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18:1-5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저편으로 나가시니 거기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다 거기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가끔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곳을 알더라, 유다가 군대와 및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하속들을 데리고 등과 홰와 병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는지라,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가라사대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가라사대 내로라 하시니라, 그를 파는 유다도 저희와 함께 섰더라,
해설: 예수님은 기도를 마치시고 제자들과 함께 동산으로 올라가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기도는 이 외에도 십자가의 죽음을 앞에 두고 아버지를 향해 밤이 새도록 땀을 흘려가며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내게서 옮겨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시는 것을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통해서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27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앞에 두고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 때 고민하고 슬퍼하시며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하나님을 향해 내 아버지여 만일 할 수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며 세 번이나 반복해서 간절히 기도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애가 타도록 간절하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단순히 자신에게 당면한 죽음이 두려워서 죽음을 면하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도 우리와 같은 인성과 육신의 몸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죽음이 두려워 죽음을 피하게 해달라고 기도 하셨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향해 이렇게 살려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하신 것은 단순히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또 다른 말 못 할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복음서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외경(마리아복음서, 빌립복음서, 도마복음서등)을 보면 예수님은 그동안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막달라 마리아와 연민의 정을 가지고 서로 사랑하는 사이었습니다. 댄 브라운이 기록한“다빈치코드”를 보면 막달라 마리아는 심지어 예수님의 아기까지 가지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이 두려운 것보다 자신이 사랑하는 막달라 마리아를 홀로 두고 떠날 수가 없기 때문에 심히 고민을 하며 아버지를 향해 살려달라고 땀방울이 피 방울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마리아의 이러한 사실이 드러나면 기독교인들에게 충격과 더불어 예수님의 신성이 훼손되거나 무너지기 때문에 성경기록자들이 성경을 편집하면서 성경에서 삭제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인성과 실체가 모두 드러나야 예수님의 참모습을 알 수 있고 또한 육신의 몸을 가진 기독교인들도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는 소망을 같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저편에 있는 동산으로 제자들과 함께 올라가셨는데 그곳은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가끔 모이시는 곳이므로 예수를 파는 유다도 그곳을 잘 알고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때 예수님을 은 삼십 량에 팔아먹은 유다가 군대와 및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서 얻은 하속들을 데리고 등과 홰와 병기를 가지고 그리로 오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다가 하속들을 데리고 자신을 잡으러 오는 것을 이미 아시고 나아가 가라사대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대답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로라 하시니 그들 가운데 예수를 파는 유다도 저희와 함께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가룟유다가 자신을 판다는 것과 하속들에게 잡혀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제사장의 하속들을 향해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시며 너희가 찾는 나사렛 예수가 바로 나라고 담대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따랐던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고 하속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잡으러 온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을 받던 가롯유다가 그 은혜를 망각하고 예수를 팔게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불의 병기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18:6-9 예수께서 저희에게 내로라 하실 때에, 저희가 물러가서 땅에 엎드러지는지라, 이에 다시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신대, 저희가 말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내로라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의 가는 것을 용납하라 하시니 이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 삽나이다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해설: 예수께서 자기를 잡으려고 온 하속들에게 내가 바로 예수라고 하실 때에 저희가 뒤로 물러가서 땅에 엎드린 것입니다. 예수님을 잡으러 온 하속들이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땅에 엎드린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원자라는 위엄과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하속들에게 다시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시니, 저희가 말하되 나사렛 예수라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에게 나라고 하였으니 나를 찾거든 이 사람들(제자들)이 가는 것을 용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하속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제자들을 보호하기 위함이며 또한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주신자 중에서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구약성경에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언된 말씀들을 예수님께서 이루고 계신 것입니다. 