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 야 말씀 해설

이 사 야 42장 해설

제라늄A 2024. 6. 16. 12:43

이사야 42:1~4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나의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신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해설: 예수님이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는 말씀은 무슨 뜻인가? 예수는 중동 땅의 유대교단에 오셔서 유대교의 교리를 가르치신 분이 아니고, 새 말씀인 복음으로 모든 인류에게 가르치셨다는 의미에서 그는 이방에 공의를 베푸신 분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극동 한국의 복음제단에 오셔서 복음제단의 교리를 가르치시는 분이 아니고 자기의 새 말씀으로 세계인을 가르치시게 되기 때문에 그는 이방에 공의를 베풀리라 하신 것이다. 이처럼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예나 지금이나 발전적으로 창조를 하시는 분이십니다. 
즉 초림 때는 구약백성을 복음백성으로 업그레이드시켜 주신 분이므로 유월절 어린양이며, 재림 때는 복음백성을 새 말씀으로 택한 자 144000을 불러내시고 모든 세계거민을 천국백성으로 끌어올려 주실 분이시므로 유월절 어린양입니다. 유월절 어린양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희생양이십니다. 어린양이 초림 때는 육체의 피를 흘려주시고 재림 때는 말씀의 피를 흘려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죄를 없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육체의 피를 흘려주신 초림 주는 우리 죄를 진정 속할 수 없으므로 율법의 피가 되지만, 재림 주는 성경을 낱낱이 풀어내신 말씀의 피를 흘려주심으로써 하나님 모르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는 진정한 구원의 피가 됩니다. 이처럼 재림 주는 하나님을 알려주시는 말씀의 피를 흘려주심에도 불구하고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로 거리에 들리게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푼다고 했습니다. 말씀의 피를 흘려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명백히 알게 하시는데 왜 목소리를 내지 아니했다고 하는가?
이는 기존교단의 지도자들은 교만하게 자신을 내세우는데 기쁨을 삼으나 재림 주는 오직 조용히 말씀을 전파하시는 분으로서 세상의 지도자 같은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로 그 목소리를 작게 하시는가? 그는 성경을 풀어주시되 직접 전하시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을 시켜 대신 전하도록 하시기 때문인데 이점에 대해 좀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예수님 한분(초림 주)을 믿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천국 간다가 전부였습니다. 죽어서 하늘천국에 가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많은 눈물 콧물을 흘리며 돈독한(?) 신앙수업을 받아왔던가. 자나 깨나 잘 믿고 천국 가는 일이 최대의 소망이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입니다. 그토록 소망하던 천국 가는 기회가 마침내 돌아오면, 즉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누구나 그 죽음을 슬퍼하고 저주했습니다. 죽어서 천국 가는 일이 믿음의 전부였는데 막상 죽음이 닥치면 그것을 너무나 두려워했으니 이만저만 모순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제 그 모순된 신앙부터 점검하며 뉘우쳐야 하는데, 재림주가 왜 목소리를 직접 내시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을 통해 대신 전하게 하시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초림 주와 재림 주는 인격적으로 동일한 한분 예수님입니다. 초림 주는 이천 년 전에 최초로 오셨던 분인데, 그 분이 오늘날 다시 오신다고 했으므로 이름 하여 재림 주라고 하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초림 주와 재림 주는 하시는 일이 완전히 다릅니다. 즉 인류의 눈높이로 우리를 대해 주셨습니다. 
