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 야 말씀 해설

이 사 야 19장 해설

제라늄A 2024. 5. 19. 10:23

이사야 19:1~4 애굽에 관한 경고라, 보라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시리니 애굽의 우상들이 그 앞에서 떨겠고 애굽인의 마음이 그 속에서 녹으리로다그가 애굽인을 격동하사 애굽인을 치게 하시리니 그들이 각기 형제를 치며 각기 이웃을 칠 것이요, 성읍이 성읍을 치며 나라가 나라를 칠 것이며, 애굽인의 정신이 그 속에서 쇠약할 것이요, 그 도모는 그의 파하신 바가 되리니, 그들이 우상과 마술사와 신접한 자와 요술객에게 물으리로다그가 애굽인을 잔인한 군주의 손에 붙이시리니 포학한 왕이 그들을 치리하리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해설애굽은 하나님의 이름이 없는 세상 사람들입니다. 즉 기독교인 외의 여타 종교인들과 무교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애굽인도 하나님이 세우신 적그리스도 시대를 당면하여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애굽인을 잔인한 군주, 즉 적그리스도의 손에 붙이신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자칭 메시야집단에 하나님의 백성만 교적을 옮겨가거나 교세가 굴복 당함이 아닙니다. 세상의 여타 교단의 교인들에서부터 무교 자들까지 모조리 유혹당해 입교하거나 그들의 권세에 압도당하고 있는데, 그것이 곧 포악한 왕이 애굽인을 치는 일이 됩니다. 로마시대에 모든 길은 로마로 났듯이, 적그리스도시대에 세상의 모든 분야의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적그리스도에게로 유인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사야 19:5~10 바닷물이 없어지겠고 강이 잦아서 마르겠고 강들에서는 악취가 나겠고 애굽 시냇물은 줄어들고 마르므로 달과 갈이 시들겠으며 나일 가까운 곳 나일 언덕의 초장과 나일강 가까운 곡식 밭이 다 말라서 날아 없어질 것이며, 어부들은 탄식하며 무릇 나일강에 낚시를 던지는 자는 슬퍼하며 물에 그물을 치는 자는 피곤할 것이며, 세마포를 만드는 자와 백목을 짜는 자들이 수치를 당할 것이며, 애굽의 기둥이 부숴지고 품꾼들이 다 마음에 근심하리라,

해설: 애굽이 자랑하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교육계의 학자들, 지식인들 등 지도자들에서부터 일반 백성들까지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고르게 미혹당하는 세력의 신은 그 악명을 하늘높이 날리며 창궐하는 자칭 메시야들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자칭 메시야들은 세상 한가운데에 군림한 군주이고, 애굽의 모든 것들은 그 아래에 부림 받는 노비와 같기 때문인데 그것이 곧 본문에 나열된 황폐함의 기록입니다. 바닷물이 없어지겠고 악취가 나겠고 줄어들고 마르고 시들며 곡식밭이 다 말라서 없어질 것이며, 어부들이 탄식하고 슬퍼하며 세마포를 만드는 자는 수치를 당하며 애굽의 기둥이 무너지리라 는 등입니다.

이사야 19:11~15 소안의 방백은 지극히 어리석었고 바로의 가장 지혜로운 모사의 모략은 우준하여 졌으니, 너희가 어떻게 바로에게 이르기를 나는 지혜로운 자들의 자손이라 나는 옛 왕들의 후예라 할 수 있으랴, 너의 지혜로운 자가 어디 있느냐,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께서 애굽에 대하여 정하신 뜻을 알 것이요 곧 네게 고할 것이니라, 소안의 방백들은 어리석었고 놉의 방백들은 미혹되었도다그들은 애굽 지파들의 모퉁이 돌이어늘 애굽으로 그릇가게 하였도다여호와께서 그 가운데 사특한 마음을 섞으셨으므로 그들이 애굽으로 매사에 잘못 가게 함이 취한 자가 토하면서 비틀거림 같게 하였으니 애굽에서 머리나 꼬리나 종려나무 가지나 갈대나 아무 할 일이 없으리라,

해설: 옛적에 하나님이 애굽제국 시절에 애굽의 통치자로 세운 자는 바로였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부상한 세력의 신, 적그리스도가 애굽까지 휩쓸어 식민지화했습니다. 때문에 소안(소안은 애굽의 성읍이므로 곧 애굽을 뜻함)의 방백은 지극히 어리석었고 바로의 가장 지혜로운 모사의 모략은 우준하여 졌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바로에게 신하 된 자로서 할 말이 없을 것이라 했으며 그들은 애굽으로 잘못 가게 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머리나 꼬리나 종려나뭇가지나 갈대나 아무 할 일이 없을 것이라 했는데, 이는 애굽은 애굽의 자리를 잃고 엉뚱하게 사특한 길로 접어들었으므로 애굽의 자랑하던 것들, 즉 큰 자에서 작은 자들까지 모두모두 끝장났다는 말씀입니다.

