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2:39~4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속에 있으리라, “요나”의 표적은 성경전체를 대변하는 말씀으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예수님이 행하신 사실을 그대로 나타내신 것을 “비유와 비사”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요나의 표적”은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절대로 해석할 수 없는 불가능한 문장이므로 기독교에서는 이 문장을 한 사람도 해석을 못하는 것입니다. “요나서”의 내용의 뜻은 “요나”가 거짓선지자의 잘못된 말씀으로 “다시 스”란 세상을 좇아가다가 인생의 어떤 역경과 고난의 풍랑을 만나 잘못된 길을 간 것을 뒤늦게 깨닫고 회개하면서 바닷물에 빠져 밤낮 “3일”을 “큰물고기”배속으로 들어갔다는 것은 큰 말씀을 갖은 자 즉 예수님 안에 들어갔다는 것을 “비사”로 말씀한 것입니다. 그 안에서 “밤 3일 낮 3일”을 지냈다는 것은 즉 “6일”을 지냈다는 것인데 이것은 날의 개념이 아니라, 차원적인 영적 존재가 “여섯 번”거듭난다는 과정을 말씀한 것입니다.
창세기 6일 천지창조와 같은 즉 신앙생활을 처음부터 시작해서 거듭나기까지의 “여섯 단계”의 성장과정을 단계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창세기 6일 천지창조”를 만물창조로 이해하기 때문에 상기의 본문말씀 “요나의 표적”을 전혀 이해를 못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바로 이해를 하려면 “창세기 6일 천지창조”는 만물창조를 “비유”해서 땅의 “어둠의 존재”를 “여섯 번”거듭나는 과정을 통해 하늘의 “빛의 존재”로 창조하는 것이 “창세기 6일 천지창조”라는 것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6 항아리의”물(말씀)을 아구까지 채워 “포도주”로 변하는 말씀과 같이 “창세기 6일 천지창조” 즉 자신 안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전을 완전히 건축했을 때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께서 성전 된 자 몸 안에서 “안식”하시는 “제 7일 안식일”과 똑같은 영적으로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요나”가 말씀 갖은 자에게 들어가 “밤 3일, 낮 3일”즉 “6일”동안 말씀으로 거듭난 자가 되었을 때 세상으로 나가 복음을 전한 것을 성경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6일”이라는 것은 날의 개념이 아니라, 이 땅의 “어둠의 존재”들이 “여섯 번”거듭나는 과정을 말하는데 성경에서는 이 땅의 “어둠의 존재”들을 이 세상에 바다의 “물고기, 육지의 각종 짐승”들로 “비유”합니다.
그러면 창세기의 “6일”창조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어둠의 존재”인 인간의 영적상태가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종교 생활하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바다에 “물고기”로 “비유”하는데 이 “물고기”가 거듭나 “기는 짐승”이 되고, “기는 짐승”이 거듭나 “걷는 짐승”이 되고, “걷는 짐승”이 거듭나 “가축”이 되고, “가축”(양)이 거듭나면 “여자”인 인간의 영적상태로 거듭나게 되는데 이렇게 단계적으로 거듭나면 “여자”인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름 준비한 “정결한 처녀”가 되었을 때 “남자”의 영적상태인 “예수”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고전 11:3 여자(인간)의 머리는 남자(예수)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성령)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니라, 이렇게 “여자”인 인간의 영적상태에서 거듭나면 “남자”의 영적상태인 “예수”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고후 11:2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만들어 남편인 그리스도에게 드리려고 중매 한다고 할 때 “어둠의 존재”인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한 단계씩 거듭나 “여섯 번”거듭나 “정결한 처녀”가 되었을 때 “하늘의 신랑”과 한 몸을 이루어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된 자를 “남자”의 영적상태인 “예수”라고 하며 이때 “하나님의 아들예수”가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예수는 반드시 이웃의 죽어있는 “영혼”에게 복음을 전해 예수와 같은 몸을 만드는 것이 “요나의 표적”입니다.
