같이 율법 신앙에 묶여서 즉 “수건”에 싸두어 책망을 받고 결국은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히 5:12-14 때가 오래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될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가 무엇인지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니 젖이나 먹고 단단한 식물을 못 먹을 자가 되었도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 하는 자들 이니라, 오늘날기독교인들이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는 평생을 기독교 목사의 일방적인 설교 즉 목사가 주는 젖만 먹기 때문에 “수건”으로 싸놓은 “한 므나”받은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하나님께 책망을 받아 멸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읽을 때 기독교인들은 깨달아야 합니다.
이같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신앙은 너무나 안일하고 나태한 신앙으로 “한 므나”를 “수건”으로 싸놓은 자들로서 결과는 주인에게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인들이 믿기만 하면 천국을 간다고 교회를 위해 충성 봉사를 다하여 각종 헌금을 바치면 삼십 배 육십 배 백배를 준다 하는 우상의 예수와 하나님을 믿고 오늘도 충성 봉사를 다 하는 기독교인들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거듭난 자들은 이들을 징계하며 절대 하나님은 심지 않은 곳에 거둠을 허락지 않으시고 의의 길을 가지 않은 입술로의 신앙인들에게 아들 됨을 묵인치 않는 분이라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참 말씀을 전하고 징계와 채찍을 드는 참 목자들은 모두가 이단이요, 자신들의 “신학”교리와 전통과 유전을 깨부수려는 이단의 괴수로 돌림을 받는 것이 진정 선지자들의 슬픔인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이 말씀으로 십자가도 예수가 지셨고 피도 예수가 흘렸기에 예수님이 흘리신 “피의 공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믿음으로 천국에 간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 말씀 하나로 모두가 예수가 우리 죄를 도말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죄와 상관 없이 예수의 “피의 공로”로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상기의 본문장의 말씀의 게으르고 악한 종으로 그 주인에게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자들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