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삶은 과연? 123

질병은 왜 생기며 어떻게 치료해야 하나?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빈부귀천이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죽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보면 90% 이상이 질병 때문에 죽으며 불의 사고로 죽거나 병 없이 건강하게 살다가 늙어서 죽는 사람은 10%도 안됩니다. 이렇게 수많은 환자들이 지금도 외래나 입원을 하여 치료를 받고 있는데 어떤 환자는 자리에 누어서 한번 일어나 보지도 못하고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병은 왜 생기는 것일까? 그리고 병은 어떻게 치료해야 하나? 병든 사람은 모두 병원을 찾아가 의사에게 치료를 받아야만 하며 다른 길은 없단 말인가? 그러면 의술이 발달하기 전 원시(元始) 시대에 살던 사람이나 지금도 오지(奧地)에서 의료해택을 받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은 병이 나면 어떻게 할까? 그리고 이러한 각종 병들은 무..

기독교인들의 감탄고토(甘呑苦吐)의 신앙

“감탄고토“(甘呑苦吐)라는 말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뜻입니다. 즉 사람들이 사리에 맞고 틀리고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에게 유리하면 취하고 불리하면 버린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감탄고토”(甘呑苦吐)라는 병이 기독교인들 안에 만성 고질병처럼 굳어져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인들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 중에 “사랑과 축복”의 말씀들은 자신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잘 받아들이지만 “징계와 저주”와 훈계의 말씀들은 불리하다고 모두 외면을 하거나 배척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날마다 먹어야 할 하늘의 양식입니다. 때문에 불신자들은 육신의 양식을 먹고살아 가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일용할 양식으로 먹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

인간의 생명은 영생하는 생명이다.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의 실체가 곧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기독교인들이 영생하는 생명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의 실체가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말씀을 깨달아야 영생을 소유 한다는 것입니다. 요 17:3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 영생의 조건은 오직 하나님의”말씀“을 아는 지식에 있다는 것입니다. 잠11:9 의인은 그 지식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느니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예수를 믿어서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지식으로 영생을 소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 영생은 말씀의 지식만이 본질이 되는..

※ 하나님은 인간을 영생(永生)하도록 창조하셨다 ※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반드시 죽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생명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죽지 않는 영생(永生)의 인간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인간에게 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진지 수천 년이 흘렀어도 인간은 여전히 죽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인간의 “영생”이 더디기만 하단 말인가? 그 이유는 “영생”에는 반드시 절대적인 조건이 있는데 그 조건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입니다. 요 17:3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 했습니다. 이같이 “영생은 하나님과 예수”를 알아야 “영생”인데 “하나님과 예수”를 모르게 때문에 “영생”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과 예수를 모르느냐 하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요..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의 사랑은 다르다

사람들은 자신이 어디로부터 와서 이 세상에 살다가 어디로 가는지 또한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삶의 의미는 진정 무엇인지, 이러한 생각조차 한 번 해 보지 못하고 허무하게 살다 인생을 마치게 됩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 그래도 좀 더 가치 있고 보람된 삶을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작은 정성을 모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며 또한 몸으로 봉사하면서 힘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러한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에 이 사회가 조금은 훈훈해 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사는 사람들 중 가장 귀감이 되는 사람은 아마 천주교의“테레사 수녀”일 것입니다. 그 분의 삶은 추앙받을 만큼 어떤 ..

“성경”은 최초에 누가 어떻게 만들어 졌는가,

성경은 최초에 누가 만드셨을까? 성경은 하나님으로부터 “구약성경”은 거듭난 선지자들이 “계시”를 받아 기록한 것이며, “신약성경” 또한 거듭난 예수님의 제자들이 “계시”를 받아 기록한 것입니다. 때문에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 자체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계시”를 받지 못하면 인간은 성경을 기록할 수 없는 것은 물론 “계시”의 말씀을 이해를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 16:13-14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

하나님을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잠 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필자의 글을 읽으시는 독자 분들은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환상이나 꿈속에서 만나 봤다고 하는 신앙인들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만나 봤다고 증거하는 내용들은 대개 성경과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 볼 수 있는 방법을 이미 성경을 통해서 자세하게 기록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났다고 하는 말을 그대로 믿지 말고 그들이 증거하는 내용이 성경과 맞는지를 확인해 보고 진위를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만나 보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되는 성경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기독교와 불교는 용어만 다르지 똑같은 종교다.

기독교의 근본사상은 부활이요, 불교의 근본 사상은 해탈이라 말합니다. 그러면 부활과 해탈은 어떻게 다른가? 계란에서 부화되어 나오는 병아리를 보고 기독교인들은 부활이 되었다고 말을 하고 불교인들은 해탈되었다고 말한다 해도 그 의미나 상황은 다르지 않습니다. 이렇게 부활이나 해탈은 용어만 다르지 모두 동일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라 부르고 불교인들이 반야라 부른다 해서 유일신이 두 신으로 나누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기독교와 불교는 유일하신 하나님과 반야를 각기 자기들의 신(神)이라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 하나님이라 말하는 것은 신(神)은 오직 한 분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이와 같이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신(神)은 오직 한분이신 하나님 한 분뿐이시며 다른 신(神)..

기독교는 전생과 윤회를 부정하는가?

“ 기독교는 전생과 윤회를 부정하는가? ” 예수님은 오늘날 기독교가 부정하는 전생에 대해서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신약성경을 통해서도 이미 전생에 대하여 말씀하셨고 성경 여러 곳에서 전생에 대해서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을 믿는 오늘날 기독교 신학자들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전생과 윤회를 부정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전생과 윤회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말라기 4:5-6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말라기 선지..

※ 평안을 누리는 길 ※

마태복음 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인생에 부닥치는 고난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외부에서 오는 고난과 내부에서 오는 고난, 이 두 가지입니다. 보통 고난이라고 부르는 것은 외부에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는 누구에게나 닥치는 고난입니다. 아무리 행운아라고 하더라도 이 중에서 어느 하나라도 겪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문명이 진보됨에 따라, 이런 고난들을 벗어날 방법이 제법 많이 발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여전히 고난의 도가니입니다. “불티가 위로 날아가는 것 같이, 인생은 나서 고난을 받게 마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