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6:24 예수께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라오려면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 하십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만 믿고 자기 십자가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 이렇게 됐는가? 오늘날 기독교목사들이 “신학교리”로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그렇게 가르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의 공로로 기독교인들은 구원을 받았다고 “피”가 무엇인지 “십자가”는 무엇인지 예수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 이 한마디 말씀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인들의 “죄”를 예수께서 다 짊어지고 가셨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자기 십자가에는 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 때문에 감리교단에서는 만인 구원설까지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세상의 모든 죄 곧 세상 사람들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가셨기 때문에 모두 죄에서 해방되었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세상 죄를 지고 가셨다는 이 한마디 잘못된 번역자들의 오류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목회자들이 교인들을 모두 “지옥”으로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세상의 죄를 “지고 가다”라는 단어는 원문에 “아이로”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 뜻은 “지고 가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들어 올리다, 드러내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세상의 죄를 지고 가신 것이 아니라 세상의 죄를 모두 “드러내다”는 의미로 해석을 해야 옳은 해석이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유대종교 지도자들의 잘못된 신앙과 거짓된 비 진리의 말씀 그리고 그들의 죄를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 “드러내시고” 다시 말해 “까밝히시고”책망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번역자들의 오류 때문에 “비 진리”를 바로 잡아주는 오늘날 신학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더 큰 오류는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사마리아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행1:8)는 말씀을 오늘날 기독교는 크게 오해하여 큰 교회마다 해외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오해를 하여 해외로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신학 교리는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되어지고 나면 그때 “종말”이 오므로 “재림예수님”이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신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땅 끝까지”라는 말은 지구의 “땅 끝까지”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어둠의 존재인 “땅의 존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났을 때를 “땅 끝”이라고 비사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가나혼인잔치에 “6항아리”에 물(말씀)을 꽉 채우라는 말씀과 같은 뜻입니다. 또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몸)에 들여 나의 집(성전)에 양식(말씀)이 있게 하라”(말3:10)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왜 말씀이 내 안에 꽉 차있어야 하는가? 그 말씀으로 이웃을 내 몸 같이 구원하기 위해 내 몸에 있는 “양식”으로 이웃에게 먹여 구원을 시켜야 내가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마22:37-40)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아가페)하고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입니다. 이 두 계명이 하나님의 강령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만 믿고 자기 십자가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고 왜 예수께서 네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고 하셨는지를 아는 자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두 예언이고 십자가도 모두 “비유비사”인데 그 예언의 예수님의 십자가의 뜻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뜻도 전혀 모르니 자기 십자가를 어떻게 지겠는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구원의 십자가로 잘 믿는답시고 이천 년 동안 예수님의 십자가만 열심히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그러므로 그 “비유비사”를 풀어 인류구원의 예수님의 십자가도 나의 십자가도 모두 영적인 십자가로 보아야만 하는 시각이 필요한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전혀 그럴만한 능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쉽게 말해 성경은 육적죽음으로 기록을 했으나 그 본질은 영적죽음과 부활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잘 몰라도 하나님과 예수님만 잘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것이 오늘날 기독교의 현실입니다. 내가 영적으로 십자가를 지고 죽어야 하는 나의 영적 십자가가 내 앞에 있는데, 그게 예수님의 가르침인데 도대체 신학박사와 목사는 무엇을 알고 있단 말인가? 하나님 및 예수님은 우리 각자에게 영적 십자가를 요구하셨습니다. 실질적으로 육체의 죽음을 요구하신 것이 아니고 거짓복음을 잘못 받은 육체성전(죽음)을 헐어야 하는 옛사람의 죽음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2:19-20 예수께서는 유대종교지도자들에게 46년 된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며 이 성전을 헐면 내가 3일 만에 다시 짓는다 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유대종교 지도자들에게 “비유”로 너희들의 “비 진리”로 지은 잘못 지은 육체의 성전을 헐고(죽고) “실존예수”께서 전하는 새 말씀으로 다시 성전을 지으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비 진리 신학교리”로 잘못지은 자신의 육체의 성전을 헐고(죽고) 오늘날의 “실존예수님”의 말씀으로 다시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믿는 과거의 양식이 무엇이었는가? 성경 신구약은 모두 말씀의 양식이 문자 그대로의 “형이하학”의 양식이고 그런 믿음의 기록입니다. 그런 “형이하학”의 육적 믿음에서 죽으라는 것이 십자가의 죽음입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죽기는커녕 이 같은 육적 과거의 문자 그대로의 믿음에서 줄기차게 살아 있는 것입니다. 과거의 양식을 버리고 과거의 믿음에서 죽고(헐고) 오늘의 새 양식을 먹고 오늘의 새 믿음에서 다시 살아야(부활)합니다. 처음에 기독교에 입문해서 거짓된 복음을 받은 내 것에서 죽지(헐지) 않으면 새로운 내가 다시 살 수(부활)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에서 받은 복음이 진리인양 과거의 믿음에서 시퍼렇게 살아 큰소리치고 있는데, 즉 자기 십자가를 전혀 알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은 “실존”으로 오셨지만 그들에게 오늘의 예수님이 풀어주시는 진리의 새 말씀이 도무지 들어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실존예수님”은 기독교인들을 구원하러 진리의 새 말씀을 가지고 오셨지만 유대인들이 “실존예수”를 영접하지 않고 이단으로 배척한 것과 같이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오늘날의 “실존예수”를 영접하지 않고 또 이단으로 배척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죽 답답하셨으면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8:20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고, 한탄하셨습니다. 도저히 2000년 전 유대교 때나 오늘날이나 기독교인들이 이단으로 배척하기 때문에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한탄하셨습니다.
오늘날 한국인 “실존예수”는 오늘날 기독교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분입니다. 그런데 기독교 안에 들어갈 곳이 없다고 오늘날도 한탄하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고 하나님만 잘 믿으면 된다는 말은 곧 “우상”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자신이 영적으로 죽어야 하는 영적 십자가가 내 앞에 있는데도 그게 예수님의 가르침인데 도대체 거짓목사 밑에서 무엇을 배운단 말인가? 예수님은 우리 각자에게 “영적 십자가”를 요구하셨습니다. 실제 “육체의 죽음”을 요구하신 것이 아니고 육체는 살아 있는 거짓된 나의 “옛 신앙”처음에 기독교에 입문해서 받은 거짓복음, 거짓예수를 잘못 믿고 지어진 자신의 거짓 육체성전을 헐어버리고 오늘날 진리의 말씀으로 다시 지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목회자들은 상기의 기록된 말씀들은 모두 비켜가며 우리가 지고 갈 고난의 십자가는 예수님이 모두 대신지고 갔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를 믿기만 하면 된다고 거짓을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생각대로 “신학교리”대로 믿는 것은 자유이나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지 않으면 절대로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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