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기독교는 예수님과 예수그리스도를 구분하지 않고 혼용하여 사용합니다. 성경에 “예수”라는 기록만 나오는 경우와 “예수그리스도”로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글자에는 반드시 기록한 사도들의 의도가 담겨져 있습니다. 아무런 의미도 없이 같은 의미를 이렇게 달리 쓰지는 않습니다. 그럼 먼저, “예수”는 십자가 전과 십자가 후로 나누지 않으면 성경이 풀리지 않습니다. 십자가전 “예수”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려고 이 땅에 오신 “예수”지만 그러나 이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시기 전에는 구원의 사역을 못 하신 분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사역을 하신 것은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은 후 부터 사역을 하신 것입니다.
침례는 물(말씀)에 잠길 때는 죽음을 상징하고 물에서 나올 때는 부활을 상징합니다. 침례를 받으신 것은 상징적인 예표로 인간의 죄를 말씀으로 씻음으로 “예수”께서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그림자입니다. “예수”께서는 30세 전까지는 인간의 상태에서 있었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도 없고 사역도 못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침례를 받은 후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했다고 하는데 이때 “예수”께서 성령으로 거듭나신 것입니다.
“성령”은 “예수”가 육신을 입고 계시기 때문에 십자가로 가기위한 보혜사 역할을 하시는 분이고 “그리스도”는 “예수”가 죽고 부활하면 하나님의 본체의 “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는 예수님이나 예수그리스도를 똑 같은 의미로 알고 있습니다.“예수그리스도”는 “예수님”이 죽고 부활하여야 “예수”의 신분에서 “예수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 고전 15: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후 “예수”의 신분에서 “그리스도”의 신분으로 둘째사람인 “예수그리스도”가 됩니다.“예수그리스도”는 그 이름을 임마누엘 하나님이시며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어 이때부터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자가 되신 분입니다.
이제는 그 이름이 더 이상 “예수”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입니다. 마치 야곱이 이스라엘로,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게 바가 베드로로, 사울이 사도바울로, 이는 모두가 첫째가 아닌 둘째가 승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름과 본질이 바뀐 것처럼 “예수”에서 “예수그리스도”로 본질이 바뀌신 것입니다. 이제 둘째아담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는 영혼을 구원할 목자이기 때문에 십자가 후에는 “예수그리스도”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면 왜 십자가 후 “예수”를 “그리스도”라 말하지 않고 “예수”라고 말할까요? 본문에서 “그리스도”의 대상이 되는 인간의 영적상태가 “예수”와 함께 죽고(갈2:20) 부활한 거듭난 상태인지, 아닌지 여부 때문입니다.
“예수”는 분명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거듭나기 전 “예수”를 다메섹에서 만났을 때 “사울”아, “사울”아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라고 한 것은 “사울”이 아직 거듭나지 않았으므로 “예수”라고 했고 “사울”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본문에 시제가 십자가 전인지, 십자가 후인지를 살핀 다음, 본문에서 “그리스도”의 상대가 되는 대상자의 상태가 어떠했는지를 살펴보면, 그 상황에서 쓰인 “예수”가 나사렛 “예수”를 의미하는 것인지 “그리스도”가 되신 “예수”를 의미하는 것인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합니다. 창세전에 아버지와 함께 계셨던 본질의 여호와의 “신”으로 나타나시고 이 분은 태초의 하나님의 “신”진리의 본체, “성신”입니다.
“예수”는 육신을 멸하고 본질이 “신”이 되셨으므로 “예수”라 하지 않고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예수”와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나면 이해는 훨씬 쉬워지며 그 중심을 “예수”로 보느냐 “그리스도”로 보느냐에 따라 달리 해석이 됩니다. 만일 예수로 본다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여 그리스도가 되어야 할 예수를 의미하는 것이고, 만일 예수그리스도로 본다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한 “그리스도”가 된 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와 그리스도”는 나눠져야 합니다. 이렇게 나누고 보니 십자가 전 “예수”는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지 인간을 구원하신분이 아닙니다.
때문에 이 “예수”는 십자가 전에는 영혼을 구원할 목자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이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몸 안에는 십자가 전 “예수”는 절대로 들어올 수 없습니다. 인간이 “예수”와 함께 죽고 부활한(갈2:20) 인간 몸 안에 십자가 후에 “그리스도”(신)가 들어오셔서 안식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성전) 때문에 이를 모른 상태에서 기독교인들이 십자가 전 “예수”를 두고 자기 안에 “예수”가 사신다고 말한다면 그건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처음에 기독교에 입문해서 “예수”를 영접함으로 내안에 지은 성전을 그 “예수”와 함께 헐어버리고(죽고) 부활하면 “그리스도”가(갈2:20)임함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몸”(성전)에 오셔서 안식합니다.
요 2:19 예수께서 46년 된 예루살렘성전을 헐라 내가 3일 만에 짓겠다는 것은 바로 잘못 지어진 육체의 성전을 헐면 진리의 말씀으로 3일 길 “애급, 광야, 가나안”의 3일 길을 가야 다시 짓는다는 말씀입니다. 침례와 십자가의 “비밀”을 깨닫고, 실제 내 마음에 “그리스도”가 들어오셔서 안식하실 때 우리는 십계명 네 번째 계명인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자요 천국을 내 몸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자가 “온전한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는 자요 거듭난 자임을 현실로 경험하며 날마다. “예수그리스도”께 이끌려 인도함 받는 그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삶이 체험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부활이며 거듭남”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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