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 야 말씀 해설

이 사 야 46장 해설

제라늄A 2024. 6. 18. 11:28

이사야 46:1~4 벨은 엎드러졌고 느보는 구부러졌도다. 그들의 우상들은 짐승과 가축에게 실리 웠으니 너희가 떠메고 다니던 그것은 피곤한 짐승의 무거운 짐이 되었도다. 그들은 구부러졌고 그들은 일제히 엎드러졌으므로 그 짐을 구하여 내지 못하고 자기도 잡혀 갔느니라, 야곱 집이여 이스라엘 집의 남은 모든 자여 나를 들을 찌어다. 배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품기운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안을 것이요 품을 것이요 구하여 내리라,  
해설: 벨은 바벨론 사람들이 섬기는 주신이며 바알신종교의 신이라면, 느보는 바벨론 사람들이 의존하여 사는 학문의 신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벨과 느보는 둘 다 바벨론의 신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바벨론은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옮겨지기 직전의 부패한 처음하늘과 처음 땅이 된다. 즉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오늘의 복음화세계가 바벨론입니다. 이 바벨론을 계시록에서는 음녀라고 하는데, 이는 그만큼 우상이 극심한 부패한 세계이며 그 영적 수준이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짐승과 가축들이 우글거리는 황무지임을 뜻합니다. 
이 바벨론에서 하나님은 택한 백성 144000을 불러내시는 일을 시작으로 하여 천국을 건설하시기로 뜻을 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상단에서 벨은 엎드러졌고 느보는 구부러졌도다, 그들의 우상들은 짐승과 가축에게 실리 웠으니 너희가 떠메고 다니던 그것은 피곤한 짐승의 무거운 짐이 되었도다. 그들은 구부러졌고 그들은 일제히 엎드러졌으므로 그 짐을 구하여 내지 못하고 자기도 잡혀 갔느니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엎어뜨림은 그들을 아주 멸망시키고자 함이 아니고 그들을 고쳐서 다시 새롭게 천국백성으로 옮기는 과정이므로 또 이어지는 말씀은 "야곱 집이여 이스라엘 집의 남은 모든 자여 나를 들을 찌어다. 배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안겼고 태에서 남으로부터 내게 품기운 너희여 너희가 노년에 이르기까지 내가 그리하겠고 백발이 되기까지 내가 너희를 품을 것이라, 내가 지었은즉 안을 것이요 품을 것이요 구하여 내리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최초에 우리를 애급(하나님을 모르는 흙으로 지어진 인간)으로 지으시고, 그 다음에 초림주의 복음백성(죄인임을 입증키 위한 율법백성)으로 지으시고, 그 다음에 재림주의 진리의 말씀으로 새롭게 지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하나님의 품속의 자녀로 구원에 이르게 하시기까지 하나님은 창조의 일을 쉬지 아니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사야 46:5~8 너희가 나를 누구에 비기며 누구와 짝하며 누구와 비교하여 서로 같다 하겠느냐, 사람들이 주머니에서 금을 쏟아 내며 은을 저울에 달아 장색에게 주고, 그것으로 신을 만들게 하고, 그것에게 엎드려 경배하고, 그것을 들어 어깨에 메어다가 그의 처소에 두면 그것이 서서 있고 거기서 능히 움직이지 못하며, 그에게 부르짖어도 능히 응답지 못하며, 고난에서 구하여 내지도 못하느니라, 너희 패역한 자 들아 이 일을 기억하고 장부가 되라,  
해설: 이 일을 다시 생각하라, 인류의 유아기에서 완성기까지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시고 안으시고 품으시는 창조주이십니다. 최종적인 완성은 영생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지금까지 낳고 죽으며 살아온 사망세상은 모두 인류미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머지않는 장래에 우리는 영생에 진입하게 되는데 그 때는 인간창조완성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모든 일을 베푸시는 알파와 오메가 하나님을 누구와 비교하겠는가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떤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가? 
우리가 정교하게 공들여 만든 어느 우상에게 엎드려 경배한다고 해도 그것이 그 자리에서 한 발 자욱도 스스로는 움직이지 못하고 부르짖어도 대답 한마디 못하는 우상을 섬기는 일이니 한심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배하는 복음은 성경문자를 그대로 읽고 믿는 비유이므로 그것이 곧 대답 한마디 해주지 않는 우상입니다. 너희 패역한 자들은 이 일을 기억하고 장부가 되고 이 일을 다시 생각해 보라고 당부하십니다. 
이사야 46:9~13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내가 동방에서 독수리를 부르며 먼 나라에서 나의 모략을 이룰 사람을 부를 것이라, 내가 말하였은즉 정녕 이룰 것이요 경영하였은즉 정녕 행하리라, 마음이 완악하여 의에서 멀리 떠난 너희여 나를 들으라, 내가 나의 의를 가깝게 할 것인즉 상거가 멀지 아니하니 나의 구원이 지체치 아니할 것이라, 내가 나의 영광인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원을 시온에 베풀리라,  
해설: 하나님은 우리의 오늘을 창세기의 창조기사로 기록해 놓으시고 옛적부터 보이셨으므로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신 분입니다. 종말이란 새 하늘과 새 땅을 세우시기 위해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을 폐하시는 일인데, 없어질 세상은 초림 주에 의한 오늘의 복음화세계까지이고, 다시 세워질 새 하늘과 새 땅은 재림 주에 의한 지상천국입니다. 
이러한 시대 말에 하나님의 모략을 이룰 사람, 즉 재림 주를 동방에서 부르며 먼 나라에서 부르리라 했는데, 그곳은 한국이다. 동방과 먼 나라는 땅 끝, 극동한국이기 때문이다. 복음의 씨는 중동 땅에서부터 뿌려지기 시작해서 이천 년이 흐른 말일에 한국에서 그 결실을 맺게 됩니다. 즉 중동 이스라엘은 천국의 시작이고, 극동 한국은 천국의 완성이 되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왜 마음이 완악하다고 하시는가? 
복음의 씨가 땅에 떨어졌다면 그것은 반드시 썩어야 그로부터 새싹이 나와서 자라나 결실을 맺게 되는데, 우리가 받은 복음의 씨가 죽지 않고 여전히 복음의 씨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즉 오늘의 재림주가 주시는 진리말씀으로 거듭나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리하지 않고 옛것에 그대로 고집 세게 머물러 있기 때문에 완악한 것입니다. 사람은 한번 죽는 것이 정한 이치라고 하셨듯이, 내 복음생명에서 반드시 한번 죽어야 하는 내 십자가의 피 흘림이 있어야 그로부터 부활을 받게 되는데, 우리는 죽기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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