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1:4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나 땅은 영원히 있도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날 때 벌거벗고 두 손을 꼭 쥐고 태어납니다. 그 이유는 앞으로 육신의 생활을 욕심으로 모두 쥐고 놓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쥐고 놓지 않으려는 세상의 모든 것들은 죽을 때 두 손을 펴고 다 내려놓으며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인가? 또한 이 세상에서 진정 하나님이 원하시고 뜻 하시는 삶이란 무엇인가? 우리 인간은 모두는 “공수래공수거” 할 수밖에 없고 “허무와 허망”의 세월을 보내야 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것은 이렇듯 모두를 버리고 가야 하는 것이나 내면의 이름인 거듭남, 즉 “진리를 깨달음” 만은 인간이 가지고 갈 수 있는 유일한 재산이며 하나님이 뜻 하시는 육신의 삶인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먼저 가르쳐 주시고 말씀하신 이가 전도서의 “솔로몬 왕”입니다. “솔로몬 왕”이야말로 다윗의 아들이며 이스라엘의 왕이자 지혜를 겸비한 전무후무한 인물이었으나 그는 육신의 세상의 모든 것들을 헛되고 헛됨이라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허무한 것이라 가르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삶은 어떠한가? 육신의 삶은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 또한 우리 인간의 욕망을 채우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육체를 입고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모두 헛된 것뿐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헛된 세상에서 올바른 신앙생활을 통해서 변화된 마음만이 인간의 본향인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고 인간이 취하고 가지고 갈 수 있는 모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네 육신이 세상에 있을 때 헛된 것만을 취하지 말고 진실로 변화받는 그 마음을 얻으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참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진정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니 육신의 삶이란 이렇게 뜻한 바를 이루려 하는 좁고 협착한 길에 들어섰을 때 비로소 헛되지 않고 허망하지 않은 실상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서의 “솔로몬 왕”도 이것을 우리 인간에게 전해주시며 허망한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고 그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니 이 삶을 살았던 선지자들과 예수님은 우리 인간에게 욕심으로 그저 믿어 구원받았다 착각하는 것이 아닌 “네 십자가를 네가 직접 지고 내 밟은 길을 따라 걸어가는 삶을 살아라!”하는 것입니다. 전도서 1:1~4 다윗의 아들 전도자의 말씀이라,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전도서 2:1 너는 낙을 누리라 했으나 이것도 헛 되도다. 어둠인 “땅의 존재”가 “하늘의 존재”가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영원히 무익한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을 다하고 수고를 할지라도 인간의 본향인 하늘에 오르지 못한다면 이것이 무익한 것이며 그러하기에 “해 아래의 모든 것은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깨달음은 이렇듯 어둠의 존재의 무상함과 유익함이 없다 함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해 아래의 무지한 인간의 존재들은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모든 것이 유익하고 유상함으로 살아가는 것이며 그것이 생의 절대 목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니 우리 모두는 육신의 종노릇을 영원토록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들 앞에 하나님께서는 전도자와 선지자들을 보내주시어 너희의 육신의 삶은 모든 것이 헛된 것이며 그것을 깨달아 땅의 존재가 하늘의 존재로 변화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무익함으로 무상의 삶일 뿐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의 삶을 사셨던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을 그와 같이 만드시어 사도들로 하늘의 생명으로 거듭나게 하신 것이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그토록 어려운 삶을 산 이유야 말로 육신의 삶은 허무와 헛된 것임을 깨달았던 것이며 진정 자신들의 삶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전도서의 “솔로몬 왕”은 그가 비록 세상의 부귀와 모든 것을 갖고 있고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지위에 있다 하나 그 낙을 누리는 것조차도 헛되고 헛된 것임을 고백하고 있는 것은 인간의 “욕망과 탐심”을 모두 채울 수 있는 그였기에 그는 이 모든 것이 헛된 것임을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삶을 어떠한가? 한 치의 앞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존재들이 오늘도 내일도 또한 오지 않은 미래조차도 그것이 나의 것 인양 붙잡고 놓지 않으려 하며 더함에 더함으로 욕심을 더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의 앞은 허망한 죽음뿐임을 우리 인간은 곧 보게 될 것이나 나만은 예외이며 나만은 가져갈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알았고 깨달은 전도자와 오늘날 우리인간 앞에 구원자로 와 계신 “실존 예수님”은 우리 인간들을 말씀으로 변화시키고 깨닫게 해 주시기 위해 그 평생을 기다리심과 인내하심으로 인도하신 것이니 구원자의 인도가 헛되지 않으려면 우리 인간은 이 무지의 삶을 벗어나려고 부지런히 하늘의 것만을 좇아 연단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전도서 2:1~2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적으로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본즉 이것도 헛되도다” 내가 웃음을 논하여 이르기를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을 논하여 이르기를 저가 무엇을 하는가 하였노라”
전도서 3:11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천하의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농부가 봄에 씨앗을 심고 여름에 더위와 땀으로 수고하여 가을에 열매를 거두는 것은 때를 맞춰 수고를 아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열매는 봄의 씨앗의 여름의 수고로 인함인 것이며, 열매는 봄의 씨앗과 여름의 수고로 얻어진 결과물입니다. 노력과 수고를 다하지 않고 심지 않고도 거두려는 신앙은 욕심인 것입니다. 이렇게 모든 것들이 때가 있듯 때를 맞춰 수고와 준비를 다하지 않는다면 열매를 거두지 못하는 것처럼 신앙의 준비와 수고는 우리 인간이 육신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부지런히 그 수고를 다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헛되고 허망의 삶으로 돌아가는 인간의 삶은 무엇을 추구하고 살아가던지 그것들은 모두를 두고 가는 삶인 것이며 죽어지면 가져갈 수 없는 허망의 빈손일 뿐인 것이니 빈손으로 온 이 세상은 헛된 것만을 좇아 살아가다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뿐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헛된 육신의 삶을 허락하신 이유는 이 허망의 삶속에서 우리 인간이 반드시 걸어가야 할 삶이 있는 것이며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원하시는 뜻이며 이 육신의 삶은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의 삶으로 거듭나야 할 연단의 장소이기 때문인 것입니다. 바로 이 헛된 육신의 삶을 살아가며 우리 인간은 헛된 삶 속에서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 저 하늘의 영원을 사모하는 “참 생명”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니 하나님께서는 그렇기에 우리 인간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이야말로 썩어 없어질 세상의 삶 속에서 인간이 가져갈 수 있는 영원한 생명의 씨앗인 것이며 연단을 통해 거둘 수 있는 진리의 열매인 것입니다. 헛되고 헛된 삶들이 헛되고 헛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삶이란 바로 이 영원을 사모하여 그것을 얻는 삶인 것입니다. 그러나 심지도 않고 때가 이르기 전 육신의 욕심처럼 무엇이 되었다 하고 무엇이 되려 하는 것은 신앙의 커다란 또 다른 욕심인 것이니 인간은 항상 착각에 빠져 살아가듯 신앙 또한 이 착각의 어리석음으로 또 하고 있는 것입니다. 종말을 알아야 태초를 알듯 내 어리석은 존재를 그 허망함을 알 때 우리 인간은 비로소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이며 그러할 때 영원을 사모하여 그 영원을 성취하는 참 신앙생활을 다 하게 되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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