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신령한 복”은 어떤 “복”이며 누가 받는 “복”일까? “하늘의 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으로 창고가 차고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신령한 “복”을 말합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신자나 불신자나 모두 “복”을 추구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복”을 받으려고 신앙생활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의 “복”을 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교회의 목사님들이나 장로님 권사님들일까? 아니면 돈이나 재산을 많이 소유하고 있는 부자나 재벌의 총수일까? 그도 아니면 세상의 모든 권력을 거머쥐고 부귀와 영화를 마음껏 누리고 있는 왕이나 대통령일까? 사람들은 이런 유명 인사들을 “복”있는 사람이라 말하며 모두 부러워합니다. 그러면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진정 하늘의 “복”을 받은 사람이란 말인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목사님이나 장로님 권사님들도 욕심으로 인한 교회의 부정과 비리로 분쟁과 더불어 아귀다툼을 하며 돈 많은 재벌이나 권력을 가진 대통령도 말로에는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포승줄에 묶여 형무소로 끌려가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세상에서 받는 “복”이나 부귀영화는 모두 안개와 같이 잠시 머물다가 사라져 버리는 것이며 하늘의 “복”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 “하늘의 복”을 받은 사람은 없는 것일까? 문제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늘로부터 오는 “하늘의 복”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복”은 어떤 사람이 받는지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복”은 영원한 “하늘의 복”이 있고 세상에서 잠시 머물다가 사라져 버리는 세상의 “복”이 있습니다. 그러면 영원한 “복”의 실체는 무엇이며 “하늘의 복”은 누가 주는 것일까?
“하늘의 복”은 오직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원문 성경에 “유로 기아”로 기록되어 있으며 뜻은 “좋은 말씀” 곧 “생명의 말씀”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 주시는 신령한 “복”의 실체는 “생명의 말씀”으로 곧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말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 “말”(말씀)이 곧 “영”이요 “생명”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요6:63) 왜냐하면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만이 “하늘의 복”이요 죽은 영혼을 구원하고 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신령한 “복”은 “생명의 말씀” 곧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을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천하보다 귀한 보화가 곧 “하나님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하늘의 신령한 “복”이 바로 “하나님의 생명”인 것입니다.
때문에 예수님께서 네가 천하를 모두 얻는다 해도 네 생명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마16:26) 그런데 이 “복”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생명이 없는 “죽은 자”를 구원하고 살리는 모든 권세를 생명의 말씀을 소유하고 있는 아들 예수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복”(생명의 말씀)을 가지고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하늘의 신령한 “복”을 어떤 사람들에게 주시는 것일까? 예수님은 마태복은 5장을 통해서 하늘의 “복”은 “심령이 가난한 자와 애통하는 자”에게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돈이나 육신의 양식이 없어 가난한 자가 아니라 하늘의 “영”의 양식인 “생명의 말씀”이 없어 하나님께 구하고 찾는 자를 말하며 애통하는 자 역시 “생명의 말씀”을 소유한 참 목자가 없어 애통하며 하나님께 날마다 기도하며 찾고 있는 자를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물”(말씀) 곧 삯꾼 목사들이 주는 가감되고 오염된 말씀(신학 교리와 유전)은 노아 때의 홍수처럼 넘쳐나지만 참 목자(예수님)가 주는 “생수” 곧 “생명의 말씀”은 아무리 찾고 찾아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이 세상에 삯꾼 목자나 거짓 선지자는 수도 없이 많지만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 곧 참 목자는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서 오늘날 참 목자를 보내주신다 해도 유대인들이 “실존 예수님”과 사도들을 이단으로 배척하고 핍박한 것처럼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오늘날 참 목자인 “실존 예수님”을 이단으로 매도를 하며 배척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오늘날 참 목자는 예전에 예수님이나 사도들처럼 오늘날 부패한 교회를 책망하며 기독교 목사들을 향해 삯꾼 목자 혹은 독사의 자식이라 질책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오늘날 하나님의 아들(참 목자)은 지금 오셔서 “실존”으로 계시지만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께서 구원자로 보내주신 참 목자인 “실존 예수”를 이단자 혹은 귀신 들린 자로 취급하며 상종조차 하지 않는 것입니다.
때문에 오늘날 참 목자는 예수님처럼 집(교회) 없는 나그네가 되어 지금도 진리를 찾는 영적인 “나그네 고아 과부”가 어디 있는 가하여 이곳저곳을 찾아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참 목자(예수님)도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집이 있는데 나는 머리 둘 곳 하나도 없다고(마8:20) 한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 내가 보낸 “참 목자 실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그 입에서 나오는 생명의 말씀을 영접하면 지금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과 같이 자기 기독교 목사님만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따르지 하나님께서 오늘날 구원자로 보내주신 하나님의 아들 “실존 예수님”은 이단자로 배척을 하며 핍박까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금도 기독교인들을 향해 삯꾼 목자가 인도하는 넓고 평탄한 “멸망의 길”에서 벗어나 참 목자가 인도하는 좁고 협착한 “생명의 길”로 돌아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소경 된 삯꾼 목자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넓고 평탄한 멸망의 길을 계속 따라간다면 장차 지옥문 앞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실존 예수님”(참 목자)은 기독교인들을 향해 “회개하라” 천국(하나님의 아들)이 가까이 와 있으니 내게로 돌아오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마4:17) 만일 여기에 기록된 말씀을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믿고 삯꾼 목자가 인도하는 넓고 평탄한 “멸망의 길”에서 벗어나 참 목자가 인도하는 좁고 협착한 “생명의 길”로 돌아온다면 구원을 받는 것은 물론 “하늘의 복 영생의 복”(시133:3) 곧 “생명의 말씀”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기독교 목사들이 인도하는 넓고 평탄한 길에서 하루속히 “출애굽”(탈출)해서 진리를 찾아 참 목자 “실존 예수”가 인도하는 좁고 협착한 “생명의 길”로 돌아오기를 학수고대 기다리고 계십니다.
※ 요한복음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예수)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 골로새서 2:2~3 이는 저희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원만한 이해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
※ 마태복음 6:30~34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천국)와 그의 의를(진리와 생명의 말씀)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 예레미야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