영혼구원은 인간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 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딤전 4:15~16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사도바울도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자기 일생을 다할 때까지 복음을 전한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성경이 기록된 목적은 하나님을 믿는 네가 구원받아서 네 이웃을 구원시키라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아가페)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아가페)하라”는 뜻과 똑같은 말씀입니다. 이 “사랑”(아가페)은 인간의 윤리도덕의 “사랑”(필로스)이 아니라,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이웃도 내 몸 같이 구원해야 하는 것입니다. 반드시 이웃을 구원해야 하는 것이 “십자가”의 원리입니다. 그리고 본문에 “밤 3일 낮 3일”의 다른 뜻은 예수님께서 유대종교지도자들에게 예루살렘성전을 헐라 내가 “3일”만에 다시 성전을 짓는다(요2:19)고 말씀하신 것은 오늘날 기독교의 거짓목사들에 의해 잘못 지어진 육체의 성전을 진리의 말씀에 의해 모두 헐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몸은 하나님이 “안식”하시는 성전이 되기 때문입니다.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이렇게 각종 “신학”교리와 “비 진리”로 잘못 지어진 더러운 내 몸의 성전이 모두 무너지는 날이 “밤 3일”이며 새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낮 3일”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3년”동안 예수님과 같이 지내면서 자신 안에 지어진 “옛 성전”을 “밤 3일”동안 무너트리고 생명의 말씀으로 다시 제자들 안에 “낮 3일”동안 “새 성전”을 건축하여 “12제자”(성전)를 만드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애급에서 광야를 거쳐 가나안까지가 3일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모리아 산까지 데리고 간 길이 “3일 길”이라는 것이며 예수님의 나이 “30”세에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실 때 “30”이라는 숫자는 나이가 아니라, “애급, 광야, 가나안”을 통과한 장성한 자로 완성되는 기간이 “3일 길”이라는 것이요, 이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함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것이며 또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서 “3일”만에 부활하신 것도 “애급, 광야, 가나안”을 통과한 것을 “3일”만에 부활하신 것을 “비사”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경로를 통해서 예수님이 태어나신 것이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동정녀마리아”몸에서 성령의 잉태로 태어나신 분이 아니라, “비유와 비사”로 예언적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3일 길”(애급, 광야, 가나안)을 통과한 자가 하나님의 성전이 완성되는 기간입니다. 이것이 “창세기 6일 천지창조”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성전이 완성되면 그때 “말씀”의 실체이신 하나님께서 거듭난 자 몸에 “안식”하시는 것이 십계명에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입니다. 이 성전이 완성되어야 “천국인 예수”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유대교 종교지도자(목사)들에게 잘못된 너희들의 성전을 헐면 예수께서 “3일”만에 다시 짓는다는 뜻은 지금까지 “신학”교리와 기복신앙으로 형성된 목사들의 거짓성전을 헐어내는 것을 말하며 완전히 헐렸을 때 “성령”(말씀)이 비둘기 같이 임(잉태)하게 되어 하나님의 아들 예수로 거듭난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 “인자”(예수)도 “밤 낮3일”을 땅속에 있으리라는 말씀도 “밤 3일 낮 3일”즉 “6일”(6년)동안 어둠에 존재인 “요나”속으로 예수님이 들어가 말씀으로 양육해 거듭난 자로 만들었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계시록 3:20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이 말씀은 네 마음의 문을 열어 진리를 소유한 “실존예수”를 영접하면 그 사람에게 들어가 그를 영적인 하나님의 아들의 존재로 만들어 주신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요나”가 “큰물고기”인 예수 안으로 들어가고, 예수가 땅의 존재인 “요나”안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가 예수님의 말씀으로 장성한 자로 성장하여 거듭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되었을 때 세상 “어둠의 존재”들에 가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악하고 음란한 세대 즉 육에 속한 존재들(서기관, 바리세인, 제사장) 오늘날 기독교목사들에게 “요나의 표적”밖에 보여 줄 것이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요나의 표적” 안에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구원의 사역이 모두 함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처음에는 “어둠의 존재”들인데 예수님의 말씀 안에 거했기 때문에 이들이 거듭나 “예수들”로 부활하여 구원자의 역할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끊임없이 성장해 반드시 “예수”와 같은 구원자가 되어야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은 거와 같이 너희도 나를 본받으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말한 “그리스도”를 본받으라는 뜻은 예수님 즉 구원자의 말씀으로 죽었던 자신의 영혼이 살아나서 그 말씀으로 성장하여 거듭난 “예수”가 되어 이웃의 죽은 영혼을 구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바울이 그리스도를 본받은 것이며 “요나의 표적”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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