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비사,비밀.

사도바울이“셋째하늘”에 다녀온 “비밀”

제라늄A 2022. 7. 3. 17:51

고후 12:1-4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14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자라(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사도바울이 고난 가운데 있을 때에 자신이 비몽사몽간에 입신을 하여 “셋째 하늘”인 천국에 올라가 보았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올라가 본 “셋째 하늘”은 바로 하나님이 계신 “천국”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늘이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과 “셋째 하늘”과 하늘이 셋이 있다는 말입니다.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이 세 하늘들은 과연 어느 곳을 말하고 있을까?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첫째 하늘”은 “별”들이(제사장, 목사) 존재하는 “애급”이라는 기독교 세상을 말하며 둘째 하늘”은 광야의 “달”(모세, 율법)을 말하며 셋째 하늘”은 “해”를 말하며 오늘날의(실존 예수, 진리) 가나안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애급(믿음) 광야(소망) 가나안(사랑)을 말하며 이중에 제일은 가나안(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고전 13 장의 “믿음, 소망, 사랑” 이 중에 제일이 “사랑”(가나안)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사랑”은 인간의 윤리도덕 “사랑”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아가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즉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있는 곳이 “애급”의 기독교 세상이 첫째 하늘이요, 기독교에서 진리를 찾아 “출 애굽”한 “고아, 과부, 나그네”들이 가는 곳이 “광야”의 모세(율법)가 계신 둘째 하늘이요, 오늘날 “실존 예수님”이 계신 “가나안”은 죽은 영혼을 살릴 수 있는 셋째 하늘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비몽사몽간에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기 전에 입신 중에 “셋째 하늘”에 올라가서 사람들에게 감히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사도바울이 셋째 하늘인 “삼층 천”에서 들었던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은 어떤 말씀일까 하고 몹시 궁금해 하지만 성경에 사도바울이 직접 보고들은 말씀을 성경에 언급하지 않고 있어 오늘날까지 2000년 동안 어떤 신학자도 아무도 알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삼층 천”에 기이한 말씀을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설명을 해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면 “삼층 천”의 말씀이 어떤 말씀인지 “영안”이 열린 거듭난 사람은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노아의 방주가 삼층”으로 차원적으로 되어있고 솔로몬이 건축한 “예루살렘 성전도 삼층”으로 “애굽, 광야, 가나안”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세계와 차원적인 말씀을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성전은 일층에는 “애급”이라는 세상 기독교에서 신앙생활하는 종교인들인 바다의 “물고기”들이 사는 세상을 말하며 이층에는 거짓된 기독교에서 “출 애급”한 “고아, 과부, 나그네”들이 머무는 “광야”의 각종 “짐승”들이 사는 곳을 말하며 삼층에는 “가나안”의 “실존 예수”를 만난 “사람”들이 사는 곳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초등학생이 있는 곳은 “일층 천 애급이요, 중 고등학생이 있는 곳은 “이 층천 광야요, 대학생이 있는 곳은 “삼 층천 가나안이란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학문의 등급과 차원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초등학생들은 중 고등학생들의 말을 이해할 수 없고 중 고등학생들은 대학생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기독교 “신학”교리 신앙에서 머물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애급”이라는 세상에서 기독교 목회자와 함께 신앙생활하는 자는 “광야”의 모세의 율법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고 “광야”에서 율법에 묶여 있는 자는 “가나안”에만 계신 오늘날 “실존 예수님”“진리의 말씀”을 이해를 못 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이 아직 신학 교리와 초등 학문에 머물고 있는 자들은 “가나안”에만 계신 오늘날의 “실존 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듣지도 못하고 보아도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실존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이미 거짓된 기독교에서 “출애굽”(탈출)해서 “가나안”의 차원에 있는 영적으로 성장한 사람만이 “실존 예수”를 알아볼 수 있지 “광야”에 있는 사람이나 “애급”에 있는 사람은 영적 수준이 어린아이들 같이 수준이 미달됨으로 “실존 예수님”이 바로 내 앞에 계신다 해도 알아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 종교지도자들 앞에 계신 “실존 예수”를 유대인들이 알아보지 못하고 “실존 예수”의 말씀을 이단으로 배척하고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 것입니다. 