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도“를 만난 수가 성 여인 ”
요 4:25-26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해설: “수가 성 여자“는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말하되 메시야, 곧”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모두 알려주실 것이라고 예수님께 말씀드리고 있습니다.“수가 성 여인“의 말을 들으신 예수님은 여자에게 이르시되 지금 네게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그리스도”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수가 성 여인“은 지금까지 우물에서 물을 길어먹으면서”남편인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수가성 여자“는”남편이 다섯“이나 있었으나 예수님께서 지금같이 살고 있는”남편“도 네 남편이 아니라고 하셨기 때문에 이“수가 성 여자“의 영적 상태는 세례요한과 같은”여자가 낳은 자 중에 제일 큰 자“인”정결한 처녀“와 같은 영적상태로”남편인 예수님“을 만나고 있는 장면입니다.
이”여자“가 곧”남자“예수로 거듭나는 단계에 도달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사마리아 여자“앞에 앉아 계신 꿈속에서도 그리던”그리스도”라니 얼마나 놀라고 반가웠겠습니까? 문제는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할 오늘날“실존예수그리스도“가 오셔도 2000년전 유대인들이나 오늘날기독교인들도 알아보지 못할 뿐만 아니라 믿지도 않으며 오히려 이단자로 배척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오늘날의“실존예수”를 믿고 그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일용할“양식“으로 먹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는 것입니다.
요 4:27 이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이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저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
해설: 예수님께서”사마리아 여자“와 말씀을 나누고 계실 때 예수님의 제자들이 먹을 음식을 구하러 갔다가 돌아와서 예수께서”사마리아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이상이 여겨 어찌하여”사마리아 여자“와 말씀하십니까? 왜냐하면 유대인들은”사마리아 여자“들을 원수와 같이 생각하고 상종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대인들만의 구원자가 아니라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하는 자들은 모두 구원을 시키는 분입니다.
요 4:28-30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돌아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 오더라,
해설: 우물에 물을 길러 왔던”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이 만난 사람이 곧”그리스도”라는 것을 깨닫고 물 길러 가지고 왔던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달려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질문한 것을 모두 내게 알려 준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진정”그리스도”가 아니냐고 외치니 사람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님을 찾아 간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유대인도 아닌”사마리아 여자“가 몇 마디“예수님”의 말씀을 듣고”그리스도”라는 것을 금방 알았다는 것과 또한”사마리아 여자“의 말을 들은 동네 사람들도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예수님을 만나러 갔다는 것은 동네사람들 역시 영적상태는 대단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사마리아 여자“가 외치는 소리를 알 아 들을 수 있는 영적존재는“축생(양)”의 자리인 예수님의 제자들과 같은 영적상태가 되었기 때문에”사마리아 여자“가 외치는 소리를 알 아 들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이나 오늘날기독교인들은 누가 예수라 하든가 참 하나님의 아들이라 말하면 무조건 이단이라고 상종도 하지 않는데”사마리아 여자“가 예수님의 말씀을 몇 마디 듣고 금방”그리스도”라는 것을 알았고 또한”사마리아 여자“의 말을 들은 동네 사람들도 모두 예수님을 찾아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필자가 느끼는 점은 그동안”사마리아 여자“는 세례요한과 같은 영적상태로 동내사람들에게 중보자로서”그리스도“를 증거 했다는 것입니다.
요 4:31-34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가로되 랍비여 잡수소서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한 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해설: ”사마리아 여자“가 물동이를 두고 동네로 들어간 사이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먹을 음식을 가지고 가서 청하여 “가로되 랍비여 드십시오” 라고 음식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양식“이 있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그러면 누가 잡수실 것을 이미 갖다 드렸단 말인가 하고 말할 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여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 곧“양식“이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이 잡으셔야 할“양식“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양식“은 육신의“양식“이 아니라 땅에 속한 죄인들에게 복음을 주어 영혼들을 구원하여 살리는 것이 예수님이 먹을“양식“이라는 것입니다. 즉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여 온전하게 이루는 것이 예수님이 하시는 일인데 이것은 죄인들의 죄를 사해주고 구원하여 살려서 하나님의 아들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먹을“양식“은 곧“수가 성 여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사도행전 10장을 보면 베드로가 먹어야할 음식을 하나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비몽사몽간에 기도 할 때에 시장하여 무엇을 먹고자 할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한 그릇이 내려오는 것을 보니 땅에 있는 각색 네발 갖은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잡아먹으라고 하실 때에 베드로는 부정한 짐승을 보고 절대먹지 않겠다고 세 번씩이나 거절을 하였으나 하나님은 내가 깨끗하게 하였으니 잡아먹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본 것은 실제로 짐승들이 아니라 구원받아야할 고넬료의 가족인 것을 성경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부정한 짐승들을 잡아먹으라는 표현을 하셨을까? 이때는 베드로도 이 영적인 말씀을 전혀 이해를 못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정한 짐승이란 육적인 어두움에 존재를“비유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신구약의 모든 짐승들과 물고기와 식물들은 아직 거듭나지 못한 인간의 존재를 비유해서 말씀하신 것을 성경 여러 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욥 12:7-8 짐승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네게 가르치리라 공중의 새에게 물어 보라 그것들이 또한 네게 고하리라 땅에게 말하라 네게 가르치리라 바다의 고기도 네게 설명하리라,
이런 물고기나 짐승들이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물어볼 수 있고 어떻게 말을 하겠습니까? 이같이 성경은 인간의존재가 하나님의 형상에 이르지 못한 존재들을 물고기나 짐승이나 새나 나무나 식물들로 하나님께서는 비유하신 것입니다. 성경에는 풀이나 나무도 모두 인간들의 존재를 차원에 따라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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