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4: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가인”은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은 받으시고 자기의 제물은 받지 않으시는 것을 보고 너무 분하여 안색까지 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가인”에게 네가 무엇 때문에 분개하느냐고 말씀하시면서 무엇 때문에 네 안색이 변했느냐고 묻고 계십니다. 지금 가인이 분이나 안색이 변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아우 아벨이 드린 제물은 받으시고 자신이 드린 제물은 받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드리는 제물은 어떤 제물이며 이 제물을 하나님께서 받으시는지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도 유대인들이나 사마리아인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받지 않으신다고 말씀하고 있으며, 사도바울도 이 세대들이 드리는 제사를 본받지 말고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산 제물로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롬12:1) 이와 같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제물은 외적인 물질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된 자신의 몸이 제물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물은 땅의 소산으로 드리는 제물이 아니라, 하늘의 소산인 진리와 성령에 의해서 땅의 존재들이 하늘의 존재로 거듭난 자들의 몸을 제물로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 무엇을 제물로 드리고 있는가? 그것은 땅에서 나오는 소득의 십 분의 일을 드리는 십일조와 헌물입니다. 결국 가인이 드린 제물을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드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사실도 모르고 주일마다 헌금을 하나님께 열심히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말씀으로 변화된 자신의 마음은 받으시나, 세상의 물질은 받으실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러한 사실을 안다면 가인보다 더 분개하며 하나님께 항의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지금까지 아무런 불평 없이 제사와 제물을 드리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나 헌물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향해 예배나 헌물을 드리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모두 받으신다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신앙을 고르반 신앙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고르반이라는 뜻은 하나님께 드린 것은 하나님께서 모두 받으셨다고 일방적으로 믿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소득의 십 분의 일을 드리는 십일조헌금이나 헌물은 가인이 드린 땅의 소산으로 드린 헌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성전 일을 하고 있는 레위지파를 위해서 소득의 십일조도 드려야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된 자신의 몸을 드리는 것이 온전한 십일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온전한 십일조의 원 뜻을 모르기 때문에 소득의 십일조 헌금만 부지런히 드리는데 이런 행위는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기독교목회자의 배만 불려주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3:23~24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 입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소경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상기의 말씀과 같이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땅의 소산인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고 있지만 율법의 더 중요한 하늘의 온전한 십일조, 곧 의와 인과 신은 버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소산인 “의와 인과 신의 십일조”를 드려야 하지만 땅의 소득인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도 버리지 말고 행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4: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 찌니라,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네가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시는 선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행하라고 말씀하시는 선은 아벨이 하나님께 드린 제사와 같이 하늘의 소산인 “양과 기름 진정과 신령”으로 자신과 함께 드리는 것입니다.
가인이 지금 하나님 앞에서 낯을 들지 못하는 이유는 가인은 아벨이 드리는 제사를 드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와 제물은 받으시지만 가인이 드리는 제사와 제물은 받지 않으시기 때문에 가인은 하나님께 불만을 가지고 아벨을 미워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인은 항상 아벨을 미워하며 심지어 죽이려는 생각까지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가인의 마음을 아시고 가인에게 네가 아벨을 죽이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나 너는 마음을 잘 다스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인은 끓어오르는 분함과 시기심 때문에 결국 그의 아우 아벨을 죽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가인의 제사를 드리는 유대인들이나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아벨의 제사를 드리는 예수님을 죽인 것과 같은 것입니다. 문제는 가인이 아벨을 죽인 사건은 오늘날 기독교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양과 기름 즉 진정과 신령”으로 제사를 드리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들을 이단으로 몰아 배척을 하며 온갖 핍박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도 네가 너의 죄를 다스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은 육신의 소욕을 억제하고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갈라디아서 5:16~17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상기와 같이 육체의 욕심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의 욕심을 대적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육체의 욕심이나 성령의 소욕이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내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 하면서 자신 안에서 육과 영이 대적을 하며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은 언제나 말씀으로 무장을 하고 말씀에 따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육체의 욕심은 억제할 수가 있고, 점진적으로 조금씩 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욕심을 버린다고 결심도 하고 노력도 해보지만 그동안 쌓이고 굳어진 욕심은 쉽게 버려지지 않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욕심은 자신의 존재이며 자기의 목숨과 같은 것이 곧 욕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을 통해서 자신 안에 들어있는 욕심을 모두 버린다면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4:8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죄를 다스리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가인은 분을 참지 못하고, 그의 아우 아벨을 죽인 것입니다. 가인은 그의 아우 아벨이 미운 것이 아니라, 사실은 자신의 제물을 받지 않으신 하나님이 원망스럽고 미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은 곧 하나님을 죽인 것과 같은 것입니다. 가인은 그의 아우와 같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물을 드릴 생각은 하지 않고, 내가 아벨을 제거한다면 하나님이 자신의 제사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아벨을 죽인 것입니다. 이것은 땅의 소산으로 제사하는 유대인들이 진리와 성령으로 제사드리는 예수님을 죽인 것과 같은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들은 오늘날 기독교에도 동일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지 못하면 가인의 제사를 드릴 수밖에 없고, 따라서 가인과 같이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자들을 죽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땅의 소득으로 드리는 가인의 제사에서 벗어나 아벨이 “양과 기름”으로 자신과 함께 드리는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양과 기름”이라는 뜻은 “양”은 예수 곧 진리를 말하며 “기름”은 성령을 말하므로 아벨이 드린 제사가 진리(진정)와 성령(신령)으로 하나님은 지금도 진리와 성령으로 예배드리는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
'새사람의 신앙 고백'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인의 아내는 누구인가? (0) | 2024.10.17 |
---|---|
가인이 아벨을 죽인 죄와 벌 (0) | 2024.10.17 |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드린 제물 (0) | 2024.10.17 |
새 술은 새 부대에 넣어야 한다. (0) | 2024.10.16 |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0) | 2024.10.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