옛적에 인류는 문맹이므로 하나님을 유치부의 기복신앙으로 알려주셨으나, 그런 수준 낮은 신앙으로는 천국(죽어서 가는 천국 아님)을 아직 이룰 수 없으므로 그냥 떠나가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말일에 다시 오신다고 하셨는데, 오늘날 마침내 높으신 하나님을 형이상학적 진리의 말씀으로 알려주시고 지상천국도 이루시게 됩니다. 위에서 지적한 대로 천국이란 죽어서 가는 두려운 천국이 아니고 우리 육체가 살아서 맞이할 영원한 지상천국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이란 하나님을 온전히 아는 사람들만 들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을 형이상학적 진리의 말씀으로 알려주시는 전도의 일을 예수님이 직접 하시지 않고, 예수님이 보내신 심부름꾼이 대신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천국비유에서도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진리의 말씀을 직접 증거 하시지 않고 다른 형제를 시켜서 대신 전하게 하시기 때문에 계시록에서도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대신 전하는 자)이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계19:10). 그리고 본문에서도 그(재림 주)는 그 목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니 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재림 주는 진리의 말씀을 풀어주시기만 하고 지극히 작은 형제를 통해 대신 전하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니, 이 시대에 재림 주는 고사하더라도 기라성 같은 신학자들과 변사들과 목사들과 유능한 지도자들이 얼마든지 많음에도 불구하고 왜 하필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지극히 작은 자를 내세워 예수님의 말씀을 대신 증거 하게 하실까? 이는 인간의 정직성을 저울에 달아보시고 함량미달인 자들을 골라내시기 위함입니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자일 지라도 그가 하는 말이 옳다면 들어야 할 것이고, 아무리 잘난 사람의 말이라도 그가 하는 말이 옳지 않다면 듣지 아니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흔히 사람을 외양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마음이 정직한 의인들만을 부르시기 위해 마지막 때에 그런 방법을 도입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42:5~9 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 땅과 그 소산을 베푸시며 땅 위의 백성에게 호흡을 주시며 땅에 행하는 자에게 신을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 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었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고하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이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  
해설: 예수님이 초림 때는 유대교단을 통해 오셨으나 유대 교리를 다시 가르치시지 아니하고 새 말씀의 복음으로 가르치셨으며, 예수님이 재림 때는 그 복음 제단을 통해 오셨으나 복음제단교리를 다시 가르치시지 아니하고 새 말씀으로 가르치시는 분이므로 예나 지금이나 이방의 빛이십니다. 언제나 새롭게 빛 밝은 진리의 빛으로 오시는 분이므로 소경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옥에서 이끌어내며 흑암에 처한 자를 간에서 나오게 하리라 했습니다. 
이 일을 이루실 분은 하나님이 의로 세우신 독생자 예수님이며 예수님은 하나님의 이름(본성)으로 오셔서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분이다. 즉 예수님만이 눈에 보이게 오신 인간하나님이다. 때문에 하나님은 이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내 찬송을 우상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었느니라, 이제 내가 새 일을 고하노라, 그 일이 시작되기 전이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옛적부터 창조 프로그램(창1-3장)을 세워서 예언을 하셨고, 그 예언대로 예수님은 오셔서 구원의 역사를 성취하시기 때문에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었다고 하셨으며, 또 그 일이 시작되기 전이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용의주도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알아보지 못하고 구원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책임이며 우리의 악한 마음 때문인 것입니다. 
이사야 42:10~17 항해하는 자와 바다 가운데 만물과 섬들과 그 거민들아 여호와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땅 끝에서부터 찬송하라, 광야와 거기 있는 성읍들과 게달 사람의 거하는 촌락들은 소리를 높이라, 셀라의 거민들은 노래하며 산꼭대기에서 즐거이 부르라,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며 섬들 중에서 그의 찬송을 선전할 찌어다. 여호와께서 용사 같이 나가시며 전사 같이 분발하여 외쳐 크게 부르시며 그 대적을 크게 치 시리로다. 내가 오래 동안 고요히 하며 잠잠하여 참았으나 이제는 내가 해산하는 여인 같이 부르짖으리니 숨이 차서 심히 헐떡일 것이라,  
내가 큰 산과 작은 산을 황무케 하며 그 초목을 마르게 하며 강들로 섬이 되게 하며 못 들을 마르게 할 것이며, 내가 소경을 그들의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끌며 그들의 알지 못하는 첩경으로 인도하며 흑암으로 그 앞에 광명이 되게 하며 굽은 데를 곧게 할 것이라, 내가 이 일을 행하여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리니, 조각한 우상을 의뢰하며 부어 만든 우상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는 자는 물리침을 받아 크게 수치를 당하리라,  
