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0:1-10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 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 때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아나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구푸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시몬 베드로도 따라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켜 있더라,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 9절, 저희는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이에 두 제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해설: 9절 말씀에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한 자가 누구인지를 알 때에 예수의 부활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안식일”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어두울 때에 무덤에 달려간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어머니가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많고 예수님의 어머니도 계신데 어떻게 “막달라 마리아”가 잠도 설치고 이른 새벽에 무덤으로 달려갔을까요?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이 돌아가시는 현장을 예수님의 어머니와 이모 마리아와 함께 지켜보고 있던 여인이며 예수님의 부활하신 모습을 가장 먼저 목격한 여인입니다. 그보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제일 처음 예수님을 만나 대화를 한 여인이며 제자들에게 달려가 예수님이 살아나신 것을 전한 여인입니다.
이렇게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 곁에서 일거일동을 지켜보며 예수님을 보필하면서 사명을 감당하였는데 이 여인은 과연 예수님과 어떤 관계일까요? “막달라 마리아”는 죄인의 몸으로 예수님의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기고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은 여인입니다. 당시 “막달라 마리아”는 일곱 마귀에게 잡혀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주셔서 죄 사함을 받고 그 때부터 예수님을 따르며 예수님을 보필한 여인입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님은 평소에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복음서에는 기록이 되어 있지 않아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인간적인 면에 대해서는 너무나 무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의 참모습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신성을 가지고 계시지만 우리 인간과 똑같은 인성 즉 육신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자를 보면 사랑을 느끼며 또한 사랑하는 여인과 정을 나누고 싶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며 예수님 가까이서 지극정성으로 섬긴 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죄 가운데서 구원시켜 주신 구원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남녀 칠세 부동석이라는 말이 있듯이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가 자주 만나면서 서로 정을 느끼게 되었고 따라서 사랑하는 사이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이 사복음서에는 기록이 되어 있지 않지만 외경인 “마리아복음서”와 “빌립복음서”그리고 “도마복음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댄 브라운이 기록한 “다빈치 코드”를 보면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아기까지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성경을 편집을 하던 성경학자들이 “마리아복음서”나 “빌립복음서” 그리고 “도마복음”을 성경에서 제외시킨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진실을 알고자 하는 기독교인들은 외경들을 한번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외경(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경)에 기록된 “마리아 복음서”와 “빌립복음서” 그리고 “도마복음서”에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서 기록한 내용 일부를 잠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마리아 복음서 17:9-20 안드레가 형제들에게 이르노니 자매(막달라 마리아)의 말을 어찌 생각하십니까? 주께서 이 말씀을 하셨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알던 것과 너무도 다릅니다. 그때 베드로가 말하길 우리가 모르는 비밀을 이런 식으로 여자에게 말씀하셨다니 가당키나 합니까? 관습을 뒤엎고 여자의 말에 귀 기울여야 옳습니까? 정녕 우리보다 더 사랑하사 이 여자를 택하신 것입니까?
상기의 말씀은 안드레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막달라 마리아”의 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안드레는 주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안드레가 “예수님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던 것과 너무도 다릅니다”라고 말할 때 베드로가 듣고 말하길 우리가 모르는 비밀을 이런 식으로 이 여자에게 말씀하셨다니 가당키나 하냐고 말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어서 그러면 우리가 지금까지 지켜온 관습을 뒤엎고 여자의 말에 귀 기울여야 옳으냐고 말하면서 “그러면 정녕 예수님은 우리보다 마리아를 더 사랑하여 이 여자를 택하신 것입니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님이 어떤 사이라는 것을 가히 짐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빌59:9)
예수는 어느 사도보다도 마리아를 특별히 아끼고 사랑하셨다 자주 그녀의 입술에 입맞춤을 하기까지 했다. 그가 마리아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안 사도들이 물었다 왜 저희들보다 그녀를 더 사랑하시나이까? 이에 예수가 대답했다 내가 그녀만큼 너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게 가당키나 한가? 상기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그 어느 사도들보다도 “막달라 마리아”를 특별히 아끼고 사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주 “막달라 마리아”의 입술에 입맞춤까지 했다고 노골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왜 우리보다 “막달라 마리아”를 더 사랑하느냐고 항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기독교인들이 상상도 하지 못한 일들을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서 조금도 거리낌 없이 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모습은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 되신 하나님의 아들로 신성을 가지고 계시지만 육신의 몸도 입고 계시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혈기 왕성한 “30대”의 예수님이 아름다운 “막달라 마리아”를 보고 연정을 느끼며 사랑하게 되었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도마복음서 114편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했다. “마리아를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십시오, 왜냐하면 여자들이 생명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그 여자를 남자로 만들도록 인도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 여자도 너희 남자들과 같이 산 영이 되도록 만들 것이다. 