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 야 말씀 해설

이 사 야 57장 해설

제라늄A 2024. 6. 29. 05:56

이사야 57:1~2 의인이 죽을 찌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자비한 자들이 취하여 감을 입을 찌라도 그 의인은 화액 전에 취하여 감을 입은 것인 줄로 깨닫는 자가 없도다. 그는 평안에 들어갔나니 무릇 정로로 행하는 자는 자기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느니라,  
해설: 하나님은 신령한 영체고 우리는 육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육체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육체 안의 영을 하나님을 닮은 신령한 영체로 짓는, 하나님 형상의 사람들로 완성시키고자 하는 게 창조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알려주는 일도, 우리를 알려주는 일도 성경은 신령한 형이상학적으로 기록을 했어야 마땅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참 뜻을 비유 속에 감추기 위해 형이상학을 형이하학으로 기록한 것이므로 죽음도 육적 죽음 한 가지로 기록케 했습니다. 즉 눈에 보이는 형이하학의 죽음 하나로 기록했는데, 그 죽음은 오늘에 와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의 죽음(영적죽음)으로 뜻풀이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성경해석이 됩니다. 의인이 죽을 찌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자비한 자들이 취하여 감을 입을 찌라도 그 의인은 화액 전에 취하여 감을 입은 것인 줄로 깨닫는 자가 없다고 했는데, 이 죽임이 과거 성경기록시대는 육적 죽음임이 틀림없으나 오늘날엔 영적 죽음으로 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의 영적 죽음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기독교계열은 초림주의 복음백성, 적그리스도, 재림주의 제단, 이렇게 모두 3개 제단이 있는데, 복음백성과 적그리스도집단은 그들의 비 진리의 생명에서 죽고, 재림주의 진리의 말씀으로 거듭나야 마땅합니다. 그래야만 그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정로로 행하는 의인이며 자기들의 침상에서 편히 쉬는 자비한 자가 됩니다. 
그러나 만일 복음백성이나 적그리스도집단이나, 그들 중에 누군가 자기들의 비 진리의 생명에서 죽고 재림주의 진리의 말씀으로 거듭나고 있다면, 즉 하나님께 데려감을 받았다면 사람들은 하나님께 데려감을 깨닫지 못하고 그들이 저주받은 악인인 줄 알며 화액을 당한 줄로 잘못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반대로 그들은 복음제단이나 적그리스도집단에서 화액을 당하기 전에, 생명의 재림 주께 옮겨짐을 받은 의인이며, 자비함을 받은 자라는 말씀입니다. 
이사야 57:3~6 무녀의 자식, 간음 자와 음녀의 씨 너희는 가까이 오라, 너희가 누구를 희롱하느냐, 누구를 향하여 입을 크게 벌리며 혀를 내미느냐. 너희는 패역의 자식, 궤휼의 종류가 아니냐. 너희가 상수리나무 사이, 모든 푸른 나무 아래서 음욕을 피우며 골짜기 가운데 바위틈에서 자녀를 죽이는 도다. 골짜기 가운데 매끄러운 돌중에 너희 소득이 있으니 그것이 곧 너희가 제비 뽑아 얻은 것이라, 너희가 전제와 예물을 그것들에게 드리니 내가 어찌 이를 용인하겠느냐,  
해설: 그러므로 하나님은 기존의 비 진리에서 죽지 않고 뻔뻔스레 살아있는 자들을 향해 무녀의 자식, 간음 자와 음녀의 씨라고 하시며 너희가 감히 누구를 희롱하느냐고 호되게 경책 하십니다. 하나님께 데려감을 받은 의인들을 악인들이 희롱하고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는 패역의 자식이며 궤휼의 종류입니다. 상수리나무 사이와 푸른 나무 아래와 골짜기 가운데 바위틈은 모두 비 진리에 매몰된 오늘의 교회들과 귀신의 처소가 된 오늘의 제단들을 뜻합니다. 그러기에 그런 곳에서 자녀, 즉 하나님의 백성들을 죽였다고 했으며 거기서 전제와 예물을 드려 제사를 행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악인들을 어찌 용인하시랴,  
이사야 57:7~12 네가 높고 높은 산 위에 네 침상을 베풀었고, 네가 또 그리로 올라가서 제사를 드렸으며, 네가 또 네 기념 표를 문과 문설주 뒤에 두었으며 네가 나를 배반하고, 다른 자를 위하여 몸을 드러내고 올라가며 네 침상을 넓히고 그들과 언약하며, 또 그들의 침상을 사랑하여 그 처소를 예비하였으며, 네가 기름을 가지고 몰렉에게 나아가되 향품을 더욱 더하였으며, 네가 또 사신을 원방에 보내고 음부까지 스스로 낮추었으며, 네가 길이 멀어서 피곤할 찌라도 헛되다 아니함은 네 힘이 소성되었으므로 쇠약하여 가지 아니함이니라, 네가 누구를 두려워하며 누구로 하여 놀랐기에 거짓을 말하며, 나를 생각지 아니하며 이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나를 경외치 아니함은 내가 오래 동안 잠잠함을 인함이 아니냐, 너의 의를 내가 보이리라 너의 소위가 네게 무익하니라,  