이사야 19:16~17 그 날에 애굽인이 부녀와 같을 것이라,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흔드시는 손이 그 위에 흔들림을 인하여 떨며 두려워할 것이며, 유다의 땅은 애굽의 두려움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애굽에 대하여 정하신 모략을 인함이라, 그 소문을 듣는 자마다 떨리라, 그 날에 애굽인이 부녀와 같을 것이라 했다부녀는 물리적으로 상대방을 막아낼 힘이 없는 자이므로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될 것이란 말씀이다그래서 떨며 두려워할 뿐이다.

해설: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유다의 땅은 애굽의 두려움이 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애굽에 대하여 정하신 모략을 인함이라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적그리스도만 애굽의 두려움으로 끝났다면 그것이 애굽을 위한 아무 경영도 안 될 것이며 특이하지도 아니할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의 땅은 애굽의 두려움이 된다고 했으며 그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애굽에 대한 모략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애굽에 대한 모략이란 결국 애굽도 구원의 대상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언제 애굽도 구원의 대상이 되는가? 이때는 적 그리스도시대를 끝내자마자 예수님의 천년통치 때가 됩니다. 그리고 두려움이 된다는 뜻은 무엇인가? 두려움이란 상대방이 자기보다 더 우위임을 느낄 때 일어나는 감정으로서 적그리스도가 애굽의 두려움이 되는 일은 사로잡혀가는 일만 되지만, 유다가 애굽의 두려움이 되는 일은 그 성격이 다릅니다.

유다는 하나님이 계시는 백성이므로 유다가 애굽의 두려움이 된다는 말씀은 애굽에도 결국 진리의 새 말씀이 들어감을 뜻합니다. 또 그 진리의 말씀은 애굽을 꾸짖는 말씀이자 동시에 구원의 말씀이 되기 때문에 두려움이 된다고 했으며 모략이 된다고 한 것입니다. 천년통치 때는 하나님을 모르던 모든 애굽사람들도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으로 교육을 받게 될 것이므로 그들에게 그 말씀이 함부로 무시할 수 없는 두려움이 되며, 따라서 듣고 구원받게 될 터이므로 모략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애굽의 두려움이 되는 유다 땅은 택한 자 반열이 됩니다.

이사야 19:18 그 날에 애굽 땅에 가나안 방언을 말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는 다섯 성읍이 있을 것이며 그 중 하나를 장망성이라 칭하리라,

해설: 그 날에 애굽 땅에 가나안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께 맹세하는 다섯 성읍이 있을 것이며 그중에 하나를 장망성이라 함은 무슨 뜻인가? 다섯 성읍은 무엇이며 그중에 하나 장망성은 무엇인가? 애굽은 구원의 대상임엔 틀림없으나 이 시대 거듭난 자에는 들지 못하고, 천년통치를 통해 허다한 백성으로 구원받을 기회가 남아 있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천년통치를 통해 만백성으로 구원받을 애굽은 모두 초등학문의 기독교인들과 여타 종교인들과 무교 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천년통치 때는 거듭난 자들 외의 나머지 모든 세상 사람들이 애굽으로 호칭되기 때문입니다. 초등학문의 기독교인은 뱀을 따라 뱀을 섬기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줄 알고 하나님께 맹세하던 자들입니다. 그리고 가나안은 사단의 혈통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이 가나안방언을 말하며 하나님께 맹세하는 자들이 됩니다.

즉 성경은 비유비사인데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읽고 믿었다거나 혹은 성경을 자의적 해석으로 왜곡해서 믿었다는 그 점이 가나안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께 맹세한 것이 됩니다. 그리고 나머지 여타 종교인들과 무교 자들도 천년통치 때 구원받기 위해서 성경을 필히 배워야 하는데, 누구라도 첫출발은 성경을 문자대로 읽고 이해하는 성경필독의 그 초보로 시작하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애굽 땅에 가나안 방언을 말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는 다섯 성읍이 있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그것이 다섯 성읍이며 그중 하나는 장망성이라 했는가? 다섯 중에 하나를 제하면 넷입니다. 그리고 하나는 장망성인데 장망성은 멸망성이라는 뜻이므로 넷은 그 상대적인 생명의 뜻을 담고 있는 숫자입니다. 그러므로 그 날에 애굽이라고 하는 다섯 성읍은 구원의 대상임엔 틀림없는 초보이지만, 그 초보자 모두가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반드시 그 중에 멸망으로 들어갈 자도 있다 함입니다. 끝내 돌아오지 않을 진흙 뻘이 있다고 했으며, 천년통치 끝에 사단이 잠시 무저갱에서 놓여나와서 사람들을 시험할 때 미혹되어 사단과 함께 영원한 멸망으로 들어간다고 알려주고 있는데, 그게 바로 장망성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초보자 다섯 중에 넷이라는 생명의 숫자는 창세기 1장 창조 넷째 날에 나오는 사시(四時)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예언시대에서 율법과 구원, 실상시대에서 율법과 구원, 이렇게 사시입니다. 구약은 예언시대이며 신약의 예수와 오늘의 예수는 그 예언을 이루는 실상입니다. 성경은 이러한 창조의 사시가 빼곡히 기록되었고 그 사시는 성경 흐름의 요체가 되기 때문에 사시를 아는 것은 성경의 진리를 깨닫는 일이요, 진리를 깨닫는 일은 곧 장망 성 외 생명을 뜻하는 네 성읍의 소유자임을 뜻합니다. 사시에 대해 잠시 부연설명을 한다면 사람들은 지금까지 이시(二時)밖에 몰랐기 때문에 성경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초보였습니다. 유식하다고 한 사도바울조차도 이시만 주장했습니다. 즉 구약은 율법이고 신약의 예수님의 복음은 곧장 구원이라고 피력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초림주의 복음은 구원이 아니다. 초림주의 복음이야말로 비유이므로 율법입니다. 성경의 비유를 낱낱이 풀어주신 오늘날의 예수가 구원입니다.

