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6:24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라 오려거든 누구든지 나처럼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내게 합당치 않고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예수님의 본을 따라 반드시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명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처럼 반드시 “자신의 십자가”에서 자신의 존재가 죽어야 산다고 했던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기독교 신학자들이 매일성경을 읽으면서 이 말씀이 누구에게 하시는 말씀인지 신학자나 목회자들이 전혀 이해를 못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만 믿고 자기 “십자가”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 이렇게 됐는가? 오늘날 기독교 목회자들이 신학교에서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그렇게 가르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공로로 기독교인들은 구원을 받았다고 “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피”로 “비유”합니다. 계시록 19: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 하더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흘리신 “피”가 무엇인지 “십자가”는 무엇을 의미 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간단히 믿어버렸으므로 가장 현명한 척했으나, 자기 “십자가”에는 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만 믿고 자기 “십자가”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께서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고 하셨는지를 아는 기독교 목회자들이 오늘날까지 한 명도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두 예언이고 “십자가”도 모두 예언이고 “비유비사”인데 그 예언의 예수님의 “십자가”의 뜻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뜻도 전혀 모르니 교인들이 어떻게 자기 “십자가”를 지겠는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구원의 십자가”로 잘 믿는답시고 지난 이천 년 동안 예수님의 “십자가”만 열심히 바라보고 예수님께서 우리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기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았다고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십자가”의 죽음이란 실제로 육신이 죽는 죽음이 아니라 상징과 “비사”로 기록한 것입니다. 성경은 모두 예언이며 예언은 상징과 “비사”로 기록한 것인데 하나님의 본질은 실제로 육신이 죽는 죽음이 아닌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본질이 아닌 상징과 “비사”로 기록한 말씀이므로 성경을 “비유비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비유비사”를 풀어내어 인류구원의 예수님의 “십자가”도 나의 “십자가”도 모두 상징과 “비사”로 “십자가”로 전환해서 보아 야만 하는 시각이 필요한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전혀 그럴만한 능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성경은 “육신의 죽음”으로 기록을 했으나 그 본질은 모두 “영적인 죽음”과 “영적인 부활”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말씀은 잘 몰라도 하나님과 예수님만 잘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이런 소아병적인 젖먹이 어린아이 신앙생활을 할 것인지 정말 답답합니다. 내가 영적으로 나의 “십자가”를 지고 죽어야 하는 나의 “영적 십자가”가 내 앞에 있는데, 그게 예수님의 가르침인데 도대체 신학박사가 어디 있고 목사와 평신도가 어디 있단 말인가? 목사 평신도 모두 다 일반이지 않는가? 예수님은 우리 각자에게 “영적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 요구하셨습니다. 육체의 죽음을 요구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기독교목사들에게 거짓된 복음으로 건축한 자신의 거짓된 육체성전을 헐어야 하는 옛사람의 죽음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19-20 예수께서는 유대종교지도자들에게 46년 된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며 이 성전을 헐면 내가 3일 만에 다시 짓는다고,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유대인들에게 “비유”로 너희들의 잘못된 거짓의 말씀으로 지은 너희들의 육체의 성전을 헐고(죽고) “실존예수님”께서 전하는 새 말씀으로 다시 성전을 지으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성경에 기록된 2000년 전 유대인의 예수를 믿어서 자신 안에 잘못 건축한 육체의 성전을 헐고(죽고) 오늘날의 “실존예수님”의 말씀으로 다시 성전을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믿는 과거의 양식이 무엇이었는가? 신, 구약 성경을 문자 그대로 먹는 양식이고 그런 믿음의 기록입니다. 그런 육적 믿음에서 죽으라는 것이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죽기는커녕 과거의 문자성경을 그대로 믿고 줄기차게 살아 있는 것입니다. 과거의 양식을 버리고 과거의 믿음에서 죽고(헐고) 오늘의 새 양식을 먹고 오늘의 새 믿음에서 다시 살아야(부활)합니다. 기독교에 입문해서 거짓된 복음을 받은 내 것에서 죽지(헐지) 않으면 새로운 내가 다시 살 수(부활)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에서 받은 거짓된 복음이 진리인양 과거의 믿음에서 시퍼렇게 살아 큰소리치고 있는데, 즉 자기 “십자가”를 전혀 알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육체를 입고 오늘날도 “실존”로 오셨지만 그들에게 오늘날의 “실존예수님”이 풀어주시는 진리의 새 말씀이 도무지 들어갈 틈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실존예수님”은 기독교인들을 구원하러 진리의 새 말씀을 가지고 오셨지만 유대인들이 “실존예수”를 영접하지 않고 이단으로 배척해서 죽인 것 같이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오늘날 “실존예수”를 영접하지 않고 이단으로 배척하는 것입니다. 오죽 답답하셨으면 “예수께서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8:20)고 한탄하셨겠습니까? 도저히 유대교 때나 오늘날이나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배척하기 때문에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고하셨습니다. “실존예수”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분입니다. 그런데 기독교 안에 들어갈 곳이 없다고 오늘도 “실존예수”는 한탄하시는 것입니다.
이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고 하나님만 잘 믿으면 된다는 기독교인들은 허공을 치는 “우상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영적으로 죽어야 하는 “영적십자가”가 내 앞에 있는데도 그게 예수님의 가르침인데 도대체 기독교거짓목사 밑에서 무엇을 배운단 말인가? 예수님은 기독교인들 각자에게 “영적십자가”를 요구하셨습니다. 육체의 죽음을 요구하신 것이 아니고, 육체는 살아 있는 기독교인들의 옛 신앙 처음에 기독교에 입문해서 받은 거짓된 신앙 거짓예수를 잘못 믿고 잘못 지어진 거짓된 성전을 헐어버리고 오늘날 “실존예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다시 지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 “십자가”를 지라는 것은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와 똑 같이 자신도 동일하게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 목회자들은 상기의 기록된 말씀들은 모두 비켜가며 우리가 지고 갈 “십자가”는 예수님이 모두 대신지고 가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공로를 믿기만 하면 된다고 거짓을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생각대로 기독교 “신학”교리대로 믿는 것은 자유이나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지 않으면 절대로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생명의 길은 좁고 협잡하여 그 길로 가는 자가 적다고 하시며 많은 사람들이 넓고 평탄한 길로 가는데 그 길은 죽음의 길이라는 것입니다(마7:13-14) 하나님의 백성들인 이스라엘민족 60만이 모세가 강제로 “출애굽”은 했지만 “가나안”(천국)에 들어간 자가 겨우 “여호수아와 갈렙”과 새로 난자들만 구원받은 것을 꼭 기억하셔야만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출애굽기”말씀은 “천국으로 가는 길”을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비사”로 그림자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읽으시는 기독교인들은 자신의 신앙의 길을 반드시 점검해야 합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