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1980년 초에 기독교에 입문해서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최선을 다해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성경을 깊이 읽어 볼수록 어쩐지 오늘날의 교회가 성경적인 교회가 아니라는 생각이 확신으로 다가오면서 십일조와 전도 봉사 헌신이 모두가 다 나의 의가 들어남을 깨달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롬 10:2-3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고 있다는 점이 자꾸 확신으로 다가오면서 그러나 해결 방도를 찾지 못하고 제도권 교회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계시록을 읽다가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을 받지 말라(계18:4)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뇌성처럼 위엄 있게 들리면서, 그 후로는 성경을 읽을 때에 기독교목사의 설교가 누룩이 섞인 말씀이라는 사실을 성경 이곳저곳에서 증명해 주어 그 때부터 목사의 설교가 역겨워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제도권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 더 이상 안주할 수가 없어서 가정에서 독립신자가 되기로 결심하고 그동안 정들었던 교회와 사랑하는 교우들을 떠났습니다. 이런 울림이 있기 전까지는 목사가 가르쳐 준 대로 교회는 세상과 분리된 성스러운 곳으로 믿었고, 교회는 하나님이 계신 성전으로 믿었고, 정규 신학교를 나온 목사는 거의 틀림없는 주의 종으로 믿었고, 목사의 설교는 성령의 감동으로 나온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단은 목사들이 가르쳐 준 다른 교리 다른 복음이면 이단인 줄 알았고 구약성경을 중점적으로 읽고 탐구하면서 거짓 교회와 참 교회 빛과 어둠의 두 가지 모습이 확실하게 구분되는 것을 깨달았으며 가인과 아벨, 이스마일과 이삭, 에서와 야곱이 구별되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하면서 내 자신을 의심해보기도 하고 혹시 내가 영적으로 잘못되고 있지나 않나 싶어서였습니다. 이때부터 진리를 찾기 위해 영적으로 방황했으며 아니 가본 교회가 없이 이단이라 칭하는 교회도 다 다녀 보았지만 성경을 깊이 탐구하면 할수록 이단교회도 잘못 돼가고 있다는 확신은 더욱 굳어져만 같습니다. 신앙생활 하는 동안은 목사의 설교가 진리인 줄 알았는데, 성경 보는 눈이 조금씩 밝아지면서 오늘날 기독교의 목사는 예수께서 유대종교 지도자들에게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꾸짖었던 바로 그들과 똑같은 부류였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내가 몸담은 교회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면 교회를 옮기면 될 터이지만, 이 땅에 존재하는 제도권 교회는 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독립을 결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제도권 교회는 구조적으로 하나님을 등지고 사탄의 일을 하고 있음을 성경과 더불어 성령이 내 마음속에서 분명히 증언하는 데는 믿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교회는 다수가 모여 공동체를 이룬 조직이기 때문에 문제가 전혀 없이 일사 분란하리라고 믿지는 않습니다. 다만 내가 문제를 심각하게 본 것은 목사의 부도덕이나 부정부패가 아니라, 목사 본인도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비 진리로 교회가 구조적으로 사탄의 손에 놀아나고 있음을 볼 때 도저히 그들의 비 진리 속에 더 이상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날의 기독교가 예수께서 책망한 유대교의 전철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는 사실을 성령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뭐라 해도 오늘날의 기독교는 예수그리스도와 그 사도들이 피 흘려 세운 초대교회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이 필자의 교회관입니다. 오늘날의 기독교회를 판단해 볼 때는 이스라엘 북 왕국 시대에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이 북이스라엘을 망쳐 놓았을 뿐 아니라, 신약시대에 그 망령이 다시 기독교회에 들어와 하나님의 종들을 가르쳐 꾀어 우상숭배로 이끌고 있는 것입니다(계2:20)
오늘날 기독교의 가장 심각한 폐단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아는 지식이 있어야 하나님을 올바로 믿을 수 있는데, 성경을 깊이 연구하지 않고 목회자의 일방적인 설교와 가르침만을 받은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의를 알 수 없다고 생각하며(롬10:2-3) 하나님을 아는 것(영적)은 아무리 훌륭한 목사에게 배워도 그리스도의 영을 받지 못한 사람은 그것으로는 진리를 깨달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가르침이 없이 사람의 가르침(신학)으로는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문자적으로는 알 수 있어도 영적으로는 절대로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당시의 최고 학부를 나온 유대교 성경학자가 다메색에서 계시를 받은 후에 자신이 영적 소경이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자신의 지식과 신학배경을 배설물 같이 버린 이유가 하나님의 말씀은 신학을 배워서 아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영의 가르침과 성령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도바울은 갈 1:11-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마 