즉 이러한 모든 일과 사건들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섭리 속에서 모두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8:10-11 이에 시몬베드로가 검을 가졌는데 이것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서 오른편 귀를 베어버리니 그 종의 이름은 말고라,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검을 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해설: 시몬베드로가 검을 가졌는데 갑자기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인 말고의 오른편 귀를 쳐서 베어버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두 칼을 가지고 하속들과 싸울 준비를 하고 있는 것과 같이 생각될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나 제자들이 소유하고 있는 검은“말씀의 검” 즉 하나님의 말씀을비유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말고의 오른쪽 귀를 단번에 자르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검을 집에 다시 꽂아 넣어라 아버지께서 주신“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고 말씀을 하십니다. 이렇게 성경은 일상적인 생활을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성경을 보는 사람은 모두“비유비사”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서 주신“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신 것은 곧 예수님의 죽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미 아버지께서 정해놓으신 죽음을 피할 수가 없고 피해서도 안 되는 것을 알고 계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들이 모두 망하게 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아버지의 뜻을 이미 알고 계시기 때문에 아버지가 주신“잔”을 반드시 마셔야 한다고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경은“영”의 말씀이라 신구약 모든 말씀이“비유비사”로 기록된 말씀이라 자칫 잘못하면“육”의 눈으로 문자로 이해하기 때문에 큰 오류를 범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8:12-14 이에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하속들이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 권고하던 자러라,
해설: 예수님이 내가 바로 너희가 찾는 나사렛 예수라 하신 말을 듣고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인의 하속들이 예수를 잡아 결박하여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가니 안나스는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의 장인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모든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제사장들에게 권고하던 자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유대의 대제사장이라면 일을 처리할 때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어느 것이 더 옳으냐를 생각해야 하는데 가야바는 사람 편에 서서 백성들에게 어느 것이 더 유익하냐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기독교 목회자들도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목회자들도 하나님 앞에서 어느 것이 옳고 진실하냐가 아니라 어느 것이 자신이나 자기 교회에 유익하냐 아니면 불리하냐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18:15-18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하나가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 베드로는 문 밖에 섰는지라, 대제사장과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 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데리고 들어왔더니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 그 때가 추운 고로 종과 하속들이 숯불을 피우고 서서 쬐니 베드로도 함께 서서 쬐더라,
해설: 예수님께서 군대와 천부장과 유대 제사장의 하속들에게 잡혀 가는데 시몬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하나가 예수의 뒤를 따라가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 안으로 들어가고 베드로는 문 밖에 서있었던 것입니다. 이때 대제사장과 아는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문지키는 여자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뜰 안으로 데리고 들어온 것입니다. 그런데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예수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고 물으니 베드로가 말하되 나는 예수의 제자가 아니라며 예수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수석 제자로서 예수님에게 나는 죽는데 까지 주를 따르겠다고 큰소리친 자인데 자기에게 위험이 닥치니까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는 날씨가 추운 고로 종과 하속들이 숯불을 피우고 서서 불을 쬐고 있는데 천연덕스럽게 그들과 함께 불을 쬐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예수님을 부인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의구심을 같겠지만 이것은 인간의 나약함과 예수님을 향한 믿음이 진실이 아니라 외식 적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8:19-24 대제사장이 예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드러내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히는 아무것도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보라 저희가 나의 하던 말을 아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매 곁에 섰는 하속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쳐 가로되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 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거 하라 잘하였으면 네가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 하시더라, 안나스가 예수를 결박한 그대로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보내니라,
