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사람의 신앙 고백

※ 신앙의 길은 좁은 길과 넓은 길이 있다 ※

제라늄A 2024. 12. 13. 05:14

오늘날의 신앙의 길에는 두 길이 있는데 하나는 넓고 평탄한 길에서 오직 믿음 하나만 붙잡고 편안하게 안주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이 세상의 종교인들이 있고, 또 하나는 세상종교 생활에서 탈퇴하여 홍해를 건너 광야의 모진 훈련을 받으며 좁고 협잡한 고난의 길을 가는 신앙인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넓고 쉽게 가는 평탄한 길에서 안일하게 하나님을 믿기만 하다가 결국 멸망을 당하는 신앙인이 있는가 하면, 좁고 협잡하여 가기가 어렵고 힘든 길인데도 생명의 길을 걸어가는 신앙인들이 있는데 이 생명의 길은 바로 십자가의 길인 것입니다. 독자님들께서는 지금 어느 길을 택하여 신앙생활을 하시는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예수께서는 분명히 오늘날의 신앙인들에게 네가 나의 길을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고 했습니다(마16:24) 그러면 그 길은 어떤 길인가? 예수님이 가신 고난의 길은 모든 선지자들이 그 길을 갔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뒤따라간 길인데 이 길은 눈물 없이는 갈 수가 없고 피 흘림이 없이는 못 가는 길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길은 생명의 길이요 영원히 거처할 안식처인 것입니다. 이 길은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어느 시대 어느 누구나 예외 없이 반드시 가야 하는 생명의 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좁은 길을 말씀하시면서 네가 나를 따라오려거든 너를 부인하고 네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분명히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세상에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각 교파마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교리를 중심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들은 사람이 죽기 5분 전의 여유만 있어도 입으로 시인하여 예수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의인이 되어 모두 천국에 들어간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을 가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이 오늘날의 기독교의 현 실정인 것입니다.

그러나 극소수인 사람들은 하나님의 비밀한 말씀을 깨달은 사람은 지금도 교리신앙에서 벗어나 세상교회에서 출교 해서 광야라고 하는 불모지에서 육신의 자아를 율법의 말씀으로 깨트리고 불도가니에서 단련시켜 새사람으로 변하여 정금같이 나온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찾아가는 자도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출애굽기 말씀은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십자가를 지고 천국으로 가는 길을 장래의 그림자로서 하나님께서 비사로 보여 주신 것인데,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영안이 없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보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역사로만 이해할 뿐 그 속에 깊이 감추어있는 비밀인 영적인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두 보고 듣는다고 말은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생명의 말씀으로 거듭나지 못한 죄인들은 표면에 나타난 말씀은 볼 수 있어도 그 안에 감추어있는 영적인 뜻은 그때당시 유대인은 물론 예수님의 제자들도 무척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입니다. 유대교 당시에 예수님과 종교지도자들과 적대관계를 가졌던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참 진리가 아닌 거짓을 전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이유는 유대종교 지도자들이나 오늘날의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육신의 눈으로 표면에 나타난 문자적 말씀을 인간의 지식차원에서 말씀을 전하는 반면에 예수님은 비유와 상징으로 늘 말씀을 전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것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니라고(마13:34)했고, 또 마가복음 4:34절에서도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않으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셨기 때문에 저들에게는 동문서답 같이 들리기 때문에 기이히 여기며 배척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성전을 헐어라 내가 3일 만에 다시 세우리라 하신 이 영적인 말씀을 성경학자들인 바리세인 서기관 제사장들은 기이히 여기며 아니 46년 걸려서 지은 예루살렘성전을 네가 어떻게 3일 만에 다시 세울 수가 있느냐고 반문하며 예수님께 대적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예수님과 니고데모라는 그때 당시 최고 성경권위자인 그와 거듭남의 대화에서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을 전혀 이해를 못 하고 동문서답하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볼 수 있듯이 예수님의 하시는 말씀은 모두가 비유와 상징으로 말씀하시기 때문에 저들은 기이히 여기며 배척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과 같이 거듭나지 못한 유대인이나 종교지도자들이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은 할 수는 있으나 말씀 안에 감추어진 영적인 뜻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똑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들이라도 거듭나지 못하면 영적인 깊은 뜻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다메섹에서 예수의 음성을 듣기 전까지는 최고학부를 나온 가말리엘의 성경학자로 말씀을 가르치는 사람이었으나 예수를 만난 후에는 자신이 영적 소경이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자신의 신학배경을 배설물과 같이 버렸다고 고백하는 것을 성경을 통해 볼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낳음을 받지 못한 목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라 할 찌라도 성경을 올바르게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신약성경에 그 유명한 오병이어 기적을 문자 그대로 전하는 목회자들이 대다수인데 이들이 바로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에 성경을 올바로 해석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구약이나 신약에서도 여러 곳에서 거듭나지 못한 자에게는 비밀로 밭에 감추어 놓은 보화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1:8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마태복음 13:11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제자)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들(유대인)에게는 아니 되었나,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거듭나지 못하면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성경을 올바로 볼 수 없고 천국 가는 길을 전혀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예수님이나 사도바울에게 이단의 괴수라고 칭하며 핍박과 멸시천대를 하며 항상 고난 속에서 지내시다가 결국은 저들의 의해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이나 특히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라면 깊이 묵상하며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목회자들이 바로 죄 사함을 받을 수 없는 성령 모독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모든 기독교인들은 이 세상에 거짓과 진실이 공존해 있는 거와 같이 신앙의 세계도 진리와 비 진리가 있고 거짓목자와 참 목자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고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통적인 유전이나 사람이 만든 교리를 근거하여 말씀을 전하는 자를 거짓목자 혹은 삯군목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는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아들들이 전하는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오류 없는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자를 참 목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거듭나지 못한 목회자들은 유대종교 지도자들과 마찬가지로 신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교리를 근거하여 표면에 나타난 문자적 말씀만 보고 그 말씀 속에 깊이 감추어진 영적인 뜻은 영안이 없어 보지 못하고 있는데 이들이 바로 유대종교 지도자들과 똑같은 신학의 배경을 가졌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교회나 목회자를 선택하실 때 육신의 안목으로 주위의 환경에 의해서 선택하거나 인간의 어떤 사사로운 관계로 인하여 편리한 데로 선택할 것이 아니라 좀 더 냉철하게 철저히 점검해서 잘 선택해야 시간낭비 하지 않고 일생을 순탄하게 지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이 생명의 길과 멸망의 길은 어느 시대에나 항상 존재해 왔으며 그에 따른 천국관이나 구원관도 각기 다른데 그것은 곧 기독교적 교리적인 구원과 성경적인 구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참 진리를 찾아가려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말씀을 통하여 자신이 받은 구원과 또한 자기가 머물고 있는 현재 신앙의 위치가 어디인지 그리고 자신이 걸어가고 있는 신앙의 길이 어떤 길인지 넓고 평탄한 길인지 아니면 십자가를 지고 좁은 길을 가고 있는지 점검해 보며 확인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것이며 자신의 생명이 좌우되는 갈림길에서 선택해야 할 문제인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