오늘날도 “실존 예수님”은 항상 기독교인들 앞에 계셔도 “실존 예수”를 알아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실존 예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은 그 말씀을 받으면 배척하고 이단으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실존 예수”를 배척한 것과 같이 오늘날 기독교 목회자들도 똑같이 이단으로 배척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실존 예수님”의 말씀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최소한 말씀을 갈급해 그 철옹성 같은 거짓된 기독교에서 간신히 탈출한 자들뿐입니다. 그들이 바로 홀로 “출 애급 한 고아, 과부, 나그네”들입니다. 그 혼탁한 “영”들의 세계에서 도망쳐 나온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이런 자들에게 하루속히 나오라고 외치십니다.  계시록 18:4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깨달은 분은 하루속히 “출 애굽”해야 “구원의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독교에서 탈출해서 방황하며 진리를 찾아 갈급해하는 이교회 저 교회 문전걸식하는 거지 나사로와 같은 “고아, 과부, 나그네” 정도의 “광야”의 영적 상태가 되어야 오늘날 예수님의 말씀을 조금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실존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애급, 광야”에서 산전수전 다 격고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이 “영적인 눈”이 열려 그때 “실존 예수님”의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볼 수 있는 것 같이 예수를 알아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셋째 하늘”을 보고 와서 “영적인 눈”이 열릴 때 비로소 그동안 자신은 “영적 소경”이었다는 것과 그동안 하나님을 위한 열심히 모두가 헛된 일이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었다는 것을 자신이 스스로 깨닫고 고백하는 것을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빌3:8) 그래서 사도바울은 거듭나기 전에 유대교 최고 학부를 나온 가말리엘의 최고 성경학자가 자신의 지식과 쌓은 신학 배경의 모든 것을 “배설물”같이 버렸다 고 고백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갈라디아 1:11-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오늘날 신학교에서 배운 목사들의 지식은 생명을 살릴 수 없는 가치가 없는 “배설물”이라는 것을 사도바울 자신이 깨달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생명(씨)이 없는 목사들의 말씀 가지고는 죽어있는 “영혼”을 살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날의 기독교인들도 “애급”세상의 기독교 목회자들의 “신학”교리 신앙에서 하루속히 벗어나 “광야”로 나와 기독교에서 받은 거짓된 것을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징계와 연단을 받고 깨끗이 씻고 “가나안”에 입성을 해서 그때 오늘날 “실존 예수”를 만나야 사도바울 같이 “영의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장님이 눈을 번쩍 뜨듯이 “영”의 눈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믿기만 해서 얻어지는 천국이 절대로 아닙니다.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영”의 눈이 열려 있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쓰지 “영”이 열리지 않으면 절대로 이런 글은 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같이 셋째 하늘의 말씀은 첫째(애급) 하늘과 둘째(광야) 하늘을 통해서 셋째(가나안) 하늘에 들어간 자만이 듣고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입신 가운데 “셋째 하늘”을 보고 듣고 “첫째 하늘”에 있는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가히 이르지 못한다고 말씀을 못하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바다에 물고기와 함께 살던 거북이나 물개가 육지로 나와서 사람들이 자동차나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것을 보고 다시 바다에 들어가 물고기들에게 어떻게 설명을 전달할 수 있겠습니까?  차원이 다른 세계라 아무리 설명을 해도 물고기 세계에는 이해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이같이 사도바울이 본 “셋째 하늘” 천국은 세상 사람들에게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가히 이르지 못한다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유대교 당시에 철두철미한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와 함께 대화를 하면서도 구원자 “실존 예수”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같이 오늘날 기독교 목회자들도 오늘날의 “실존 예수”가 기독교인들 주위에 항상 계시지만 그 영적 상태가 어린아이 신앙과 같기 때문에 바로 앞에서 대화를 해도 그분이 누구신지 전혀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존 예수”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영”의 눈이 열린 사람은 한마디 말씀만 들어도 금방 그분이 누구신지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실존 예수”를 만나려면 일단 철 옹성 같은 기독교에서 탈출해서 진리를 두드리고 찾으면 두드리는 자는 열릴 것이요 찾으려고 하는 자는 찾는다고 하셨습니다(마7:7~8) 그래서 “진리의 말씀”으로 성장하여 장성한 자가 되면 희미하게 보이던 예수가 “가나안”에 들어가면 “얼굴과 얼굴”을 맞대며 “실존 예수”를 알아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전 13:12~13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이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아가페사랑)이라,  요일 4:8~9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