이렇게 남자로 창조된 여자들은 누구나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이 말씀의 해설은 카테고리 안에 도마복음해설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상기의 말씀을 보면 지금까지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의 사랑을 지켜본 베드로가 더 참을 수가 없어서 예수님에게 이제 “막달라 마리아”를 우리에게서 떠나게 해달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자는 하나님의 생명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보라 내가 “막달라 마리아”를 “남자”로 만들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자”도 말씀을 통해서 “남자”로 창조될 수 있고 “남자”로 창조되면 누구나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여자와 남자”는 영적인 “여자와 남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자”는 “정결한 처녀”를 말하는데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해진 자를 말하며 “정결한 처녀”인간이 거듭나면 “남자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자예수”가 거듭(부활)나면 “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 고전 11:3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니라, 이같이 단계적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 베드로를 비롯한 모든 제자들이 아직도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영적인 뜻이나 행동을 모두 육적으로 듣고 알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수석제자인 베드로도 거듭나기 전에는 예수님의 영적인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상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는 스승과 제자의 사이를 넘어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의 이러한 인간적인 모습을 보면 실망하는 것은 물론 예수님의 신성까지 무너지기 때문에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복음서들을 성경기록자들이 모두 삭제하고 외면하며 지금까지 숨겨 온 것입니다. 그러나 진실은 반드시 드러나야 하며 숨겨진 거짓도 모두 드러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진실하게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물론 오늘날 기독교인 모두 알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이며 어머니 마리아 몸에서 성령으로 잉태된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죽을 수도 없고 죽어서도 안 되는 하나님이신데 이렇게 돌아가셔서 차디찬 시체가 되어 무덤에 누워 계신 것입니다. 인간들의 생명은 갑자기 죽을 수도 있고 또한 반드시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명은 영원하기 때문에 죽을 수도 없고 죽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죽으셨고 이제 다시 부활하신다고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예수님이 다시 산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생명이 인간의 생명과 무엇이 다르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죽어서는 안 되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서 피와 물을 다 흘리시며 죽었다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죽지 않았다면 다시 부활이 있을 수 없고 또한 예수님이 죽지 않았다면 마술사와 같이 죽었다고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탄생은 동정녀마리아 몸에 성령이 잉태해서 예수가 태어나신 분이라고 지난 2.000년 동안 믿고 있으며 전 세계기독교인들이 성탄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은 성령으로 육신이 잉태되어 예수님은 몸 자체가 성령덩어리요, 하나님이라 믿고 있습니다.
때문에 예수님의 몸은 인간의 몸과 전혀 다른 하나님의 몸이기 때문에 죽지 않는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예수님의 몸이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몸 안에 성령이 임하게 되었다면 예수님의 몸은 우리와 동일한 인간의 몸이기 때문에 죽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죽었다면 예수님도 당연히 우리와 같이 다시 부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지금도 예수님은 성령으로 몸이 잉태되었다는 것과 예수님의 죽은 몸이 다시 살아났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님과 같이 성령이 잉태되고 예수님과 같이 부활이 된다면 지금까지 감추어 있던 예수님의 실체와 비밀들이 모두 확실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에 예비 일에 예수님을 장사하고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 아직 동이 트기 전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간 것을 보고 급히 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알 수 없다고 말하였습니다. 즉 예수님의 시신이 있어야 하는데 갑자기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예언하신 대로 이미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의 말을 들은 베드로와 다른 제자가 무덤으로 함께 달려가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 먼저 무덤에 도착하여 무덤 속은 두려워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데 베드로가 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정돈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왔던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예수님이 없어진 것을 알았으나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성경이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다고 하신 말씀을 아직도 이해를 못 하고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은 죽은 예수님이 3일 만에 다시 부활한다는 것을 믿지도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모르고 누가 예수님의 시신을 무덤에서 가지고 간 것으로 생각하고 허탈한 마음으로 자기 집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삼 년 반 동안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원자로 믿고 따르며 생명의 말씀을 날마다 일용할 양식으로 먹었으나 예수님이 부활하신다는 말씀, 즉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다시 오신다는 말씀을 전혀 모르고 있었고 또한 믿지도 않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0:11-14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푸려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 천사들이 가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가로되 사람이 내 주를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의 서신 것을 보나 예수인지를 알지 못하더라,
해설: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푸려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아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본 두 천사는 사람과 동일하게 볼 수도 있고 대화를 할 수도 있는 천사입니다. 즉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고 있는 천사는 “앙겔로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자, 천사, 등을 말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지금 무덤에 앉아 있는 두 천사는 마리아에게 주님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온 주님의 “사자”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가로되 여자여 어찌하여 우느냐, 가로되 사람이 내 주를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내가 알지 못해 울고 있다고 말합니다. 마리아가 이 말을 하고 뒤로 돌이켜 예수의 서신 것을 보았으나 마리아는 예수를 보면서도 그가 예수인지 알지 못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20:15-18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가로되 주여 당신이 옮겨 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가리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여 하니(이는 선생님이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자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르니라,