그리고 구약은 그 초, 재림 주에 대한 예표와 상징의 예언이므로 총사시인 것입니다. 이러한 성경의 사시를 분명히 인식할 때 성경은 명쾌하게 풀어지는 것이며 그것이 마침내 생명에 이르게 함을 알아야 합니다. 이처럼 여기서 넷이라는 숫자는 성경의 4시를 의미하기 때문에, 다섯 성읍 중에 멸망의 장망 성을 제외한, 생명의 네 성읍을 뜻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19:19-20 그 날에 애굽 땅 중앙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겠고 그 변경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기둥이 있을 것이요, 이것이 애굽 땅에서 만군의 여호와를 위하여 표적과 증거가 되리니, 이는 그들이 그 압박하는 자의 연고로 여호와께 부르짖겠고, 여호와께서는 한 구원자보호자를 보내사 그들을 건지실 것임이라,

해설: 그 날에 애굽땅 중앙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겠다 했는데, 이는 18절에 언급된 다섯 성읍의 초보자들의 제단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아직 구원의 몸도, 결정적인 멸망으로 확정된 몸도 아니므로 다만 사망의 압박 하에 있습니다. 사망의 압박 하에 있는 몸이므로 그들이 그 압박하는 자의 연고로 여호와께 부르짖는 제단이며 여호와께서는 그 때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분입니다.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한 구원자, 보호자를 보내어 그들을 건지실 것이라 했습니다. 그들에게 한 구원자가 보내어진다는 것은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기회가 천년통치 끝에 약속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사야 19:21~23 여호와께서 자기를 애굽에 알게 하시리니 그 날에 애굽인이 여호와를 알고 제물과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경배할 것이요, 여호와께 서원하고 그대로 행하리라,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 것이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인고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를 고쳐주시리라, 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해설그 날에 애굽이 여호와를 알고 제물과 예물을 드리고 경배할 것이라 했습니다. 천년왕국에서는 마침내 온 세계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제단을 쌓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는 애굽을 치실 것이라고 하시고 치시고는 고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진리에 도달하는 길이 하나님이 우리의 어둠을 꾸짖는 일임과 동시에 그 꾸짖음을 통해 구원을 이루는 양면성인 까닭에서 입니다. 그러므로 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했습니다.

천년통치 때 애굽사람은 기독교인과 여타 종교인과 무교자들로 구성되어 있고, 앗수르는 그들을 모두 미혹했던 적그리스도집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엔 이들 모두가 그리스도의 의롭고 공평한 통치를 받는 구원대상의 대열에 합류한 공동체입니다. 그 날에는 애굽과 앗수르가 서로 다투는 이질적인 요소가 전혀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한 세계 한 정부의 통치아래 누구라도 진리의 말씀을 듣고 구원받아야 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19:24~25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과 앗수르로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을 주어 가라사대 나의 백성 애굽이여나의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나의 산업 이스라엘이여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니라,

해설: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과 앗수르로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날에 이스라엘은 천국 통치체이고, 애굽은 거듭난 자들 외의 세상만민이고, 앗수르는 적그리스도집단을 뜻합니다. 애굽과 앗수르는 구원대상의 공동체로서 천국 통치체의 다스림을 받는 자들이므로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애굽은 가장 넓은 범위의 범세계적인 자들이므로 나의 백성 애굽이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앗수르는 하나님이 사단을 잡기 위해 전략적으로 세운 자들이므로 나의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거듭난 자들은 만민을 다스리는 천국 통치 체이므로 나의 산업 이스라엘이여! 라고 하셨습니다. 셋이 모두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셋의 출발은 서로 대치해서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갈등구조로 지어졌으나, 그 완성의 결과는 이렇게 구원으로 마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만인구원의 경영이며 모략이었던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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