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간음”하지 말라는 것은 “영적간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는 “간음”도 한 사람이 두 남편을 번갈아 섬기듯이 두 주인, 즉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이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믿는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보다 자신의 뜻, 즉 하나님을 통해서 “복”을 받아 잘 살려는 욕심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을 통해 “축복”을 받아 자신이 하는 일들이 모두 형통하기를 바라며 잘살기를 바라는 “기복신앙”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이 바로 두 주인, 즉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는 자들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서 진리의 생명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러한 진리의 생명이신 예수님을 이용하여 교회 사업을 하며 말씀(하나님)을 팔아 돈을 치부하고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이 바로 간음하는 자들이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재물”을 겸하여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재물”은 금과 은 혹은 돈이나 재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비유”하여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존재가 있기 때문에 “재물”이 있는 것이지 자신이 없으면 “재물”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긴다는 말씀은 하나님과 자신을 겸하여 섬긴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을 믿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자신을 겸하여 믿고 섬기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이 바로 두 주인을 섬기는 자들이며 “간음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 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간음하는 여자들은 예수님을 신랑으로 섬기면서 또 다른 신랑, 즉 세상과 벗하고 있는 자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를 신랑으로 모시고 살면서 세상과 짝을 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과 원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기고 있는 자들이 곧 “간음하는 자”들이며 하나님의 원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대부분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세상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세상은 위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사람이 사는 세상보다 세상의 존재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는 세상은 이 세상이 아니라 세상에 있는 존재, 즉 하나님의 백성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기면서 세상의 목사, 즉 아직 하나님의 생명으로 거듭나지 못한 자기 목사를 예수님과 동등하게 믿고 섬기면 곧 간음하는 행위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목사를 예수님처럼 믿고 섬기면 자연히 예수님과 원수가 되어 예수님이 오시면 이단자로 배척하고 핍박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이 두 주인을 섬기는 자며 “간음하는 자”들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간음하는 자”는 남자나 여자는 모두 죽이라고 율법으로 엄히 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간음하는 남자는 삯꾼목사들을 말하며 여자는 음욕, 즉 욕심이 많은 교인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레위기 20:10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남자)와 음부(여자)를 반드시 죽일 찌니라, 이 말씀을 통해서 어느 누구나 남의 아내와 간음을 하는 자 곧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에서 남의 아내와 간음을 하였다고 교인을 죽인 사례는 지금까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법은 물론이지만 세상의 법도 사람들이 지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법이 있어도 그 법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 법은 무용지물일 뿐만 아니라, 세상의 질서나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유지될 수 없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것은 정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율법을 모두 폐하셨다는 오해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람들이 어떠한 잘못을 범하였다 하여도 그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만 하면 모두 용서해 주신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려고 오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온전케(완전케)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시면서 간음에 대하여 더욱 중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5:17~18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이 말씀과 같이 예수님은 율법이나 선지자의 말씀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율법을 완전케 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없애지 않고 모두 이루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누가 감히 예수님께서 율법을 폐했다고 거짓증거를 하며 율법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간음을 행한 자를 죽이라고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간음을 하지 않았어도 여자를 보고 마음에 음욕을 품기만 하여도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오늘날 거짓목사들은 예수님께서 율법을 폐하였다고 거짓증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음욕을 품지 말라는 여자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즉 하나님의 성전(교회)을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갈4:22 이하를 통해서 두 여인은 곧 두 언약을 말하며 한 여인(하갈)은 지금 존재하고 있는 예루살렘교회를 말하며 또 한 여인(사라)은 위에 있는 예루살렘교회를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교회는 곧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을 “비유”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지 말라는 것은 예수님이나 하나님의 교회를 통해서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생각이나 마음을 품지 말라는 뜻입니다. 즉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예수를 믿거나 교회를 다니는 것이 곧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것이며 이미 “간음”을 하고 있는 자들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간음”은 육체적인 간음이 아니라 영적인 “간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전이나 지금이나 교회가 음행으로 타락하게 된 것은 모두 목사들 안에 있는 욕심 때문인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16~17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은 상기의 말씀을 통해서 너희는 모든 일을 성령을 따라서 행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너희가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너희 안에 있는 육체의 욕심은 성령을 훼방하며 성령의 소욕은 육체의 욕심을 훼방하여 너희가 원하는 것을 서로 못하게 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은 서로 대적하면서 육신은 성령으로 행하는 것을 막고 성령은 육체로 행하는 것을 막고 있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려면 반드시 성령을 좇아서 행하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령을 좇아 행한다고 하면서 한 편으로는 육체를 따라서 행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육체의 소욕은 곧 사람의 생각과 자기 안에 있는 욕심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행위가 곧 하나님의 생각과 자신의 생각을 넘나들며 두 주인을 섬기는 “간음”입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두 주인이나 두 남편을 섬길 수 없듯이 자기의 생각이나 욕심에 치우치면 하나님의 말씀에 소홀하게 되고, 하나님의 생각을 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면 자신에게 등한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과 자신의 뜻을 모두 이루려 한다면 곧 “간음”하는 행위입니다. 즉 하늘의 신령한 복도 받고 땅의 썩어질 복도 받으려고 신앙생활을 한다면 곧 “간음”을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목사들 중에는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이미 구원도 받고 천국을 가는 것도 보장되었으니 이제는 세상의 복을 넘치도록 받아 잘 살면 된다고 교인들에게 음욕을 불어넣는 목사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목사가 두 마음을 품고 하늘의 복과 땅의 복을 겸하여 받으려 한다거나 교인들을 미혹한다면 “간음”을 하는 행위입니다. 오늘날 목사들도 목회를 열심히 하면서 마음은 교인들의 헌금에 가있다면 곧 “간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과 같이 하나님께서 “간음”하지 말라는 것은 주로 영적인 “간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육신적인 “간음”은 회개를 하면 용서받을 수 있지만 영적인 “간음”은 용서받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는 “영적인 간음”은 절대로 행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원문 출처:새사람 블로그)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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