11:27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말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이렇게 그리스도의 영이 가르치신다는 사실을 확인한 나는 세속화된 기독교를 단연 배척하고 오직 성경에 의한 신앙을 고수하기로 하고 모든 비난을 개의치 않고 오직 예수만을 우러러보는 참 신앙인이 되기를 다짐하고, 내가 모든 교파와 교회를 떠나서 성경에 의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는 오직 실존예수 한 분밖에 없다는 사도바울의 말을 굳게 믿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나의 마음 안에서 나를 가르치며, 위로하며, 하나님의 것을 나에게 주며, 훈계하며, 인도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성령은 하나님과 동일한 분으로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옳은 길을 따라 힘써 정도를 걸으려고 노력만 하면 하나님은 언젠가는 나를 본향으로 인도하여 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도권 교회를 떠나 홀로 집에서 성경을 탐구하며 지내던 중 우연히 어느 설교테이프를 들으면서 온몸에 전륜이 흐르며 정신이 번쩍 들면서 바로 이 말씀이야 그동안 찾고 찾던 진리가 바로 이것이다라는, 확신이 들면서 이 말씀의 근원을 찾던 중 어느 전도사라는 분을 만나 대화를 나누는데 너무나도 충격적인 말씀이라 그 말씀을 받아들이기란 내 영성으로는 그 말씀을 그대로 접하기가 너무나 벅 찾던 것입니다.
아니 이 세상에 이런 말씀을 누가 받을 수 있겠는가 자문 자답하며 그 말씀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씁쓸한 마음으로 뒤돌아서고 허탈한 마음으로 그냥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때부터 내 마음속에는 요동을 치며 고민의 고민을 더하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러면서 마음의 확정을 짓지 못하고 더욱 갈급한 심령에 떠도는 기독교를 탈출(출애급)한 고아, 과부, 나그네와 같은 생활을 몇 년이라는 세월을 덧없이 보내면서 마음 한구석은 늘 그 전도사님의 그 말씀이 내 마음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제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담대한 마음이 생기면서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속담과 같이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마11:12)라는 확신을 얻고 그 전도사와 접촉하여 그분의 말씀을 전수받으며 3년이라는 세월을 보냈습니다. 지금도 내 생각에는 이 말씀은 천하의 어떤 사람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아무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지금 현재 나같이 못난 내 자신이 이제야 깨달았다는 것은 기적 중의 기적이요, 아무리 생각을 해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깨달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왜 유대종교 지도자들에게는 죽임을 당한 이유를 나는 이제야 알 것 같았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였다. 성경의 말씀 하나라도 가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으로 규정하였습니다. 그런 예수라는 자가 어느 순간 성경의 가르침을 완전히 뒤집어 다르게 해석하는 악마적 행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말씀을 그대로 해석하고 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라는 자의 마음대로 자의적 해석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찌 더 이상 이런 참람한 행동을 유대교 당시에 철두철미했던 유대종교 지도자들이 그냥 간과할 수 있으랴,
하나님의 말씀을 사사로이 푸는 예수라는 자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되는 철두철미한 유대인들의 입장을 지금 내가 이해할 수 있었고 왜 죽였는지 그 이유를 지금 내가 처한 나의 입장이 바로 예수와 똑같은 입장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내가 이 길을 가면서 내 주위에 여러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으며 이단이라는 낙인이 찍혀도 내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지만 가장 힘들고 고통을 받는 것은 내 주위에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사랑하는 내 아내가 이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정면으로 도전하며 괴롭히고 있는 데는 정말 너무 힘들고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물론 그 사람 입장에서는 어쩌면 당연한 처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버선 짝이니 뒤집어 보여 줄 수도 없는 일이고 너무나 안타까운 처지에 당면해 어쩌면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이며 내 몸에 찔림을 주는 가시인지도 몰라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만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 진리를 깨달은 이상 어떠한 고난과 핍박이 내 앞에 닥치더라도 나에게 더욱더 소중하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배로운 보배로 확신으로 다가오는 이 진리는 그 누구도 막을 수없는 길이기에 오늘도 묵묵히 저 천성을 향하여 뚜벅뚜벅 걸어갈 뿐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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