해설: 복음은 온 세계 땅 끝까지 전해진 후에 그 백성들은 멀리 이방 적그리스도에게 까지 옮겨져 갔으므로 그들이 점유하여 사는 영역은 시공간적으로 높은 곳에서부터 낮은 음부에까지 두루두루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이 온 세계를 가득 채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몰렉에게 나아가되 향 품을 더하였다는 것은 복음백성의 비진리가 날로 날로 위력을 더하고 있다는 뜻이며, 또 사신을 원방에 보내고 음부까지 스스로 낮추었다는 것은 적그리스도에게 용병으로 뽑혀 하나님을 대적하는, 원정 나간 상황을 뜻합니다. 그렇게 멀리까지 나아가 용병생활에 피곤할 찌라도 헛되다고 하니 하는 것은 너희 힘이 솟구쳐 전성기를 자랑하는 때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백성을 일컬어 큰 바벨론이라고 하는 때입니다. 이때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누구를 두려워하며 누구로 하여 놀랐기에 거짓을 말하며 나를 생각지 아니하며 이를 마음에 두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나를 경외치 아니함은 내가 오래 동안 잠잠함을 인함이 아니냐... 너의 소위가 네게 무익하니라"라고, 그렇습니다. 주의 백성은 지금까지 사단이 주는 선악과에 취하여 살았으며 게다가 적그리스도를 경배하는 생활에 익숙한 나머지 진리의 하나님을 잊은 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적그리스도의 셋때 반까지는 그들을 간섭하지 아니하셨기 때문에 오래 동안 잠잠하신 셈인데, 그로 말미암아 주의 백성은 하나님을 까맣게 잊고 비 진리의 늪에 빠져서 잘도 적응해 살아가고 하나님은 그 점을 지탄하시며 너의 소위가 무익하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곧 재림 주를 보내주셔서 그들의 허탄한 생활을 청산하지 아니할 수 없도록 하시리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사야 57:13~15 네가 부르짖을 때에 네가 모은 우상으로 너를 구원하게 하라, 그것은 다 바람에 떠나가겠고 기운에 불려 갈 것이로되, 나를 의뢰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겠고 나의 거룩한 산을 기업으로 얻으리라, 장차 말하기를 돋우고 돋우어 길을 수축하여 내 백성의 길에서 거치는 것을 제하여 버리라 하리라,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해설: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 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사람이 어려우면 간구의 기도로 부르짖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은 주의 백성이 탐닉해 있는 비 진리의 우상에게 부르짖어 구원하여 보라고 하시면서 그것은 다 바람에 떠나가겠고 기운에 불려 갈 헛된 짓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겠고, 거룩한 산을 기업으로 얻으리라 하셨습니다. 땅을 차지한다는 말씀에 주목하자, 이는 죽어서 그 영혼이 하늘천당에 간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살아서 우리 육체가 지상천국에 입성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기업으로 받으리라는 거룩한 산은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체로서 거듭난 자들이 이에 해당됩니다. 
그 거듭난 자들이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도록 험한 길을 잘 돋우 워 평탄케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여 그들의 영을 소성케 하리라 하셨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주의 백성들 중에 그들이 처한 비 진리의 현주소에서 만족해하며 교만한 자들이 과연 재림주의 음성을 듣겠는가, 아니면 그 비 진리의 현주소에 슬픔을 느끼고 통회하는 자와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자들이 과연 재림주의 음성을 듣고 구원받겠는가를 생각해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소성케 하는 자들은 후자입니다. 
이사야 57:16~21 내가 영원히는 다투지 아니하며 내가 장구히는 노하지 아니할 것은, 나의 지은 그 영과 혼이 내 앞에서 곤비할까 함이니라, 그의 탐심의 죄악을 인하여 내가 노하여 그를 쳤으며, 또 내 얼굴을 가리우고 노하였으나 그가 오히려 패역하여 자기 마음의 길로 행하도다. 내가 그 길을 보았은즉 그를 고쳐 줄 것이라, 그를 인도하며 그와 그의 슬퍼하는 자에게 위로를 다시 얻게 하리라, 입술의 열매를 짓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먼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 찌어다. 평강이 있을 찌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하셨느니라, 오직 악인은 능히 안정치 못하고, 그 물이 진흙과 더러운 것을 늘 솟쳐내는 요동하는 바다와 같으니라,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해설: 하나님 말씀은 순종하는 자는 살 것이고, 불순종하는 악인은 평강이 없다고, 하나님이 그동안 우리를 떠나 계셨으나, 영구히는 다투지도 노하지도 아니하시리라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영과 혼이 곤비하여 아주 죽게 될까 염려해서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탐심의 죄악(선악과 범법)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노하여 치셨으나(적그리스도에게 붙이심)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뉘우칠 줄 모르고 더욱더 패역의 길로 행하므로, 하나님이 죄악 중에 있는 우리를 또 찾아오셔서 고쳐주실 수밖에 없으며 위로해 주실 수밖에 없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재림 주를 통해 우리의 병든 것을 고쳐주셨습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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