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사람의 신앙 고백

※ 이 시대의 과부와 고아, 나그네 는 누구인가? ※

제라늄A 2024. 12. 18. 05:56

출애굽기 22:22~24 너희는 과부나 고아를 괴롭히면 안 된다. 너희가 그들을 괴롭혀서, 그들이 나에게 부르짖으면, 나는 반드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어주겠다. 나는 분노를 터뜨려서, 너희를 칼로 죽이겠다. 그렇게 되면, 너희 아내는 과부가 될 것이며, 너희 자식들은 고아가 될 것이다 * (심판의 하나님) * 

출애굽기 22:25~27 너희가 너희 가운데서 가난하게 사는 나의 백성에게 돈을 꾸어 주었으면, 너희는 그에게 빚쟁이처럼 재촉해서도 안 되고, 이자를 받아도 안 된다. 그가 나에게 부르짖으면 자애로운 나는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 * (자비의 하나님) * 

우선 모든 성경기록은 양면성이 아닌 것이 없듯이 과부와 고아에 대한 기록 역시 반드시 그러함을 짚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이 말씀에 너희가 너희 가운데서 가난하게 사는 나의 백성에게 돈을 꾸어 주었으면, 너희는 그에게 빚쟁이처럼 재촉해서도 안 되고, 이자를 받아도 안 됩니다. 너희가 정녕 너희 이웃에게서 겉옷을 담보로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그가 덮을 것이라고는 오직 그것뿐입니다. 몸을 가릴 것이라고는 그것밖에 없는데, 그가 무엇을 덮고 자겠느냐? 그가 나에게 부르짖으면 자애로운 나는 들어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과부와 고아를 괴롭히면 그 괴롭힌 자들에게 벌을 내려서 그들의 아내를 과부 되게 하고 그들의 자식들을 고아 되게 하리라 하셨습니다. 전자의 과부와 고아는 하나님의 자비의 대상이고, 후자의 과부와 고아는 심판의 대상임을 누구나 확연히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같이 성경은 간단히 확인되었듯이 과부와 고아라고 하는 문자자체가 양면성임은 물론이고, 성경은 또한 반드시 문맥을 따라 풀어지고 증거 되어야 하므로 성경문자는 문자일 뿐, 고정불변의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이 불쌍히 보시는 이 시대의 과부와 고아는 과연 누구인가? 

성경은 성경기록시대가 따로 있고 그때는 예언시대가 됩니다. 그리고 그 예언이 성취되는 때도 따로 있고 그때를 실상시대라고 하는데 오늘날은 곧 성경예언이 성취되고 있는 실상시대입니다. 그런데 성경예언은 그 성취의 실상에서 증거 되어야 하기 때문에 성경을 일컬어 봉한 책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이스라엘민족을 이방민족들과 싸우실 때는 문자 그대로 무기전쟁이며 피 흘리는 생물학적으로 죽이고 죽는 육적 전쟁이었습니다. 그것이 성취되는 오늘의 실상시대의 전쟁에서는 우리의 심령을 죽이고 죽는 영적 전쟁이며 교리전쟁인 것입니다. 육적인 것을 영적으로 풀어내는 것이 성경 해석이며 증거입니다.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시는 과부와 고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옛적의 육적인 과부와 고아를 오늘날은 영적인 과부와 고아로 증거 해야 합니다. 성경 기록시대의 과부와 고아는 육적이요, 표면적이요, 문자적이요, 인간도덕적 가치를 유발하는 가난과 외로움이 바깥으로 표출된 과부와 고아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성취시대의 과부와 고아는 영적이요, 내면적으로 심령이 곤핍한 자요, 가난과 외로움이 남 모르게 안으로 내재해 있는, 즉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진리를 모르는) 내면의 슬픔으로 자기 존재의 정체성과 하나님 존재의 정체성을 찾아 헤매는 심령이 가난한 자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그러한 긍휼의 대상에서 홀아비는 빠져 있고 과부로 표현했을까? 그것은 오늘날은 하나님이 없는 영적 과부로 풀이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필요를 충족시켜 주시고 돌보시는 남편이 되고 부모가 되어 주신다는 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있다면 과부가 될 수 없고 고아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과부가 되고 고아가 됩니다. 그런데 이같이 하나님이 없는 오늘의 영적 과부영적 고아를 왜 하나님은 불쌍히 여기시는가?  하나님이 있는 자는 불쌍히 여기지 않고, 하나님이 없는 자는 불쌍히 여기신다면 하나님이 있는 자는 구원이 없고 하나님이 없는 자는 구원이 있다는 말이 되는데 이게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라 도무지 해괴하지 않고 참으로 진리의 옳은 말씀입니다. 왜 그런가? 