해설: 상기의 말씀은 예수께서 부활하시어 무덤에서 나오실 때 예수의 무덤을 지키던 마리아가 부활한 예수를 처음보고 그 모습이 전에 예수님의 모습이 아니라 전혀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부활한 예수를 보고 동산지기로 알고 혹시 당신이 옮겨 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말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죽고 예수가 부활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다른 사람의 몸을 입고 부활하셨는지를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또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 바다에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는데 제자들은 예수를 알아본 자들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요한복음 21:4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인 줄 알지 못하는지라, 이같이 예수께서 다른 사람으로 부횔 했기 때문에 제자들이 아무도 못 알아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몰라본 것은 마리아뿐 만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으로 부활한 그 사람은 누구인가? “다른 사람”으로 부활했다는 것은 “죽은 자들” 안에서 “예수”가 부활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죽은 자”들이란 누구를 말하는가? 마태복음 8:21-22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누구를 “죽은 자”라고 말씀하시는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지금 죽은 부친을 장사하려는 사람들을 “죽은 자”들이라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사람을 장사 지내려 하는 살아 있는 사람들을 “죽은 자”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이들 안에 하나님의 생명이 없기 때문에 “죽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이 말하는 “죽은 자”는 육신이 “죽은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는 살아있으나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자들을 “죽은 자”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전 15:12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요한복음 5:25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이같이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죽은 자”가 예수님의 말씀을 영접함으로 살아났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죽은 자 안”에서 부활했다는 말은 “죽은 자”가 예수의 말씀으로 거듭나 “예수”로 부활했다는 말입니다 때문에 마리아나 제자들이 “죽은 자”가 “예수”로 부활한 예수를 몰라본 것입니다. 마태복음 27:51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들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이 말씀에 성도들의 몸이 많이 일어났다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이 없던 “죽은 자들”이 생명의 말씀으로 “예수”로 부활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은 자”라는 말은 원문에 복수로 되어있기 때문에 “죽은 자들”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혼자 부활하셨다는 말이 아니라 예수님이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여러 명이 함께 부활하여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보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들이 모두 “비사”로 기록된 말씀이라 일일이 설명하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는 더욱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나 제자들이 “다른 사람”으로 부활한 그 사람을 알아본 것은 “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듣고 아! 이 사람이 바로 “예수”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마리아나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몸이 다르기 때문에 몰라보았지만 “그 사람”의 말씀을 듣고 십자가 전의 예수의 말과 똑같은 것을 알고 예수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말씀하시니, 마리아가 제자들에게 가서 내가 주를 보았다 하고 또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전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20:19-23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해설: 안식 후 첫날 저녁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여 있는 곳에 문을 닫아 놓았는데 예수께서 제자들 가운데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은 영체이시기 때문에 문이 닫혔어도 들어오실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부활된 예수님이 육신이 없는 영체라면 사람들이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믿고 있는 부활은 죽은 몸이 다시 사는 것이지 영이 다시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은 “영”이 아니라 “육”이 부활한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인들은 지금도 사도신경을 통해서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다”고 신앙고백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의 육신의 몸이 부활하여 제자들에게 오셨다면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들어오실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의 육신의 몸은 신령체라 문이 잠겨 있어도 들어오실 수 있다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된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부활하기 전에도 죄인이나 더러운 몸이 아니라 거룩하고 신령한 신령체였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령한 영체를 소유하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고 다시 살아서 지금 잠긴 문으로 들어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영은 영이고 육은 육이지 영이 육이 되거나 육이 영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 가운데 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으라고 말씀을 하시며 제자들에게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 가운데 보내는 것은 그동안 예수님이 하셨던 일, 곧 죽은 영혼들을 구원하여 살리기 위해서 보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해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죄인들의 죄를 사해주면 사해질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죄를 사해주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는데 제자들이 어떻게 죄를 사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먼저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받으라는 성령은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으셨던 성령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성령을 제자들이 받는다면 제자들도 죄를 사해줄 수 있는 권한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을 받아 사도가 되었고 그 때부터 죄를 사해주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죄인들의 죄를 사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예수님과 사도들이며 또한 오늘날 성령이 임하여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요한복음 20:24-29 열두 제자 중에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찌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여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해설: 열두 제자 중에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출타하여 제자들과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제자들이 도마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다고 말하니 도마는 내가 예수님의 손에 못 자국을 직접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도마는 이 때문에 오늘날까지 기독교인들에게 의심이 많은 도마로 낙인이 찍혀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보거나 확인하지 않고 무조건 믿는 버릇이 생겨 무조건 믿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것을 믿고 천국 간다는 것도 믿고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도 믿고 기도할 때마다 주시옵소서 말끝마다 주시옵소서, 모든 것을 의심 없이 믿는 것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신앙입니다.