해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대제사장이 보낸 하속들에게 잡혀와 대제사장 안나스 앞에 서서 심문을 받고 있는 장면입니다. 대제사장 안나스가 예수에게 그의 제자들과 그의 교훈에 대하여 물으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들어내어 놓고 세상에 말하였노라 모든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과 성전에서 항상 가르쳤고 은밀하게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내가 무슨 말을 하였는지 들은 자들에게 물어보라 저희가 나의 하던 말을 알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대제사장 안나스”에게 말씀을 하시매 곁에 섰던 하속 하나가 손으로 예수를 치며 가로되 네가 대제사장에게 이같이 대답하느냐고 질책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장면을 읽으면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당시의 상황을 상상해 보면 오직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철저히 믿고 섬기던 유대종교 지도자들을 지도하는“대제사장”도 이처럼 유대인들을 구원하러 오신“실존예수님”을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오늘날 기독교 신학은 물론 신학박사들도 유대“대제사장”들과 똑같이 하나님께서 오늘날 구원자로 보내주시는“실존예수”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성경은 깊이 감춰진 비밀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말씀을 깨닫는 자가 구원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치며 질책하는 하속에게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말을 잘못하였으면 그 잘못한 것을 증거 하라 그런데 내가 잘하였다면 어찌하여 나를 치느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을 들은 안나스는 예수님에게 허물을 찾지 못하여 예수를 결박한 그대로 대제사장인 가야바에게 보내게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18:25-27 시몬 베드로가 서서 불을 쬐더니 사람들이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아니라 하니, 대제사장의 종 하나는 베드로에게 귀를 베어 버리운 사람의 일가라 가로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던 것을 내가 보지 아니하였느냐, 이에 베드로가 또 부인하니 곧 닭이 울더라,
해설: 예수님이 대제사장에게 심문을 받는 동안 시몬 베드로는 서서 하속들과 함께 불을 쬐고 있는데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묻되 “너도 그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고 물으니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아니라고 말을 하니, 이어서 대제사장의 종, 곧 베드로에게 귀를 베어 버리운 사람의 일가 되는 사람이 가로되 네가 그 사람과 함께 동산에 있던 것을 내가 보았다고 말하니, 이에 또 베드로가 아니라고 부인하니 곧 닭의 울음소리가 베드로의 귀에 들린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떠나가신다고 말씀하실 때 나는 주를 위하여 목숨까지 버리겠다고 호언장담 하였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닭이 울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을 한 것”입니다. 이 말은 거듭나기 전 까지는 예수를 부인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에서가 시장할 때 야곱에게 장자 권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먹은 것과 같이 베드로도 자기에게 위험이 닥치니까 자기가 살기 위해서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한 것입니다. 그러면 자신이 살기 위해 예수를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한 베드로와 은 삼십 량에 예수를 판“가롯유다”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이와 같이 하나님을 섬기며 예수를 믿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라 해도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는 베드로와 같이 하나님도 예수님도 부인할 수 있고“가롯유다”와 에서와 같이 예수를 팔고 장자권도 팔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아 죽인 유대인들은 지금도 자신들이 예수를 죽인 죄인이라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우리는 예수를 부인하지도 않았고 은 삼십 량에 팔지도 않았고 유대인들과 같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다고 말하며 의인 노릇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연 하나님이 보실 때도 그렇게 보실지 기독교인들은 깊이 생각해 봐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일상적인 대화로 기록된 것 같이 우리는 보지만 모두“비유비사”로 감춰진비밀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막4:11-12)
요한복음18:28-32 저희가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새벽이라, 저희는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아니하더라, 그러므로 빌라도가 밖으로 저희에게 나가서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소하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행악 자가 아니었다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지 아니 하였겠나이다.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가 저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이 없나이다 하니, 이는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해설: 예수님은 안나스에게서 가야바에게 넘기워 졌으나 가야바도 예수를 정죄하지 못하니 예수를 가야바에게서 관정으로 끌고 가니 날이 밝아 새벽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더럽힘을 받지 아니하고 깨끗한 몸으로“유월절 잔치”를 먹고자 하여 관정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유월절잔치”라는 것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부할 절”이나“성탄절”에“성찬식”을 할 때 목회자들이 죄가 있는 사람은“성찬”을 먹지 못하게 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성찬식”을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주신“살과 피”의 진정한 영적의미를 모르고 교회에서 만든“떡과 포도주”를 예수님의“살(떡)과 피(포도주)”라고 하면서“성찬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먹으라는 “살과 피”의 영적인 의미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목회자들이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예수님이 오신 지 이천 년이 지나도록 교회에서“성찬식”을 하면서 사람이 만든“떡과 포도주”가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살과 피”라고 먹고 마시며“성찬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정한“살과 피”의 영적의미는 “복음”을 받아먹는 자의 입장은“살”(떡)을 받아먹는 것이고 “복음”을 전해주는 자의 입장은 희생의 “피”(포도주)를 전해 주는 것입니다.