해설: 만물은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그 중에 인간은 하나님과 친구관계가 될 만큼 하나님을 온전히 아는데 까지 창조되어져야 하는 하나님형상의 사람입니다. 즉 인간이 하나님이요 하나님이 인간으로 되어야 하는 신인합일에까지 이르도록 창조를 받아야 하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마침이며 인간창조의 완성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만물과 달리 특별히 하나님을 아는 심령창조를 받는 대상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심령창조에서 하나님이 처음엔 인간 스스로 하나님을 알아보는 지혜가 있는지 없는지 시험하시기 위해 말씀을 비유로 감추시고 그 비유를 풀어보라는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을 스스로 찾아내야 하는 율법시대를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스스로 도무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죄인임이 판명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이 간섭하실 때가 된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비유로 감추신 말씀을 풀어서 온전히 알려주시고 하나님형상의 사람으로 창조를 마치신 후에 영원한 생명을 주심으로써, 하나님이 우리와 친구가 되어주실 때가 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용사 같이 나가시며 전사 같이 분발하여 외쳐 크게 부르시며 그 대적을 크게 치시며, 하나님이 그동안 잠잠하여 참았으나 이제는 내가 해산하는 여인 같이 부르짖으리니 숨이 차서 심히 헐떡일 것이라 하신 것은 곧 하나님이 우리가 이루지 못한 창조의 일을 하시리라는 것입니다. 창조란 인간생명의 창조입니다. 우리의 죽고 있는 몸을 영생체로 만드는 창조이므로 하나님이 해산하는 여인같이 부르짖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창조는 흑암에서 빛으로의 창조이므로, 소경과 흑암에 거한 대적을 치신다고 하신 것이며, 인간이 만든 우상을 부서뜨리고 자랑하는 산들을 황무케 하신다고 하시며 오직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42:18~22 너희 귀머거리들아 들으라, 너희 소경들아 밝히 보라, 소경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누가 나의 보내는 나의 사자 같이 귀머거리겠느냐, 누가 나와 친한 자 같이 소경이겠느냐, 누가 여호와의 종 같이 소경이겠느냐, 네가 많은 것을 볼 찌라도 유의치 아니하며 귀는 밝을찌라도 듣지 아니하는 도다. 여호와께서 자기의 의로우심을 인하여 기쁨으로 그 교훈을 크게 하며 존귀케 하려 하셨으나, 이 백성이 도적맞으며 탈취를 당하며 다 굴속에 잡히며 옥에 갇히도다. 노략을 당하되 구할 자가 없고 탈취를 당하되 도로 주라 할 자가 없도다
해설: 말씀을 비유로 감추신 율법시대에 인간은 아무도 하나님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대변자요 충성된 종이라고 하는 목사도 신학박사도 신학교수도 그 어떤 교단의 우두머리 원로 지도자들도 깨닫지 못하는 흑암임을 충분히 입증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연후에 오늘날 예수가 오셔서 구원시대를 열어 말씀을 풀어주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듣지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본문에서 너희 귀머거리들아 들으라, 너희 소경들아 밝히 보라, 소경이 누구냐. 내 종이 아니냐,  
누가 나의 보내는 나의 사자 같이 귀먹어리겠느냐, 누가 나와 친한 자 같이 소경이겠느냐, 누가 여호와의 종 같이 소경이겠느냐, 네가 많은 것을 볼 찌라도 유의치 아니하며 귀는 밝을 찌라도 듣지 아니하는 도다. 여호와께서 자기의 의로우심을 인하여 기쁨으로 그 교훈을 크게 하며 존귀케 하려 하셨으나 이 백성이 도적맞으며 탈취를 당하며 다 굴속에 잡히며 옥에 갇히도다. 노략을 당하되 구할 자가 없고 탈취를 당하되 도로 주라 할 자가 없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이사야 42:23~25 너희 중에 누가 이 일에 귀를 기울이겠느냐, 누가 장래사를 삼가 듣겠느냐, 야곱으로 탈취를 당케 하신 자가 누구냐, 이스라엘을 도적에게 붙이신 자가 누구냐, 여호와가 아니시냐, 우리가 그에게 범죄 하였도다. 백성들이 그 길로 행치 아니하며 그 율법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맹렬한 진노와 전쟁의 위력으로 이스라엘에게 베푸시매 그 사방으로 불 붙듯하나 깨닫지 못하며 몸이 타나 마음에 두지 아니하는 도다. 
해설: 하나님은 계속 어리석고 교만한 자기 백성을 꾸짖으십니다. 스스로 깨닫지도 못하고 예수가 풀어주신 말씀을 듣지도 아니하니 어떻게 하겠단 말인가? 이래도 깨닫지 못하고 저래도 깨닫지 못하고 불순종의 길을 거듭 걷고 있으니 답답할 노릇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도 그동안의 경위를 고백하시기를 "야곱으로 탈취를 당케 하신 자가 누구냐? 이스라엘을 도적에게 붙이신 자가 누구냐? 여호와가 아니시냐? 우리가 그에게 범죄 하였고. 그 율법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맹렬한 진노로, 사방으로 불붙듯 하나 깨닫지 못하며 몸이 타나 마음에 두지 아니한다라고, 하십니다. 
즉 이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키지 못할 율법을 주시고, 우리가 율법을 범하므로 그 형벌로 적그리스도에게 붙여져 복역하고, 그토록 고된 목마름의 훈련 끝에, 마지막 오늘날 예수의 단비 같은 말씀을 주심에도 불구하고, 왜 너희는 그토록 계속 깨닫지 못하는 소경이고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인가라는, 탄식의 말씀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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