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복음 41절,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손에 무엇을 가진 자는 더 받게 될 것이요 또 갖지 못한 자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적은 것마저도 빼앗기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은 “도마복음 40절”을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손에 가진 자는 더 받게 될 것이며 갖지 못한 자는 가지고 있는 것 까지도 빼앗기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13:12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이 말씀을 잘못 오해를 하면 많이 가진 부자는 더 부자가 될 수 있도록 해주고 가난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긴 다는 말로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뜻은 그런 의미가 아니라, 도마복음 40절 말씀에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와 같이 하나님의 “포도송이 열매”를 열심히 잘 맺는 가지는 하나님이 더 많이 맺을 수 있도록 잘 도와주신 다는 뜻이고, 게으르고 나태하여 “포도송이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들은 붙어있는 “가지”도 잘라 버린 다는 뜻입니다. 이런 말씀을 보면 생명의 길을 가는 기독교인들은 정신이 번쩍 들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5:1-2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잘라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모르게 짓는 “죄”가 수없이 많이 있지만 게으르고 나태한 “죄”가 얼마나 크다는 것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은 게을러서 “포도송이 열매”를 맺지 않는 “가지”는 모두 잘라버리듯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자들은 모두 멸하신다는 것을 명심해서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음으로 자신만 구원받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나태한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지옥으로 끌고 가는 가장 빠른 길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서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에스겔 3:17-19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의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천국에 들어가려면 에스겔 선지자와 같이 전도의 사명을 받은 하나님의 파수꾼으로 이웃의 죽어가는 영혼들을 반드시 구원하고 살려서 내 몸같이 만들어야 내가 구원을 받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고 또 명심해야 합니다. 이웃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죽을힘을 다해도 말이 쉽지 그렇게 쉽게 전도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 같이 불신자를 붙잡아 교회에 앉혀놓는 것이 전도가 아니라, 내 “살”(복음)과 “피”(복음)를 내주어 “내 몸같이 구원해야” 나의 구원이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자들이 깨달아야 할 말씀은 바로 세상이라는 “애급”의 바다에서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인 “물고기”를 잡아서 양육해서 그 댓가로 “반세겔”의 돈으로 “성전 세”를 “임금”에게 받쳐야 “가나안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마태복음에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17:24-27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가로되 너희 선생이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가로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시몬아 네 생각에는 어떠하뇨, 세상 임금들이 뉘게 관세와 정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 게냐 타인에 게냐, 예수께서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그러나 우리가 저희로 오해하지 않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 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본문장의 말씀은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깨달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런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도 기독교인들이 천국에 갈 수가 있겠습니까? 상기의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천국 세”를 내야 하는데 관세인 통행료를 내야 하는데 한 사람이 “반 세겔”이라는 돈을 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이 모두 “비유”로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상기의 말씀은 어떤 임금이 있는데 그 아들은 “천국 세”를 내고 들어 가냐고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베드로에게 네가 “바다”(세상)에서 낚시로 “물고기”를 잡으면 그 “물고기”입을 열면 “한 세겔”의 돈을 얻을 것이니 그 돈으로 나와 너를 위하여 “반 세겔”씩 “천국 세”를 내고 들어가자는 것입니다. 이런 말씀은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필자의 블로그 N0,1745번에 자세히 기록되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말씀이 무엇을 “비유”하는지 기독교인들이 알지를 못하는데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성경의 모든 “율법”이 “네 이웃을 구원하여 네 몸과 같이 만들라”는 이 한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모든 “율법”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즉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만드는 것”이 곧 모든 “율법”을 다 이루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이웃을 구원하여 자신의 몸과 같이 만들어야 모든 “율법”이 완성된다는 말입니다. 갈라디아 5:14 모든 율법은 네 이웃 사랑(구원)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 이 말씀은 윤리도덕으로 이웃을 사랑하라는 인간의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아가페)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모든 “사랑”이란 글자는 하나님의 “아가페사랑”을 말하는 것이지 인간의 윤리도덕적인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롬 13:8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그냥 예수 믿으면 천국에 간다는 기독교 목회자들의 말을 그대로 믿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전도의 사명을 하지 않거나 해도 올바로 행치 않아 그 영혼이 죽으면 그의 죄 값을 그 전도자에게 받는다는 무서운 말씀이 상기의 에스겔서에 잘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의 죽어가는 영혼을 구원하고 살리면 먼저 자신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먼저 거듭나서 이웃을 반드시 구원해야 내가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구원”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오늘날 기독교 안에 있어야 “구원”할 수 있는 것인데 기독교 안에는 그런 “구원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구원할 수 있는 자격”은 장성한 자로 성장해서 거듭나야 그 “사랑”(아가페)을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처음에는 내가 장성한 자로 거듭나면 반쪽 구원을 받는 것이요, 그 다음에는 이웃을 구원해야 완전히 구원을 이루는 것입니다. 딤전 4:15-16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이같이 이웃을 내 몸같이 만들어야 내가 하나님께 빚진 자로서 구원의 빚을 완전히 갚는 것입니다. 사랑의 “빚”이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의 “빚”을 말하는 것인데. 은혜의 “빚”이 하나님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나 “사랑”에 빚진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의 빚”을 하나님께 갚으려면 이웃에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므로 하나님께 진 “빚”을 갚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아난 것처럼 내가 희생의 “피”(복음)를 주어 그들을 살려서 나와 똑같이 하나님의 아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새 계명”입니다. 마태복음 22:37-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예수님께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즉 성경의 가르침이 “사랑”이 으뜸이며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일이야말로 예수님은 “사랑”에 대한 실천을 가장 먼저 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구원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즉 “사랑”이 곧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고전 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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