때로는 신앙에 문제가 있거나 말씀을 보다가 이해가 잘 안 되어 목사님을 찾아가 물어도 의심하지 말고 무조건 믿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믿어서 되는 일도 있지만 안 되는 일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일들, 즉 내가 구원을 받은 것이나 천국을 들어갈 수 있다는 것도 무조건 믿으면 되는 것인지 아니면 도마처럼 확인을 해보아야 하는지 어느 편이 옳은지를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으며 주의 일도 열심히 행한 자들을 주님께서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른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보다 세상에서 천국에 갈 것을 의심 없이 믿고 예수님을 열심히 믿은 자들이 지옥문 앞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고 있는 자들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그날 이후 여드레가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을 때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은 닫혀 있는데 예수께서 갑자기 나타나셔서 제자들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하시면서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만져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문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문을 닫아 놓고 있었는데 마술사처럼 제자들 가운데 갑자기 나타나셨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보면서 예수님의 몸은 부활하신 몸으로 “영체”이기 때문이라면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영체”는 눈으로 보는 것은 가능할지 몰라도 손으로 만질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도마가 예수님의 손을 만져보고 도마의 손가락을 못 자국과 창 자국에 넣었다면 예수님의 몸은 “영체”가 아니라 “육체”이며 예수님은 “육체”를 입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진실이시며 사람의 눈을 속이는 마술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몸이 “영체”가 아니라 “육체”라는 것은 누가복음에 확실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24:36-39 이 말을 할 때에 예수께서 친히 그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찌어다 하시니, 저희가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상기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친히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찌어다 하시니, 제자들이 놀라고 무서워하며 예수님을 “영체”(영)로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께서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만져보고 나 예수인 줄 알라고 하시며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몰라 본 것은 예수님께서 “다른 사람의 몸”을 입고 나타나셨기 때문입니다. 무덤을 지키던 마리아가 부활한 예수를 못 알아본 것처럼 예수님이 “다른 사람의 몸”으로 부활했기 때문에 제자들이 못 알아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몸”으로 부활했다는 말은 “죽은 자”들 안에서 즉 “영”이 없는 “혼의 존재”가 생명의 말씀으로 “영의 존재”로 부활했기 때문에 마리아나 제자들이 몰라본 것입니다. 이런 말씀들이 모두 “비사”로 기록된 말씀이라 설명하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려운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 즉 물 위를 걸으시고 풍랑을 잔잔케 하시고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고 오병이어의 기적들 소경, 귀먹어리, 중풍, 문둥병 자, 들을 고쳐주신 것은 모두가 요나의 표적과 같이 “비유와 비사”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 음란하고 패역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나는 요나의 표적밖에 행한 것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손을 만져보고 손가락을 넣어 본 후에 예수님은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도마의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이 더욱 복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도마의 사건을 보면서 모든 것을 무조건 믿기만 해야 하는지 아니면 도마처럼 확인하고 믿어야 하는지를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천국은 나더러 주여, 주여 하며 믿기만 하는 자들이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들어간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20:30-31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해설: 예수님은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유대 땅에 오셨지만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이단자로 배척하고 죽이기까지 했으며 오직 12제자들과 함께 거하시면서 삼 년 동안 가르치시며 표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나 행하신 영적인 표적들은 대부분이 예수님의 제자들을 위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나 표적들은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해하기는 물론 듣기조차 힘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는 말을 듣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다고 말씀하시면서 듣는 너희 제자들에게는 복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 지금 “너희”라고 말씀하시는 “너희”는 하나님과 예수를 믿는 모든 백성들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지금 “제자들”에게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였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한 것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한 너희 “제자들”로 믿고 그 “이름” 곧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떠나시면서 유언처럼 이런 말씀을 하시는 목적은 첫째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게 하려는 것이요 둘째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힘입어 하나님의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을 믿기는 믿었으나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100% 믿지 않았다는 것과 예수님의 “제자들”이 아직도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고 입으로 시인만 하면 믿는 즉시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천국으로 들어간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것은 자유이나 진정으로 구원을 받고 천국을 들어가려면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구원의 과정을 한 번쯤은 확인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생명이 좌우되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