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 야 말씀 해설

이 사 야 64장 해설

제라늄A 2024. 7. 6. 17:10

이사야 64:1~4 원컨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의 앞에서 산들로 진동하기를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주의 대적으로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열방으로 주의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 주께서 강림하사 우리의 생각 밖에 두려운 일을 행하시던 그 때에 산들이 주의 앞에서 진동하였사오니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예로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깨달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
해설: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예로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깨달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 이사야 64장은 63장의 연속적인 내용으로서 주의 백성이 옛적 하나님의 능력을 추억하는 기록으로 채워졌습니다. 즉 오늘의 복음백성들은 옛적 예수님 당시 때와 초대교회의 은혜시대를 생각하면 그리움에 사무치며, 거슬러 올라가 구약시대의 출애굽시에 여호와가 대적을 물리치고 자기 백성을 보호하신 그 사랑과 능력을 떠올리면 금방 눈물이라도 핑 돌 것 같은 감상의 절정에 달하기도 합니다.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에 보여주신 초자연적 온갖 이적 기사의 능력이야말로 오늘의 복음백성들을 지켜주는 믿음에 대한 정체성이며 믿음의 정서이며 믿음의 확신이며 믿음의 추억이며 믿음의 모든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주의 백성은 그 추억과 감상과 정서와 확신으로서 끓임 없이 주의 대적으로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열방으로 주의 앞에서 떨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이적기사를 행한 신을 예로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깨달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다고 찬양하며 간구하고 있습니다. 즉 21세기 지식사회를 사는 오늘의 주의 백성은 여전히 과거의 기복신앙과 신앙형태를 그리워하며 탈피하지 못하고 있으니 문제가 심각합니다. 
이사야 64:5~9 주께서 기쁘게 의를 행하는 자와 주의 길에서 주를 기억하는 자를 선대 하시거늘, 우리가 범죄 하므로 주께서 진노하셨사오며 이 현상이 이미 오랬사오니 우리가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없으며 스스로 분발하여 주를 붙잡는 자가 없사오니,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얼굴을 숨기시며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 우리로 소멸되게 하셨음이니이다.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 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 여호와여 과히 분노하지 마옵시며 죄악을 영영히 기억하지 마옵소서, 구하오니 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
해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그리고 창조란 끊임없이 세웠다가 헐게 되는 반복적인 역사가 6일 6야의 창조인 셈입니다. 창조의 아침은 세우는 때요 밤은 허는 때인데, 그것이 넓은 의미에서는 6일 창조에서 6일 6야 이며 좁은 의미에서는 초림 주와 재림 주를 의미합니다. 즉 초림 주 때 세운 것을 재림 주 때 헐고 다시 세우는 것이 창조의 개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토기장이로 비유했습니다. 
그런데 주의 백성은 그것을 알지 못하고 과거 이적기사의 기복신앙에 사로잡혀 재림 주 시대인 오늘날도 여전히 그러한 기복신앙 형태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으니, 그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실 리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떠나가시고 인도하심이 없기 때문에 교회 안의 사랑은 떠나고 냉기만 가득한데, 과거를 그립게 회상하는 사람들의 부르짖는 소리만 상대적으로 높고 뜨겁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정죄하시는 인간의 본질적인 죄가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가운데, 도덕적인 착함과 사랑이 떠난 죄를 죄의 전부로 알고, 하나님께 그 죄를 자백하면서 하나님이 다시 돌아와 주시기를 간구하는 게 작금의 복음백성들입니다.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가 죄의 본질입니다. 그런데 복음백성은 그 점을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도덕적인 죄를 죄의 본질로 압니다. 
그 이유는 성경은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죄를 인간의 도덕적인 로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즉 비유로 기록된 성경의 참 뜻을 깨닫지 못하고 성경문자 그대로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백성은 자기들이 도덕적인 죄를 회개하여 이렇게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과히 분노하지 마옵시며, 죄악을 영영히 기억하지 마옵소서, 구하오니 보시옵소서, 보시옵소서, 우리는 다 주의 백성이니이다"라고, 하나님의 자비를 애타게 구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64:10~12 주의 거룩한 성읍들이 광야가 되었으며 시온이 광야가 되었으며 예루살렘이 황폐하였나이다. 우리 열조가 주를 찬송하던 우리의 거룩하고 아름다운 전이 불에 탔으며 우리의 즐거워하던 곳이 다 황무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일이 이러하거늘 주께서 오히려 스스로 억제 하시리이까, 주께서 오히려 잠잠하시고 우리로 심한 괴로움을 받게 하시리이까
해설: 예전에는 성대하게 부흥하고 북적거리던 교회였으며 성도들은 모두 뜨거운 사랑과 열심으로 화기애애했는데, 오늘날은 어딘지 모르게 영악스러워지고 교회는 날로 날로 텅 비워져가고 있음을 아무도 부인 못합니다. 그야말로 교회는 몰락해 가고 있고 사양화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교회의 말씀과 교리도 시대에 맞게 발전을 해야 합니다. 
성경을 논리적으로 형이상학적으로 풀어내야 하며 앞뒤 문맥이 맞아야 사람들이 과연 성경은 하나님이 옛적부터 기록해 놓으신 진리로 인정하여 모여들게 됩니다. 그런데 여전히 과거의 유치부신앙을 고수하며 앞뒤 문맥도 맞지 아니한 것을 억지로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발췌하여 믿고 있으니 그것은 현대인들의 영적 요구를 만족시켜 주지 못합니다. 
허구로 드러나는 미신일 뿐이므로 교회는 사람들이 계속 빠져나가고 있고, 그것을 억지로 막아내려고 하다 보니 날로 영악해질 뿐이다. 때문에 "주의 거룩한 성읍들이 광야가 되었으며, 시온이 광야가 되었으며, 예루살렘이 황폐하였으며, 우리의 즐거워하던 곳이 다 황무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일이 이러하거늘 주께서 오히려 스스로 억제 하시려나이까? 주께서 오히려 잠잠하시고, 우리로 심한 괴로움을 받게 하시리이까?"라고 여호와께서 주무시기라도 하시는 듯 보채며 잡아 흔들어 깨우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찌하여 그들의 기도를 듣지 아니하시는지 도무지 깨닫지 못합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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