“살”(떡)은 하위개념의 말씀을 말하며 “피”(포도주)는 상위개념의 “그리스도”의 말씀을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살과 피”는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생명의 말씀”을 비유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만들어“성찬식”에 먹고 마시는“떡과 포도주”는 예수님이 주신“살과 피”의 모형과 그림자 일 뿐 진정한“떡과 포도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주시는“살과 피”를 먹고 마신 예수님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 사도들이 되었지만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며“성찬식”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자가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기려고 찾아간 하속들을 빌라도가 보고 밖으로 나가서 저희에게 말하되 너희가 무슨 일로 이 사람을 고소하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속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 사람이 행악 자가 아니면 우리가 당신에게 넘기겠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이 죄인이요 행악자이기 때문에 잡아왔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말을 들은 빌라도는 그러면 너희가 예수를 데려다가 너희 법대로 재판하라고 말을 하니 유대인들이 가로되 우리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권한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구약의 선지 서를 통하여 예수께서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가리켜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은 구약성경에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예언한 예언대로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속에서 오셨고 또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죽으시는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생사화복도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속에서 주어진다는 것을 알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안다면 나를 돕는 자만 천사가 아니라 나를 해하는 사탄마귀도 천사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며 천국도 천국만 천국이 아니라 지옥도 천국으로 화해질 것입니다.
요한복음18:33-38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뇨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여 네게 한 말이뇨,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 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 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하신대,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해설: 유대인들의 말을 들은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가로되 네가 유대의 왕이냐 물으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뇨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고 물으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고 묻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빌라도는 유대인이 아니라 로마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잡아 온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유대인이기 때문에 너희 법대로 너희가 재판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면서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했다면 내 종들이 싸워서 나를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을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은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늘나라의 왕이지 세상의 왕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하늘의 왕이 아니냐고 물으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하늘의 왕이라고 대답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내가 바로 왕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나는 하나님을 위하여 났으며 하나님을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빌라도에게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는다고 말씀하시니,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고 묻는 것입니다. 이렇게 빌라도는 하나님을 믿는 유대인이 아니라 로마인이기 때문에 진리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8:38-40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저희가 또 소리 질러가로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러라,
해설: 빌라도가 예수님이 하시는 말을 듣고 다시 유대인들에게 나가서 이르되 “나는 예수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노라, 내가 유월절이면 너희에게 죄인 한 사람을 놓아주는 전례가 있으니 그러면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물으니 저희가 또 소리 질러가로되 “이 사람이 아니라 바라바”라 하니 바라바는 강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죽어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오신 구원자인데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무슨 죄를 지었고 무슨 잘못을 했기에 강도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님을 죽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살려두면 예수님께서 유대교의 잘못된 교리와 제사장들의 비리들을 모두 들어내기 때문에 유대교는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강도 바라바는 살려주어도 자신들에게 해가 되지 않지만 예수님은 살려두면 유대교가 망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절대로 살려두면 안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대제사장 가야바가 예수 한 사람이 죽으면 온 백성이 망하지 않게 된다고 예수를 제거하자고 말을 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유대교제사장들이나 기독교목회자들이 목회를 할 때 하나님의 의와 진실한 편에 서서 일을 해야 하는데 언제나 자기가 유리하고 이익이 되는 편에 서서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렇게 욕심이 많은 삯꾼목자들은 죽으면 반드시 심판을 받아 지옥으로 들어가 형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