하나님을 온전히 깨닫도록 의도하셨기 때문에, 성경은 그 육적 문자가 영적으로 풀어지기 전 지금까지는 비유로 봉한 책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성경 속의 하나님을 문자 그대로 믿었으며 비유로 봉한 책임에도 참 뜻을 찾지 못하고 비유 그대로, 수박 겉 할 기만합니다. 하나님을 모셨으되 그 하나님은 참 하나님이 아니고, 거짓 하나님을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즉 참 남편이 아닌, 외간 남자를 남편인양 깜박 속으며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사마리아 여인만 못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4:16~18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 되도다.라는 대화에서 여자는 남편이 없다고 했으며 예수께서도 여인에게 남편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남편이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남편이 아니라고 하심을 볼 때 여섯 번째 까지도 남편이 아닌 것이 됩니다. 다섯은 창조 첫째 날에서 창조 다섯째 날까지를 말합니다.

그리고 현재의 여섯 번째는 창조 마지막 날로 여섯째 날인 오늘 이 시대의 남편을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대의 남편(하나님)은 자칭 재림주인 적그리스도가 되기 때문에,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라고 한 것입니다. 다섯은 이미 지난 옛 구 양식이므로 남편이 아닌 것이 분명하고, 여섯째인 오늘의 자칭 재림주도 두말할 나위 없이 남편이 아닙니다. 구약의 하나님도 남편이 아니고, 신약의 하나님도 진정한 남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구약의 하나님도, 신약의 하나님도 모두 형이하학으로 기록된 성경문자를 그대로 믿어온 창조미완의 위성 체 달빛 하나님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신구약성경 그 이전의 하나님은 그야말로 남편이 아님은 불문가지입니다. 이같이 남편이 아님에도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지금까지 하나님(남편)을 모시고 섬기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으며 큰소리치고 있으니 사마리아 여인만 못한 것입니다. 남편이 없다고 답변한 사마리아 여인이 곧 남편 없는 과부와 같고 부모 없는 고아와 같습니다. 예수님도 그녀의 말을 인정하고 네 말이 참되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사마리아 여자처럼 남편이 없다고 말을 해야 합니다. 남편 없는 과부는 슬프고 외롭습니다. 부모 없는 고아는 굶주려서 기아선상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같은 과부와 고아는 외로움과 굶주림에서 탈피하기 위하여 남편을 찾아, 부모를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즉 오늘날 기성교단의 비 진리의 신앙에서 탈퇴하여 성경의 참뜻을 찾아 진리를 찾아 헤매고 문을 두드리는 또 다른 표현의 “영적 거지 나사로”인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버려두고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구하기 위해 떠나신다고 하신 또 다른 표현의 “길 잃은 어린양”인 것입니다. 불쌍하기 그지없는 긍휼의 대상이 아닌가?  하나님은 반드시 이들의 소원을 들어주셔서 구원의 반열로 입궁시키십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본문에서 지적된 대로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으로서 과부와 고아가 있습니다. 전자의 과부와 고아를 불쌍히 여기지 않으면 그들의 아내는 과부가 되고 그들의 자식들은 고아가 되리라고 하신 그 후자의 과부와 고아들이 있는데 이들이 누구인가? 하나님의 명을 따라 전자의 과부와 고아를 불쌍히 여기지 않고 그들을 업신여기며 매 타작을 해서 출교 시키며 한 벌 옷을 저당 잡으며 이자를 받아 탈취하며 그들에게 남편과 부모 없음을(하나님 없음을) 빌미로 마구 짓밟아 뭉개는 기성교단과 적그리스도(신천지, 여증인, 구원 파, 통일교, 안산홍 등)들이 하나님이 정죄하시는 후자의 과부와 고아들인 것입니다.

기성교단과 적그리스도들은 자칭 하나님(남편)이 있다고 뽐내는 자들입니다. 참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창조미완의 하나님을 섬기고 있기에 내용은 없으면서도 허장성세로 머릿수와 목소리만 크고 따라서 오늘의 참 하나님이 보실 때는 진정 하나님이 없는 부끄럽고 처량한 과부임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은 과부가 아니고 여황이라고 주장하며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않으리라 한다고 알려주고 있습니다(계18:7) 기성교단은 비유의 말씀을 문자 그대로 먹고 마시는 개, 돼지들이요 소경들입니다.

문자 그대로이면 유치하기 짝이 없어 부끄러움의 극치임은 물론 무엇보다 문맥이 맞지 않아서 장애물이 앞을 가려도 이런들 어떠하랴 저런들 어떠하랴 로 양심 불감증에 걸려 있습니다. 즉 하나님(남편)이 없음에도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자칭 재림주집단인 적그리스도는 한술 더 떠 최근에 나타난 세력의 신으로서 군림하므로 직접 남편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어떤 자칭 재림 주는 죽어서도 "재림 주 아무개 여기에 잠자다"라는 묘비명을 남기고 있을 정도이니 그 광기를 누가 말릴 것인가, 이같이 남편이 없음에도 남편이 있다고 주장하고 과부임에도 과부가 아니고 여황이라고 주장하며 큰 바벨론 성을 쌓고 있는 오늘의 기성교단과 자칭 재림 주들은 심판의 대상으로서 과부와 고아들인 것입니다.

계시록 3:17~18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오늘날 재림 때에 있을 기성교인들과 자칭 재림교인들에게 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기독교인들은 시간낭비하지 마시고 하루속히 기성교회를 탈퇴하셔서 “길 잃은 양”(고아, 과부, 나그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드립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리십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